[젊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소멸을 수많은 방식으로 맞닥뜨리는 것 혹은 소멸로부터 달아나는 것, 혹은 소멸을 깨닫기 조차 회피하는 것이다. 혹은 이 모두를 동시에 겪는 것이다. (리베카 솔닛,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p15>]
소멸(消滅), 사라져 없어짐을 겪는 것이 성년(成年)이 된 여자가 겪는 것이라니 살기 위해 그리고 사는 이유를 찾아 사는 것이 사는 이유라 여겨온 나의 생각을 카오스 속으로 밀어 넣어버리는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세상의 잣대로 재었을 땐 훌륭한 삶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아 기기 위해 발버둥 친 시간들이 기껏 나방이 앞만 보고 날아가다 뜨거운 불속에 뛰어들듯 제 발로 소멸로 향해가는 것이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동생이 배추를 나르다가 속을 넣겠다고 조른다. 아빠는 하지 못하게 했지만 나는 옛날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생각하고 이해해주었다.(중략) 방해만 되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하지 못하게 하나보다 다 자기가 겪어야만 어른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엄마, 아빠란 책임이 너무 큰 것 같다. 나 같으면 자신이 없다 그래서 아애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장차 엄마가 되려면 희생정신이 정말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생각으로써는 도저히 자신이 없다. 우리 엄마는 특히 나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불효를 했을 뿐이다. 앞으로는 효도와 봉사정신으로 살아가겠다.(1977년 11월 19일 토요일 엄마의 일기장중에서)](**엄마가 18살 때 쓴 일기이기에 맞춤법이나 문법적으로 안 맞는 것들이 있으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엄마의 일기장을 읽다 보니 소멸(消滅 - 사라져 없어짐)이라는 것이 '희생정신(犧牲精神 - 다른 사람이나 어떤 목적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리는 정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사라져 없어짐'인데 앞에서 언급한 문장에서 작가는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을 '겪는다'라고 표현했다. 곱씹고 곱씹어 생각해보니 단순히 사라져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 여성들이 무언가를 위해 자신(自身)이 없어지는 것 같은 희생을 지속적으로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성에게도 남성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져 그에 맞는 고충이 있겠지만, 젊은 여성의 삶을 소멸을 겪는 것이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자신이 사라져 없어지는 듯한 희생이 여성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중 단연 으뜸인 것은 '엄마'라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한 생명을 뱃속에 품는 신기한 경험은 온몸이 부서지는듯한 날카로운 통증으로 마무리되는 듯 하나 24시간을 내가 아닌 난생처음 보는 나를 닮은 낯선 것을 위해 보내야 하는 역할, 엄마.
인생은 누구나 한 번이기 때문에 그 낯선 경험은 정말이지 설레지만 책임감이 따르는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 자신 때문에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생각을 가진 어렸던 우리 엄마에게는 생각조차 못할 만큼 부담스러운 것이었던 것 같다.
다 자기가 겪어야만 알게 된다. 엄마의 생각들이 담긴 일기장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읽어보니 엄마와 이런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진작 알았더라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밤새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일기 첫 페이지에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동안 써온 일기장들을 정리하고 나니 기분이 나아진다고 적혀있었는데 일기 쓰기를 좋아했던 엄마가 많고 많았던 일기장 중에서 이 일기장만 남긴 이유가 분명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제는 엄마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엄마의 일기를 아쉬운 마음을 달래 가며 읽고 또 읽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