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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간의 일본 고전 영화 여행

넷플연가 '동경 이야기' '태풍클럽' '반딧불이의 묘' '쉘위댄스'

by 최씨의 N차 도쿄

지난 2개월 동안 넷플연가라는 플랫폼에서 일본 고전 영화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3주에 한 번 토요일 오후에 만나 좋은 사람들과 일상적이면서도 진지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나눌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일본 영화 산업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시대별로 대표작 (또는 문제작) 들이 엄선되었습니다. 영화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었을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임 중간 중간에는 종로 낙원상가 4층의 실버영화관에 다녀온다거나, 개인적으로 관심이 생겨 아트나인에서 하는 ATG 일본 영화제에서 '장미의 행렬'을 보고왔더랍니다. 굉장히 여운이 남는 경험이어서 회차별 한 작품씩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 1회차. 東京物語 (도쿄 모노가타리 / 동경 이야기), 小津安二郎 (오즈 야스지로) 1953년 작

tokyostory_2.jpg?fit=2000%2C1414&ssl=1 일본 영화계 4대 거장으로 불리는 오즈 야스지로의 명작. 초기 3대 영화사 닛카츠(日活), 도호(東宝) 그리고 쇼치쿠(松竹) 중 쇼치쿠의 대표적인 감독이었다고 합니다.

도파민 넘치는 최근 영화들의 속도감에 절여졌던 저로서는 간만의 잔잔하고 느린 영화로 초반에는 적응이 안되기도 했지만, 점점 빠져들었던 영화였습니다. 롱테이크/다다미 쇼트라는 촬영 기법 속 느린 시간의 흐름 가운데서도 인물들의 기분과 감정이 강렬하게 전해졌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여느시대나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도쿄로 상경했지만, 자녀들은 마음이 쓰이면서도 치이는 현실에 부모를 데면데면하게 대하고 맙니다. 늙은 부모의 외로움과 함께, 그 누구보다도 자녀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전후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교환했지만, 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고 느껴졌습니다. 알면서도 어려운게 효도인 것 같습니다.



○ 台風クラブ (타이후 크라브 / 태풍클럽), 相米慎二 (소마이 신지) 1985년 작

cc6eadba7a34769f3febac0a2284e075.jpg 각종 영화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제1회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 도쿄 그랑프리 수상작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많은 사람들이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재기발랄한 청소년물인지 알았건만, 보는 내내 충격의 연속이었더랍니다. 현실 기준으로 따지자면 살인 미수, 폭력과 강간, 자위, 광란의 알몸 춤사위 등의 불편한 요소들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풀어내면서 더더욱 임팩트가 컸던 영화였습니다.


더더욱 충격이었던 것은 이 영화가 가장 좋았다고 하는 멤버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청소년기의 불안정함과 질풍노도의 시기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들 소외, 무책임한 기성세대 (부모, 학교) 등 다양한 문제들을 청소년이라는 매개를 통해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아직도 불편한 감정이 남아있는 걸 보면 작가의 의도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도 볼수 있을것 같습니다. 당시 많은 상을 휩쓸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화의 작품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볼수 있었습니다. 모임이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영화이면서도, 접하게 되어서 정말 좋았던 영화입니다.



○ 火垂るの墓 (호타루노 하카 / 반딧불이의 묘), 高畑 勲 (타카하타 이사오) 1988년 작

_100889876_3b34849b-f1a9-4304-af98-185848a29382.jpg.webp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타카하타 이사오의 작품

우리가 흔히 지브리 스튜디오를 떠올리면, 따뜻하고 신비롭고 다정 다감한 그림체의 애니메이션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체로 어둠을 그리는 작가가 있었다니.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또 다른 한축을 이루었던 타카하타 이사오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담겨 있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반딧불이의 묘'는 너무나 익숙한 그림체로 일본 전쟁 직후의 참혹함과 가난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그려냈기에 더더욱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폭격을 맞은 사람들의 피흘리는 모습과 시체, 굶주림으로 홀쭉해진 여동생을 바라보는 오빠의 모습 등 참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영화는 '이웃집 토토로'와 같은 날에 개봉했다고 하네요. '반딧불이의 묘'가 더 반응이 좋았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는 지브리의 이미지가 지금은 어땠을지 상상해봅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피해를 입는 장면만 나오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저는 일본이 이길것이라는 망상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 전쟁의 참혹함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전쟁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반성의 작품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타카하탙 이사오의 폼포코, 추억이 방울방울 등 다른 작품을 찾아봐야 겠습니다.



○ Shall we ダンス? (쉘 위 댄스?), 周防正行 (스오 마사유키) 1996년 작

shall-we-dance-9-1.jpg 누구보다 성실한 회사원이 잠깐 외도? 하는 이야기

주인공인 스기야마 쇼헤이는 누구보다 성실한 어느 회사의 부장으로, 취직과 결혼, 자녀와 마이홈(자가)의 꿈을 모두 이룬 모범생입니다. 그런데 모든걸 이뤘음에도 막연히 기대했던 것보다 행복하지 않고 쳇바퀴 굴러가는 삶이 허무하기만 합니다. 그러다 매력적인 여성에 이끌려 홀린듯 사교댄스의 길로 빠져들게 됩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아마추어 대회까지 나가게 되지만, 잠깐의 일탈을 뒤로 성실한 가장으로 돌아오면서 마무리 됩니다. 어떤 멤버는 주인공이 성실한 가장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각종 상을 휩쓸 수 있었다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당시에 더더욱 안좋은 길로 빠져드는 사람도 많았다고 하고 일본 버블붕괴 직후라는 시대에 비추어보면 더더욱 공감을 많이 샀던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허무함에 대해 공감은 하지만 선을 넘지말라는 계도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영화라고도 볼수 있겠습니다.


한국에 비추어 보면, 지금은 결혼이나, 출산, 자가 마련 등을 하지 않는 등 좀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러한 것들은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 보다는 그 과정을 즐길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선을 넘지 않는 외도를 섞어가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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