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부터 미니멀라이프를 주제로 책을 썼었다. 2018년 9월부터 지금까지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기 위해 물건들을 비워내며 많은 생각들을 해왔고 그것들을 멋진 책으로 엮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미니멀라이프에 대해서 책을 쓰려고 하니 기대했던 것보다 독자들에게 콘텐츠로 전달할 핵심 이야기들은 별로 없고 쭉정이들만 흩날렸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내 삶은 분명 달라졌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나였지만 한 권의 책으로 그것들을 엮어 내기엔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고 그렇게 나는 책 쓰는 것을 잠시 멈추었다.
한동안 공을 많이 들였던 만큼 실망도 컸던 탓에 글을 쓰는 행위 자체도 하기 싫었다. 글을 써보아야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쓰지 않아도 큰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쓰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학창 시절에 책도 거의 읽지 않고, 공부도 썩 잘하지 못했던 나라는 사람이 책과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는 어린아이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가진 듯이 기뻤다. 그래서 책 쓰기 중단을 선언한 후, 행복을 잃었다는 생각과 상실감이 밀려왔고 미련도 컸다.
나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글쓰기 스승님으로부터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책의 겉표지에 적힌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이라는 문장이 연둣빛을 띄고 있는 책이었다.
[자존감이 회복된다는 말과 행복해진다는 말은 같은 의미였다. (『자존감 수업』, 윤홍균, P11)]
책의 프롤로그에 적인 이 한 줄에 힘이 났다. 책 쓰기에 실패해서 낮아진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먼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보기로 했다. 나는 먼저 20년 지기 친한 친구 세명에게 나의 장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막상 나의 장점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니 부끄러웠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것을 하려고 하니 어색했고 나 또한 남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 준 적이 없기에 엄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살짝 있었다. 다행히 고맙게도 장점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던 나에게 친구들은 <나를 사용하는 설명서>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평소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런 것들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것을 읽으며 한없이 못나 보이던 나의 모습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30대 중반인 나에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처음엔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나에 대해서 생각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살아오면서 ‘나’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웃거나 울거나 화를 내는 표현만 해왔을 뿐, 그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대충 나의 감정들을 흘려보내기 급급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잘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지도 않았다. <행복은 내 안에 있다.>라는 말 역시 뜬구름 잡는 듯 한 두리뭉실한 말인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그 말이 지금은 제일 좋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곧 행복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실천해보고 그것에 대한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자존감 높이는 연습을 하다 보니 책 쓰기에 실패한 이유도 보였다. 미니멀라이프는 내가 좋아 진심으로 실천한 것이 아니라 유튜브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영상을 올리기 위해 급급했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조회수가 높은 다른 영상들을 따라 하기 바쁜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미니멀라이프를 나의 행복한 삶의 비법인 것처럼 포장하여 책을 쓰려했기 때문에 책을 쓰는 것이 힘들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맞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모습인지를 먼저 알아야만 나아갈 방향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양창순 p 202)】
처음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던 그 시간을 떠올려본다. 그 중심엔 내가 있었다. 그래서 좋았고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다 점점 반대가 되어갔다. 책을 써야 한다는 것에만 얽매여서 내가 왜 쓰는지를 잃어버려서 쓰던 책의 방향성까지 잃었던 것 같다.
나는 요즘 나의 생각들을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고 있다. 예를 들어 기분이 엄청 좋지 않을 때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와 감정들을 종이에 적어본다. 적은 이유들을 천천히 살펴보면 내가 어떤 것들에 상처를 받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가 있다. 적어 놓고 눈으로 그것들을 보면 좋지 않던 기분을 내려놓기도 훨씬 수월하고 나에 대해서 좀 더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기분이 고스란히 적혀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에 대해 자세히 설명이 가능하다. 이런 연습을 하면서 진짜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재도 찾아볼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주제로 한 책 쓰기는 중단했지만 나의 책 쓰기는 끝이 아니다. 새롭게 내가 잘 쓸 수 있는 주재를 찾아 나의 글쓰기라는 배가 더 큰 바다로의 항해를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다. 다음번 항해에선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도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