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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머리 Jul 29. 2020

납치사건, 그날

경찰관의 어느 하루

경찰관 기동대는 집회시위 관리를 포함해 다양한 치안 현장에서 시민의 안전을 위해 투입되는 의무경찰이 아닌 전원 경찰관들로 구성된 부대이다.

나는 경찰관 기동대 2년 의무복무 조건으로 경찰관 시험을 합격하게 되었는데, 집회시위 현장에 주로 일을 했었고, 간혹 가다 관내 긴급신고 사건이 있는 경우에도 출동을 하기도 했다.

그날도 담당하고 있는 지역에 '납치 신고'가 들어와 우리 제대(군대로 치면 '소대')가 투입되었다.


112 신고는 '모텔에 감금된 상황이고, 남성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한 여성의 구조 요청이었다.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신고 전화는 도중에 끊겼고, 경찰서 상황실에서 위치 추적을 하였는데, 인근 숙박시설이 많다 보니 특정하기가 어려워 경찰관 기동대에 출동 요청이 있었던 것이었다.

출동 중에 기동대 버스에서 대략적인 신고내용을 전해 듣고, 나를 포함한 경찰관들은 신고 현장 인근에서 흩어져 신고인 수색에 들어갔다.

신고의 위중함을 감안해 경찰관들은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포위망을 좁혀갔고, 출동 10여분 만에 나는 신고인의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하게 된다.

그때 당시 나는 수색을 위해 동기 형과 좁은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는데, 내 뒤 건물 주차장에서 신고인(피해자)의 '살려달라'며 부르짖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신경은 최고치로 곤두서 있었고, 자동적으로 내 몸은 피해자 쪽으로 돌아서며 뛰어갔다. 주변에 가해자가 있었다면 어떤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동기 형은 삼단봉을 뽑아 들었고, 나는 피해자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다행히 가해자는 보이지 않았고, 그제야 안심하고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을 하게 되었다.


나는 거친 숨을 가다듬으며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찢긴 상의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맞은 흔적이 보였으며 신발도 챙기지 못한 채 급하게 뛰쳐나온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개요는 이랬다. 피해자는 며칠 전 사귀던 남성에게 헤어짐을 통보했는데, 화가 난 남성이 피해자를 인근 모텔로 끌고 가 며칠 동안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폭행을 했으며, 남성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경찰 신고를 하게 된 것이었다.

(신고 사실을 알게 된 안 남성은 도망쳤고, 주변을 수색하던 다른 팀 직원에게 붙잡혔다.)


사건 당시에 경험이 적은 신임 순경이었기에 피해자를 현장에서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미숙했다. 가해자는 즉시 체포 절차를 진행하면 되는데, 피해자에 대한 현장 보호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피해자는 내 손을 잡고 펑펑 울기 시작했고, 잡은 손의 떨림이 며칠간 겪었던 충격과 공포심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당황해 잡은 손을 계속 빼고자 했는데, 피해자는 내 손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흥분해서 불안해했고, 현장에 있는 피해자와 불필요한 얘기라도 했다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꺼같아 일부러라도 외면하고자 했다.

 분 뒤 인근 순찰차가 피해자를 데려가고 나서야 상황은 끝났다.


피해자가 잡은 그 손은 나를 향한 구원을 요청하는 절박함이었고, 경찰관을 만나 공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행동이었을게다.

범죄 피해 직후, 불안 처해있는 피해자가 현장 경찰관을 처음 만나게 될 때, 경찰관의 조치에 따라  피해자의 인생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평생 한번 있을법한 강력 사건의 후유증은 피해자에게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 분명한데, 안심을 주는 나의 행동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재는 전국 모든 관서에 '피해자 보호 전담 경찰관'이 배치되어 있다.)


내게는 특별하지 않고 반복되는 하루가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특별하고 중요한 하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찰관 임이기에 나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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