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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Sep 19. 2022

나는야, 개똥철학자

37살에 시작한 독서.

나는 책 읽기와 담을 쌓아도 아주 단단하게 쌓았던 아이였다.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초, 중, 고 통틀어 자발적으로 완독 한 책은 향수라는 소설책과 백설공주 동화에 대한 잔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인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책 딱 두 권이다. 내가 책 읽기를 싫어했던 이유는 문제를 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인물들의 성격과 상황적 배경 등을 파악해서 5지선답에 중 맞는 답 하나를 찾아야 하는 것이 재미가 없었다. 책 속엔 길이 있다며 책을 많이 읽으라고는 권하지만 막상 문제를 풀기 위해 배우며  5가지 보기 중 정답 하나를 찾아내는 것이 진정 길이라는 것인가. 작가도 정답을 맞히라고 책을 쓰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학창 시절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었기에 때문에 더더욱 책과 담이 쌓인 것 같다.

그러던 내가 36살 6월 독서모임에 참여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을 알아가는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게 되었고 조금 더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하지만 내 글은 어휘력과 문장력이 부족한 탓에  한낯 하소연에 머물러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책을 읽고 싶은 필요성이 생겼던 것이다.


내 생의 첫 독서모임에서 읽었던 책은 철학자 김진영 작가의 강의 내용이 엮어진 <상처로 숨 쉬는 방법>이었다. 독서모임에 참여해 신청을 하고 읽을 책을 인터넷서점에서 주문을 했다. 상처로 숨 쉬는 방법이라는 책의 제목은   책을 읽으며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책을 받아보니  책상 앞에 앉아 베고 낮잠을 자기 딱 좋은 두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철학자들과 우리가 살면서 고민해봐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언급하며 설명하는 두꺼운 책을 하루에 30p 가량 읽어갔다.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왠지 멋져 보이는 문장에 밑줄도 그어보고 때론 밑줄 그은 문장을 필사도 하며 내 생각들을 써보았다. 그 시간엔  평범한 주부인 나도 멋진 철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개똥철학 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만의 철학을 쌓아간다는 것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그래서 매달 시작되는 책모임이 기다려지고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지 기다리는 것은 무척 설레는 일과 중 하나였다.


게다가 책을 읽고 내 생각을 평생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멋지게 말하고 싶었지만 처음 그런 것을 해보니 긴장이 되어 발음도 꼬이고 말도 더듬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던 것 같다.

혼자 읽는 것보다 완독 하기도 쉬웠도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책의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내가 하고 있는 생각에 가끔 놀라기도 하는 참 매력적인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 책을 읽고 아이들이 집에 올 때까지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드라마를 좋아해서 하루 종일 리모컨만 돌리며 빈둥거리던 일상을 보내던 내가  학창 시절에도 읽지 않던 책을 읽으며 글까지 쓰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가끔 무척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나에게 거대한 꿈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멋진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웠다. 학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멋진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아이 둘을 키우는 내세울 것 없는 아줌마가 쓴 글을 누가 읽기는 할까 하는 고민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에는 늦은 나이인 것 같아서 개인적인 글을 쓰며 만족하는 것도 좋을 것도 같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꼭 피가 뜨겁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이에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가 팔십에 그림에 도전을 해보자는 엉뚱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그림을 그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그림과 나는 안 되는 인연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재능이 없어서 안되고,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되고, 여건이 부족해서 안된다고 믿으면 결국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과연 나는 진짜로 안 되는 것일까? 『어른답게 삽시다. 이시형 37-38p』]

이시형 작가는 80이 넘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고 첫 전시회와 문인 화첩까지 냈다고 한다. 비록 그의  그림은 잘 그린 그림은 아니 였지만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 생각, 고향생각이 막 나면서 뭔가 그립고 애잔한 마음이 드는 그림이라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8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도전에 대한 경험을 읽으며 다시 한번 용기를 내기로 했다. 이대로 포기하면 두고두고 미련이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도 40의 나이에 등단하여 작가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나이로 보면 나에게 더 유리한 것이 있다. 작가로 등단했던 박완서 작가의 나이보다 지금의 난 세 살이나 젊은것이다. 재능이 없어서 안되고,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안되고, 여건이 부족해서 안된다고 믿었던 그동안의 생각들을 버리고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시도라도 해보려고 오늘도 읽고, 써내려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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