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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샘머리 Aug 30. 2020

너와의 감격스러운 데이트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하루

첫 아이가 세상에 나오던 날을 기억한다.

몹시 추운 겨울날이었는데 아내는 예정일이 3일이 지났도록 진통이 없어 촉진제를 통한 유도분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저녁 우리의 조급한 마음을 알았는지 뱃속의 아이가 조금씩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나와 아내는 초조한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지만, 분만실 간호사는 아직 멀었으니 다음 날에 와도 좋다며 우리를 돌려보냈다.

엇잡히 내일 다시 올 텐데 입원시켜달라 했다. 모든 게 처음이라 병원에 있는 게 안전하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더 심한 진통이 오기 시작했고, 간호사들이 오고 가며 조만간 첫 아이를 만나겠다는 설렘과 아내의 고통 섞인 소리에 압도적인 긴장감  몸을 휘어 감았다.

분만실은 가족실이라 남편인 나도 출산 현장에 함께 있었는데, 절규에 가까운 아내의 진통에 같이하지 못하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이이를 보게 된다는 긴장감 섞여있는 내 감정은 야말로 의 연속이었다.

 사이 어진 우리의 사투는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결실을 맺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탯줄을 잘라달라는 의사의 권유에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 몇 번이나 가위질을 했다.(둘째는 경험이 있어서인지 한 번에 해냈다.)

그 날을 기억하면 지금도 손에 땀이 날만큼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큰 아이는 딸이지만 아들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항상 무언가 분주한, 모두 일상이 바쁜 아이다. 성격 급하고 증도 많지만 똑똑하고 베풀 줄 아는 정 많은 아이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지만 리더십이 있고 활발해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도통 실감이 나질 않는다.

아직도 내게는 아장아장 걸으며 옹알이하던 아기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어서이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가 더 크기 전에 둘만의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생각했다.

아이는 당시 '옥토넛'이라는 만화를 좋아했는데, 바다 생물체 캐릭터들이 바다 탐험을 하는 내용이었다. 마침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스페셜 행사를 진행하는 소식을 듣고, 아이와 함께 서울 나들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까지 2시간 거리를 차로 가기에는 부담될 듯해서 집 앞에 이는 시외버스 터미널을 이용하기로 했다.

아빠와 가는 여행에 아이도 한 껏 들떠 있었고, 나도 기분 좋게 짐을 챙겼다. 각종 예약과 준비를 마치고 순조롭게 출발을 하였는데,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버스를 처음 타 본 아이의 극심한 멀미였다. 1시간 정도 갔었을 때였는데 아이는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울었고, 급기야 토사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하여 물티슈를 꺼냈지만, 자리 위의 흥건한 토사물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행히도 맨 뒷자리에 앉아 눈치챈 사람들은 없는 듯했다.(지금 생각해 보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줬을지도 모르겠다.)

닦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대충이나마 자리를 정리했는데, 30여 분간 남아있는 도착 시간이 내게는 30시간은 되는 듯한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이의 옷은 토사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런 아이를 달래며 인근 백화점에서 마네킹에 걸려있는 옷으로 바로 갈아 입혔다.

여기까지 이 고생을 하며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컨디션을 되찾는 듯해 보였고, 목적지인 코엑스로 향했다. 마침 서울에 계신 아버지와 할머니를 뵙고 식사를 한 후에 아쿠아리움에 도착했다. 고생한 만큼 볼거리는 제법 흥미로웠다. 특히, 콰지라는 캐릭터가 물속에서 헤엄을 치며 인사를 하는데, 같이 있던 아이들의 함성소리는 마치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지금도 그 콰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아이는 최고의 사진이라고 꼽는다.

여하튼, 다사다난했던 서울 일정을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데, 멀미가 또 문제였다.

다행히 토사물을 뿜어내진 않았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길래 도착 정류장까지 가지 못할 듯 해 전 정류장에 내려 무작정 내렸다.

퇴근시간 택시도 잡히지 않아 지친 아이를 업고 7km가량 떨어진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바닥난 체력으로 못 갈 거 같았는데, 등에 업힌 아이가 내가 힘든 모습을 알아챘는지 노래를 불러줘 집까지 올 수 있었다.

난생처음 경험한 딸과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아빠와 함께 한 서울 나들이 기억이 아이에게는 아직도 머릿속 깊이 박혀있는 듯하다.

그날이 벌써 일 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때의 사진을 보여주면 무슨 장면이었는지 정확히 이야기한다.

가끔가다 아이에게 재밌었던 일을 물어보면 아이는 '아빠랑 같이 서울 갔던 거"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고생하며 다녀온 여행이 아이에게는 정말 행복한 추억이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그런 기억을 남겨 줄 수 있었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감사한 하루임에 분명했다.  


최근에 본 책인 배우 하정우의 '걷는 사람, 하정우'에는 이런 글 귀가 나온다.

숲에서 크는 어린 나무들은 도심에 옮겨 심은 어떤 가로수와는 달리 훨씬 더 단단하게 성장하고 오랜 세월을 산다고 한다. 키 큰 어른 나무들이 뜨거운 빛을 통제해주어 튼튼하게 자라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나무들은 숲이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어린 나무는 그 안에서 기후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뿌리를 뻗어간다.


아이를 경쟁과 이기심이 차가운 들판에 내몰리기를 원치 않는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고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한 껏 발휘해 함께 하는 세상에서의 충분한 역할을 맡으며 살기를 원한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어른 나무가 되어 세상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우리 아이들은 강건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이와 함께했던 하루가 모여 튼튼한 큰 나무로 성장할 때까지 나는 견디고 인내하는 힘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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