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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28. 2020

작은 기적


살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억울한 일을 맞닥뜨리게 된다. 어렸을 때는 무슨 일만 생기면 가슴이 콩닥콩닥하고 종일 그 일을 걱정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문제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지금의 회사에 들어와서 나는 참 많은 일을 겪었다. 6개월의 수습 비행 시절, 운 좋게 프리미엄 기내에서 일 한 날이 있었다. 해당 편 승객들과 해당 편 사무장에게 칭송 레터를 여럿 받았지만, 수습 비행의 기간을 마치고 정식으로 비행을 시작하는 것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내 칭송 기록은 언급되어 지지도 않았다.


상을 받고자 한 일이 아니지만, 내 기록이 의아해서 물어보니 내 칭송 레터는 수습 기간 승무원들을 담당하는 매니저의 무관심으로 심사에 올라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 몇 달 뒤에는 스케줄팀의 어이없는 실수로 무단결근 처리를 받았다. 라인 매니저는 이 결근으로 인해 내게 경고 조치가 주어질 수 있다고 말하며 몇 주 뒤 본사 미팅 날짜를 잡았다.


명백하게도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기에 나는 참 억울했다. 그리고 몇 주 뒤에 있을 매니저와의 형식적인 미팅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참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주니어인 내가 스케줄팀의 실수를 어떻게 밝혀야 할지' 생각했다. 그리고 하나하나 주어진 비행 스케줄을 무겁게 소화하고 있었다.


그날은 상하이로 가는 밤 비행이었다. 새벽 1시 일찌감치 출근하고 그렇게 밤을 새우는 비행이 시작되었다. 레바논 출신의 부사무장과 순조롭게 일하던 중 그가 갑자기 내 매니저가 누구인지 물어봤다. 그리고 그녀가 지금 2층 비즈니스 케빈에 타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내 매니저가? 아프리카계인 그녀가 왜 하필 상하이행 비행기에? 순간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노련한 부사무장은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고 나는 문제를 털어놨다. 그는 내게 우선 가만히 있으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물론 매니저이지만 오늘은 승객으로 탑승한 것이고 밤 비행으로 피곤할 수 있으니 일부러 가서 다음 주에 있을 미팅 문제로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상하이 도착 전 잠깐 올라가 가볍게 인사만 하는 것이 좋을 거라 조언했다.


나는 그의 조언에 수긍했고 마음을 비우면서 첫 번째 서비스를 끝냈다. 동료들과 갤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순간 내 매니저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모든 크루들에게 인사를 하러 여기저기 기내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녀가 혹시 나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녀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당연히 나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때 부사무장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매니저와 인사를 하고는 내가 참 괜찮은 동료라며 나에 대한 좋은 리포트를 쓰려던 참이라고 말한다.


나는 멋쩍게 웃으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단지 상사에게 나를 칭찬해줘서 고맙다기보다는, 그냥 남의 불편한 상황을 매끄럽게 만들어주려는 그의 인간적인 노력이 참 따뜻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주 뒤 본사에서 치러야 할 미팅은 상하이로 가는 비행 편에서 급히 성사되었다. 나는 차근차근 어떻게 상황이 일어났는지, 스케줄 팀과 어떤 오해가 있었는지 그녀에게 설명했고 그녀는 이성적으로 나의 말을 듣고, 내게 묻기도 했다.


내겐 회사생활 중 꽤 억울했던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한번 같이 일한 동료 승무원과 다시 만나 비행하기도 힘든 비행 스케줄 중에 자기 매니저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억울함’에 대해서 유기성 목사님께서 쓰신 칼럼을 공유해 본다.


'정말 억울하다면 감사한 일이다'


진짜 두려운 것은 실제로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때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때는 빨리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잘못이 없고 정말 억울하다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습니다.

진정 누가 잘했는지, 누가 잘못했는지 결국은 다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거짓을 말한 사람, 억울하게 만든 사람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온전하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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