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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Sep 27. 2022

구닥다리 같은 말.

상처를 쓴다는 것.

나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좋아하지 않는다. 20년이 지났지만 펼쳐서 보지 않아도 떠오르는 몇몇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얼굴들. 졸업앨범을 촬영하고 앨범이 완성되어 나눠 받았을 때였다. 내가 있던 곳에서 어떤 아이가 “어느 반에 왕따가 있는데 그 반 사진에 개가 왕따라고 티 나게 나왔어” 라고 다른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게 나라는 것을 직감했고 창피함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이 지난 후에도 얼굴에 화끈거렸고 그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중,고등학교때 있었던 일들도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하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일들이 많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일이 지금까지도 생각난다는 것은 그 사건이 꽤나 나에게 임팩트가 있었던 일임이 틀림없다.


나는 나의 왕따 시절 이야기를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한적이 없었다. 왕따의 주동자인 아이와 어떻게 해서 든 풀어보려고 전화를 했을 때 그 전화통화를 듣고 도와 도와주겠다고 한 엄마에게는 화까지 냈었다. 왕따인 내가 너무 창피했기에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게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사진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개가 왕따였다고 재미삼아 말했던 얼굴모를 그 아이처럼 혹여나 내가 왕따였다는 것을 다른 이들이 알았을 때 또다시 나를 왕따라는 프레임에 가두고 비웃지는 않을까 두려움에 마음속 깊숙히 묻고 또 묻었다.


["덮어놓은 것을 들추는게 철학이고 진리고 예술이야.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가 가장 감쪽같이 덮어놓고 있는게 무엇일 것 같나?" 이어령의 마지막수업,김지수,69p]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누구도 알지 말았으면하는 마음속 깊숙히 묻고 또 묻었던 이야기를 꺼내어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철학을 예술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픔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종종 덮어 놓은 아픔의 기억이 가끔씩 빈틈을 노려 뚫고 나와 마음을 힘들게하는것도 모자라 때론 창피함 까지 느껴져 고통스러웠었고 그 고통에서 조금은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진부하다 못해 구닥다리 같은 말, 글로 쓰면 치유가 된다는 그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처음엔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을 다시 생각해 내서 글로 쓰라고하니 상처를 후벼파라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쓰는 것이 마음을 치유해준다는 것은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저 사람들을 위로하기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방법이라고 단정지었었다.

아픈 상처를 쓰기 시작했을땐 하얀 종이위에 그것들을 쓰는 것 조차 버거웠다. 몸에 묻은 오물을 비누와 물로 깨끗이 씻어내듯이 그 일들을 하얀 종이에 옮기고 비워내면 내 기억속에서 그것들이 깨끗이 지워져 없던 일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쳇바퀴를 돌리며 불안과 고통으로 몸집을 키우던 그것을 크기가 정해진 종이에 꺼내 놓으니 더 이상 크기가 커지지 못했다. 몸집이 크고 무서운 것인줄 알았던 그것은 내가 상대할 만 했다. 아픔을 옮겨 적은 종이를 찢어 분풀이도 해보고, 나를 괴롭혔던 그 얼굴들에게 하고싶은 심한말도 휘갈겨 적어보았다. 그리고 어린 나에게 위로의 말들도 건네 보았다. 처음엔 마음의 상처가 덧나서 아팠다. 잘아물었다고 생각했던 것을 괜히 건드려 사서고생을 하는것 같았다. 그렇게 과거의 상처가 나를 괴롭힐때면 무조건 종이에 쓰고 또 썼다. 쓰면쓸수록 기억은 짙어 졌지만 창피한일이 아님을 인식하게되었고 이제는 조금 더 뻔뻔하게 나는 왕따였다고 세상에 외치는 글을 써본다.


[“‘이 고통을 반석 위에 쓸 수 있다면.’ 내가 지금 억울한 것을 바위 위에 새길 수 있다면…… 그게 욥의 마지막 희망이었어. 성경에 나오는 욥 이야기네.”

“원망조차 쓴다면 그게 희망이군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61p』]

지금까지 노력해왔던 것처럼. 앞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갈 나를 위해서 힘든 상처조차 글로 쓴다면 희망이 된다고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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