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바쁘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웠지만 요즘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은 기본이고 영어와 한자까지 배운다고 한다. 내 아이의 어린이집 (유치원 대신 7살까지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에서도 한글은 기본이고 영어와 한자, 수학까지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고 아이 친구들 중엔 벌써 한자 8급을 딴 아이도 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 막 한글을 뗀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도 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다른 건 몰라도 한글만 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쉬운 한글교재를 알아보고 구매해서 하루 정해진 분량을 직접 가르쳤다. 하지만 'ㄱ'을 방금 알려주면 'ㄴ'이라고 대답하고 공부시간엔 먼산을 바라보며 집중하지 못했고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에게 화도 많이 냈다. 결국 아이가 한글 공부하는 것이 싫다고 해서 한 동안 중단해야 했다.
얼마 후, 어린이집에서 다 푼 한글교재를 가져와서 보니 내가 아이에게 가르쳐 준 것과 같은 것이었다. 아이는 그 책을 나에게 보여주며 "집에서 하고 또 하니까 어린이집에서 쉬웠어"라고 말해주었다. 아이의 말을 들으니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아이와 비교를 하며 혼낸 것이 내심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아이는 처음 접하는 한글이 낯설고 어려웠던 것이다. 성인이 된 나 역시 처음 접하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고 생각될 때 가 있다. 누구든지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왜 아이의 입장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창 시절 나에게 글짓기 대회는 참으로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내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낯설고 두려운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간단한 다이어리를 쓰는 것조차 잘하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시간이 흘러 내 나이 30 후반에 글쓰기 시작했다. 소뇌위축증으로 투병을 하던 엄마의 모습과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하루에도 수 백 번씩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애쓸수록 힘들어지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 위해서였다.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서 지푸라기를 잡는 마음으로 난생처음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처음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는 무진장 어색했다. 게다가 내가 쓴 글을 함께 글을 쓰는 분들과 작가님께 공개해야 한다는 것은 발가벗겨진 채로 내 쫓기는 듯한 창피함을 느껴져 글을 업로드하고 나면 콩닥콩닥 울리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크게 들렸다. 하지만 1년 넘게 글을 쓰면서는 처음의 낯섦이 익숙함이 되어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나는 그 이유가 살아오며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곧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바로 ‘나’ 자체라는 것을 글을 쓰며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 누굴 보고 겁을 먹은 적이 거의 없어. 헤겔, 칸트도 나는 무섭지 않았어. 나는 내 머리로 생각했으니까. -이어령의 마지마 수업, 김지수, 37p-]
나는 항상 겁에 질려있었다. 살아온 동안 힘들었던 경험들을 통해 아픔만 느꼈기 때문에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조그마한 일에도 큰일이 벌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지금은 겁나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글쓰기라는 것을 통해서 내 머리로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한글에 익숙해졌듯이 나는 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지려 노력해본다.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 기분 좋은 날, 오랜만에 온 가족이 외출을 했다. 2년 전 아이에게 가르쳐주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만둬버린 바람에 베란다에서 빨래 바구니의 친구가 되어버린 두 발 자전거도 함께했다. 이번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전거를 꺼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이는 집 앞에서 출발하면서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렇게 아이가 탄 자전거는 어느 날보다도 더 눈부신 햇살을 가로지르며 공원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