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ur Oct 26. 2020

뒤틀린 심리


어떤 사람들은 올바르고 정직한 것과는 모양이 다른 것에 강하게 끌린다. 그리고 여기서 옳고 그름을 말하고자 할 때 나는 그 기준을 '도덕성'으로 본다. 어쩌면 현시대에 사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뒤틀린 심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신에게 심판을 받아왔음을 본다.


한 커플의 만남에서도 종종 올바른 쪽보다는 나쁜 행동을 하는 파트너에게 더 강한 관심과 우대가 주어짐을 본다. 그들은 상대방의 나쁜 행동을 아파하면서 더욱 그를 매력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정직한 모습의 사람에게는 금세 매력 없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이 쉬울까? 아니면 속임수와 편법을 쓰는 사람들이 큰 보상을 받는 것을 보는 것이 쉬울까? 대부분 보이는 것들이 후자에 속하기에 우리는 종종 마음에 상처를 입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직한 사람들이 세상의 보상을 받기 위해 속임수를 쓰는 사람으로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산다는 것은 왠지 눈에 보이는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과 이미 불공평한 게임을 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 혹은 그가 자신의 '도덕성' 혹은 '영혼'을 팔아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자신을 뽐내고 있지만, 신은 이미 그 마음 깊숙한 곳에 구멍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얻는 부와 명성이 전부라면 우리는 왜 도통 채워지지 않는 영혼의 ‘허기’와 마음의 ‘허무’를 느끼는 걸까? 자신의 모습에도 올바름 과는 동떨어진 이 뒤틀린 심리가 있는가? 그 뒤틀린 심리가 어디에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다면 모래성처럼 조금씩 엉망진창으로 무너져내리는 그 삶이 전부일 것이라 체념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의 젊음에도 수많은 뒤틀린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올바른 결정이 뒤틀린 결정을 이기는 거룩한 삶을 사는 자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신의 기준이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내 하루하루를 크고 작은 죄에서 구원해 주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신도 알았으면 좋겠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


아무리 작게 쓰이더라도 결코 맞바꾸지 않겠습니다. 제 이름은 저 별너머 천국의 전당에 쓰여있습니다.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온갖 명성과 영광보다 차라리 여기서 잊히더라도 저 위에 제 이름을 둘 것입니다. 축복합니다. 배우 제임스 카비젤 James caviezel

작가의 이전글 인플루언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