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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Apr 24. 2019

야스쿠니 참배에 '외교청서' 도발.. 일본 發 외교공세

 매년 이맘 때면 들려오는 불편한 소식이 있다. 바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대한 일본 고위 관료 정치인들의 참배나 봉납(捧納) 관련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매년 4월 21일~23일은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 예대제(春季例大)' 기간으로, 본 제사는 10월 추계 예대제(秋季例大祭)와 함께 신사의 가장 중요한 제사로 취급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올해도 이 기간에 맞춰 '마사카키(真榊)'라는 공물을 야스쿠니 신사에 봉납한 것으로(21일) 알려졌다.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예대제(출처: 야스쿠니 신사)


 하지만 올해는 좀 더 심각하다. 야스쿠니 신사 공물 납부는 2019년판 '외교 도발'의 전초에 불과했다. 국회의장 격인 오시마 다다모리(大島理森) 중의원 의장, 다테 주이치(伊達忠一) 참의원 의장의 공물 봉납이 이어졌고 이틀 후인 23일(화) 일본 우익 정치인 70명이 일제히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날 일본 외무성은 독도 영유권, 레이더 갈등,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 양국 간 이슈화 된 사안들을 일본 중심으로 왜곡한 「외교청서」까지 확정했다. 일본 「외교청서」는 1957년부터 매년 발간되는 일종의 '백서'로 전년(2018) 기준 일본 외무성이 파악한 국제정세와 일본의 외교활동 전반을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지침이다. 그러나 거기에 포함되는 도발적 내용으로 말미암아 「외교청서」를 둘러싼 한·중·일 3국의 외교 논쟁이 해마다 펼쳐지고 있다.


4.23 '일본 發 외교공세'


 이 정도면 가히 '외교적 파상공세'라 부를 만하다. 특히 이날 발표된「외교청서」의 한일관계 관련 내용은 사뭇 충격적이다.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 관계 추구'에 대한 내용이 아예 삭제됐다. '미래지향'에 관한 표현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비난할 때마다 수시로 언급하는 '변명적 수식어'로 아무리 한일관계가 좋지 않던 시점이라도 유화적 메시지의 일환으로  삽입되었던 표현이다. 그러나 2019년판 「외교청서」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최소한의 온건적 표현도 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로 보인다.

초계기-레이더 갈등 관련 사진(출처: 국방부)

  이어 작년 한 해 한일 양국 사이에서 쟁점화되었던 ▲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  화해·치유 재단 해산 ▲ 초계기-레이더 갈등  ▲ 한국 주최 국제관함식 불참 문제 등을 모두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 움직임이 잇따랐다(韓国側による否定的な動きが相次)'며 전면 왜곡·부정했다. 모든 논쟁의 결론을 '한국 측의 부정적인 움직임'이라는 문장 하나에 함축하고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2페이지 '특집 면'으로까지 편성하여 '최종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사안이라는 그들의 입장을 강조했다.

 또 한 가지 의미심장한 부분은 이러한 「외교청서」가 하필이면 야스쿠니 신사의 가장 중요한 제사일인 23일에 맞추어 확정됐다는 것이다. 실제 올해처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일'과 「외교청서」 확정일이 겹친 경우는 최근 5년간 처음 있는 일이다. 더욱이 「외교청서」 하나만으로도 그 도발적 내용으로 말미암아 매년 주변국의 항의와 비판을 받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슈가 횡횡한' 이 시점에 두 가지 쟁점 사안을 동시에 내놓는다는 것은 일본 정부의 사전 의도 없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우리로서는 너무나도 날카로운 내용의 도발을 당했다. 반면 오랜만의 속 시원한 '한방'에 일본 우익들은 신이 났다. 일본의 대표적 우익 언론인 '산케이 신문'은 '한국 측이 만들어 낸 수많은 문제를 건드렸다'며 환호했고 관련 기사는 산케이 신문 인터넷 지면에 토픽으로 오후 내내 오르며 정치면 뉴스 1위, 전체 뉴스 2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정부 대응은 판박이


 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한발 늦은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 등 고위 정치인들의 공물 봉납이 이루어진 21일, 외교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논평을 올리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 관련 문제 발생 당일 즉시 발 빠른 논평으로 대응한 지난 '17~'18년에 비교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판에 박힌 듯한 외교부 논평 내용은 더 실망스럽다. 작년(2018) 일본 외교청서에 대한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올해 외교청서에 대한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비교해보면 두 문건이 너무나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동일한 문체와 유사한 문장과 수식어가 사용되고 있다. 외교부 논평은 일반적인 행정 문건과 다르다. 한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식 입장이기에 외국 언론에 의해서도 빠르게 전파된다. 한일 양국의 외교부가 물밑으론 어떤 입장을 주고받건, 일반 국민들이 자국 언론을 통해 가장 빠르게 인지하는 기초 문건은 바로 논평인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2019년 외교부 대변인 논평은 2018년 문건과 비슷하다는 논란을 차치하고도 실망스러운 면이 많다. 금번 日「외교청서」에서는 비단 독도문제뿐만 아니라 위안부 문제, 일제강제 징용 배상 판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에 대한 일본의 왜곡적인 입장이 적시됐음을 앞서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부는 독도 이외의 문제들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변인 논평 1~3호 모두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내용이다. 어째서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는 논평이 없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최소한 현재까지 드러난 쟁점 사안들에 대해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익숙함의 함정


 일본의 도발이 계속되면 이에 대응하는 국가들의 피로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매년 비판을 가해도 변함없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과 교과서 왜곡, 정부 문건인 「외교청서」와 「방위백서」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우리를 공격할 무기는 이렇게도 많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가 전범국인 일본의 도발에 매번 시달려야 한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어느 순간 익숙함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 실제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이 합사 된 1978년 10월 17일 이후 일본의 총리들은 1986년부터 20여 년간 단 한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물꼬를 텄고 이후 2006년까지 내내 일본 총리의 참배가 이루어졌다. 2013년에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이러는 순간, 일본 총리들의 야스쿠니 참배는 마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일본 우익들의 머릿속에 뿌리내렸다. 


 하지만 우리 역시 익숙함에 빠져있지 않을까? 장기영 박사는 본인의 연구(2018,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여론 분석, 2018)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연구가 한일 관계 보단 '중일 관계'에 초점을 두고 조명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만큼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논의가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반의 인식은 어떨까? 계량화할 순 없지만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물 봉납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참배를 하지 않고 공물을 봉납하는 것 정도로는 크게 이슈화되지 않는 언론 추세도 있지만 6년째 이어지는 이 행태에 나도 모르게 '올해도 야스쿠니. 그나마 참배는 안 했으니까'하는 익숙함의 우(愚)를 범하진 않았을는지. '4.23 일본 發 외교공세'에 즈음하여 생각해볼 과제다.



*본 글은 오마이뉴스('19.4.23.)에도 기고된 글입니다. 기사는 본 링크를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사 링크: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47&aid=000222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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