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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Sep 19. 2022

불행을 겪고 난 뒤

감정을 돌보기 위한 극약처방.

내가 처음 글을 쓰기시작했던 것은 엄마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기 위해서 였다. 엄마라는 존재가 누구에게나 특별한 것이듯 나에게는 엄마라는 존재가세상에서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같은 것이었다. 세상의 풍파속에서 나를 보호해주는 가장안전한 울타리. 영원히 그 자리에서 나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엄마는 2015년 소뇌위축증이라는 병을 진단을 받았고 투병을 시작했다. 엄마의 죽음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유때문인지 병마에 나약해지는 엄마의 모습에서 평생을 안전하다고 믿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말로 설명 할 수 없는 그 두려움은 무심한듯 나의 숨통을 꽉 움켜지고 놓아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엄마가 남은 여생을 편히 보낼 수 있게 도와주고싶어 친정에 들어갔지만 마음과 현실은 전혀 다른것이었다. 어린아이와 같이 변해가는 낯선 엄마와 하루 종일 함께한다는 것은 아이를 하나 키우는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부모만한 자식이 있을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매순간. 나는 아주 부족한 자식일 뿐이었다. 엄마를 내 자식처럼 세심하게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나의 감정은 날이 갈수록 극도의 예민에 치닫고 있었고 매일같이 조그마한일에도 화를 내기 일쑤였다. 엄마가 점점 병에 의해 쇠약해 질수록 그 것을 지켜보는 것을 견디기에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런것이라고 뒤늦은 헛된 변명을 해본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면서 우리 가족의 감정의 골은 깊어질 대로 깊어 졌고 얼마 못 가서 그것은 아픔의 민낯으로 드러났다.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요양원에 보낸다는 죄책감을 최대한 덜어내고자 집에서 가까운 곳에 요양원을 알아보고있던 와중에 엄마가 응급실로 실려가는 사단이 났다. 엄마는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인해 탈이 난 것 같았다.그렇게 병원에 입원해서 비위관과 소변줄을 달았고 두 달여 만에 심정지가 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이미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 심정지가 왔을 때 그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았지만 귀에 날카롭게 꽂히는 기계소리와 함께 가려지는 커튼 앞에서 손등을 입에 대고 엄한 손등을 깨물며 허공만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날의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 심정지 후 심폐소생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기관절개를 해야했고 엄마는 집에서 한시간 반 떨어진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은 엄마와의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진 것이었다. 그 끝이 가까웠다는건 느껴지지만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 없는 그 시간을 엄마에게 나름의 최선을 다하기위해 다짐의 글을썼다.


덕소에서 보문동 병원을 오가는 3시간은 참으로 고된 시간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그 끝이 작별이라는것을 알면서도 멈추지못하고 달려가야만하는 그 아픔을 참아내기가 가장 힘들었다.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두서없이 적어가며 복잡한 감정을 다잡았고 병원에 도착해 엄마와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투병이 시작됐던 그 시간들을 되짚어보는 시간은 엄마의 아픔을 보면서도 이기적이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화가나 고통스럽기도했고 나쁜 짓 한번 한적 없는 엄마가 왜 아파야하는지 억울하여 누구에게 따져 묻고 싶은 분노감도 느꼈다. 지난 아픔을 되돌아보며 글을 쓰는 것은 웃을일 보단 울기 바쁜 그런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지금 그 글들은 낯뜨겁고 유치한 그런 추억이 되어있다.


[사람에겐 감정적 독립이 가장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것이 내가 불행을 겪고 난 뒤의 생각입니다.(『박완서의 말』 마음산책, 박완서 , p23)]

박완서 작가는 남편과 아들을 잃은 뒤 감정적인 독립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남은 사람들이 잘해주는 편이지만 떠난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의지했던 감정은 떠난 사람이 아니면 대처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감정적인 독립이 더 어렵지 않았을까. 그만큼 박완서작가와 아들과 남편과의 관계가 돈독했기때문에 감정적독립이 더욱 어렵지않았을까 조심히 생각해본다.

나또한 엄마와의 관계가 돈독했다. 어렸을적 외할아버지는 엄마의 장애로 인해 나에게 틈만나면 엄마를 잘 돌보아야한다고 이야기하곤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그런지 나는 엄마를 생각하면 슬픈 애틋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찾아온 죽음이라는 것이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 죽음이 세상에서 제일 믿고 의지했던 사람에게 가까이왔음에 슬펐고 그것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차 몰랐기때문에 더욱 감정적으로 힘들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시 주어진 엄마와 시간. 1년 6개월동안 엄마의 병원을 오가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꺼내어 글로 쓰면서 내안의 피하고 싶었던 감정들을 정확히 알아 갔던것 같다. 엄마와 있었던 일들을 되내어 글로 정리하는 것은 나에게 엄마로부터의 감정적 독립을 할 수 있는 뼈대를 만들어 주었다. 지금은 나의 감정의 뼈대를 더 단단하게 하고 내 자신이 나에게 의지하는 힘을 기르기위해서 글을 쓰고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화가나는지 기뻐하는지에 대해서 종이 한가득 적어본다. 그렇게 한글자 한글자 적어가다보면 나를 사랑하게하는 힘인 자존감이 단단해 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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