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등원시키는 등원 길은 항상 있던 정신도 나가는 그런 길입니다. 얼마 전 아이들을 등원 완료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아주 귀여운 공룡 무늬 마스크가 인사를 하지 뭐예요. 바로 둘째가 잘 쓰는 마스크였어요. 아이 가방 속에 여분의 마스크가 있긴 했지만 이것을 그나마 잘 쓰고 있어 주는 터라 저는 다시 어린이집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그날은 스치는 바람까지 아주 따스해 봄이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런 날이었어요. 며칠 전, 집안의 가구 배치를 다시 했는데 달라지긴 했지만 살짝 부족한 집안을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화사한 무언가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때에 봄바람의 따쓰함을 느끼니 집안에도 봄을 한 아름 가져다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마 전 드라마 <서른아홉>에서 여주인공이 데이지 꽃 세 송이를 사서 남자 주인공에게 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여자가 남자에게 꽃을 주어도 멋이 있구나! 했던 꽤나 설레었던 장면이라 화면 속 데이지 꽃을 가지고 싶기도 하더라고요. 그 장면이 생각나 이왕이면 노란색 데이지 꽃을 사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마스크를 전달한 후 곧장 집 근처 화원으로 향했답니다. 이른 아침이라 주인분께서는 분주히 움직이시며 꽃들을 정리하고 계셨어요. 혹시나 너무 일찍 와서 꽃을 못 사면 어쩌지 걱정하며 구매 여부를 물어봤는데 다행히 꽃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하셨고, 설레는 마음으로 화원을 둘러보았습니다. 아쉽게도 드라마에서 보았던 노란색 데이지 꽃이 없어 구매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같은 노란색의 후레지아 한다 발을 구매했습니다.
저는 후레지아를 보면 친정엄마가 생각난답니다.
저희 엄마는 첫 손녀가 뱃속에 생기기 한두 달 전 소뇌위축증이라는 병 때문에 투병을 시작하셨는데 그로 인해 출산 때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거동을 못하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출산소식을 들으시고 아빠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병문안을 오시면서 꽃다발을 선물로 가져오셨는데 그때 그 꽃이 후레지아 였답니다.
후레지아꽃 7송이의 가격은 5,000원이었어요.
꽃만 구매한 거라 예쁜 포장지가 아닌 신문지에 돌돌 말아 주셨는데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말이 있듯이 노란 후레지아꽃이 너무 예뻐 그 어떤 포장지보다 신문지가 더 예뻐 보이더라고요.
집에 도착해서 깨끗이 씻어놓은 와인병에 물을 받고 가위로 줄기 끝을 조금 다듬어 꽃아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테이블 위에 놓았습니다. 식물들이 제 손에 들어오면 얼마 못가 시들어져서 관리를 잘 못해도 잘 사는 문샤인이 이라는 식물을 예전에 구매했었는데 둘을 같이 놓았으니 초록색 사이로 노란색 포인트가 매력적인 작은 미니 화원이 되었답니다.
사실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은 사서 뭐해라는 생각 때문에
꽃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런 제가 저를 위해 난생처음 꽃을 사보았습니다. 꽃을 사 오자마자 안방에 누워 핸드폰만 보고 있는 남편에게 보여주며 '예쁘지?'라고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첫마디가 '꽃이 뭐가 예쁘냐'였어요. 근데 이내 무심한 듯 '네가 더 예쁘지'라고 말을 잇더군요. 순간 손발이 오글거려 웃긴다라고 말은 했지만 '남의 편이 이런 말도 할 줄 아네?라는 생각에 살짝 놀라우면서도 마음은 아주 살짝 설레었습니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전엔 수납 장위에 공간이 생기면 온갖 잡동산이들을 쌓아놓기 바빴을 저였겠지만, 불필요한 물건들을 비우고 어수선한 가구들을 재배치해 여유공간이 생기니 정리와 청소로 스트레스받을 시간이 줄어들고 '나'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덕분에 남편이라는 사람의 새로운 매력도 볼 수 있어 즐거웠네요.
두 아이 육아와 살림을 하는 전업주부인 저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특별히 인테리어를 하지 않으면 항상 똑같은 집에 있을 때면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있었는데
노란 후레지아의 향기가 마음을 달래주어 집에 있는 시간이 조금은 좋아지고 있어요. 오늘은 지친 나를 위해 어여쁜 꽃 한 송이 사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