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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Nov 10. 2022

지연된 이정표(R620)

자폐 스펙트럼의 경계선에서.

20년 3월 7일에 태어난 이제 32개월(3살)이 된 둘째의 이야기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아이가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행동들을 보였기에 21개월(2살)이 되었을 때 발달검사를 받아보기로 결정했다.


생후 12개월 무렵 때까지 특별히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 개월 수에 맞게 배밀이, 뒤집기, 되뒤집기도 잘했고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쉴 새 없이 앉았다를 반복하며 걸으려 하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했다.(첫째가 걸음마를 늦게 떼었고, 걷는 것도 느렸기에  오히려 발달이 빠르다는 생각도 했다.)

15개월 무렵부터 아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집중력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한 자리에 앉아서 꽤 긴 시간을 책을 살펴보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책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을 틀어주면 집중해서 잘 보았는데 특별한 개입이 없으면 30분 이상 집중할 수 있었다.


19개월 무렵부터 누워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항상 작은 물건(작은 자동차 장난감, 지우개, 연필, 색연필 등)을 손에 쥐고 다녔는데 어느 날부터는 누워서 손에 든 물건의 끝을 유심히 보며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여겼다.

20개월 즈음부터 '어디가 아픈지 누워만 있으려고 한다'는 어린이집 선생님의 피드백이 많아졌고 또래 아이들보다 말도 늦어지는 것 같아 그동안 아이가 보인 행동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의 행동들을 검색해보니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이가 보이는 행동들과 대부분 유사했다. 아이가 말이 느려 영유아 검진도 미루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말을 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 겁나기도 했다. 왠지 더 기다리면 안 될 것 같아서 21개월에 아이의 성장발달검사를 진행했다.


자폐스펙트럼이 의심될 경우 소아정신과 진료를 본다. 그래서 소아정신과로 유명한 대형병원 진료를 보려고 예약전화를 돌렸는데 대기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4,5년이었다. 아이의 상태만을 진단받기 위해서만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니 기가 찼다.  A병원 소아정신과 예약은 해놓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니 소아정신과에 비해 진료대기기간이 짧은 소아재활의학과에서도 진료가 가능하단다. 그래서 같은 병원 소아재활의학과를 알아보았고 다행히 일주일 후에 진료가 가능해 진료예약을 했다. 소아정신과에서 전문적으로 자폐스펙트럼을 다루기에 만일 진료과를 잘못 왔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다행히 소아재활의학과 진료에서도 아이의

성장발달검사를 할 수 있었아이의 상태에 대해 진단받기까지 3주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베일리 발달검사를 진행했고, (2021.12.15) 21개월 아이는 인지 16개월(5개월 지연), 표현 언어 10개월(11개월 지연), 수용 언어 11개월(10개월 지연), 사회성 11개월(10개월 지연), 소근육 운동 19개월(2개월 지연), 대근육 운동 17개월(4개월 지연)의 상태로 의미 있는 발달지연 확인된바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놀이치료 등 재활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단순히 발달만 늦어진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가장 우려되었던 것은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인가하는 것이었기에 조심스럽게 아이가 자폐스펙트럼인지 의사에게 물었다.

36개월 이전의 아이는 아직 어려서 자폐에 대한 진단은 해주지 않는다고 하며 아이를 살펴보더니 애매하다고 했다. 아이의 행동을 보았을 땐 경계선에 있으니 재활치료를 진행하고 6개월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재활치료로 아이의 상태를 정상 범주로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진료실을 나올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되짚어보면 아이는 옹알이가 거의 없었다. 보통의 아기들의 경우 울음으로 의사표현을 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기억에 없을 정도였다. 첫째가 아주 예민한 아이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좋았다. 첫아이가 예민하면 둘째는 순하고 첫아이가 순하면 둘째는 예민하다는 이야기도 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거기에 크레인 현상(자신이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타인의 손을 끌고 가거나 도구처럼 사용하는 것)이 있었는데 말 못 하는 아이가 해달라고 의사표현을 하니 똑똑한 것인 줄 알았다.


발달검사를 진행하기 전까지 둘째 아이가 보인 행동을 정리해보았다. 아이의 행동이 조금이라도 이상해 보인다면 최대한 빨리 전문적인 진단을 받아보시길 조심스럽게 권해본다.

[20개월까지 아기가 보였던 이상행동.]

1. 옹알이가 없다.

2. 무표정이다.(표정이 단조롭다.)

3. 눈 맞춤이 되지 않는다.

4. 호명 반응이 없다.

5. 아픈 곳이 없어 보이는데 기운 없어 보이며 누워서 한참을 뒹굴거린다.

6. 색연필(뾰족한 끝)을 보며 시각 추구를 한다.

누워서 싸인펜을 관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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