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역사갈등의 최첨단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냉철히 분석하고 그 왜곡적 실상을 알린 영화 <주전장>이 지난 25일(목) 한국에서 개봉했다. 본 영화는 앞선 지난 4월 일본에서 먼저 개봉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5만 명 이상의 누적관객을 동원, 각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영화 <주전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의 목소리들을 심플한 '인터뷰'의 형식으로 정리, 서로의 주장들을 교차, 대조해가며 속도감 있게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이와 같은 진행방법은 결론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가지 않고 관객의 직접 판단을 유도하는 일종의 장치라 할 수 있다. 본 영화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봤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성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먼저 개봉한 일본에서 강렬한 비난에 직면했다. 우익단체들의 <주전장> 상영금지 기자회견이 있었는가 하면, 영화 출연자 일부는 미키 감독에게 소송을 걸겠다는 의사를 전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전장>의 지적에 광분하는 「일본회의」
특히「일본회의」의 반발이 거세다. '일본회의'는 영화 <주전장>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은폐하는 대표적인 세력으로 지목됐다. 그들은 영화 <주전장>이 자신들을 ▲ 과거 일본제국으로의 회귀를 염원하는 반인권, 파시즘적 단체로 표현했다며 미키 감독을 맹렬히 비난했다.
결국 영화 <주전장>의 일본 내 최초 개봉을 하루 앞둔 4월 19일, 「일본회의」는 영화 <주전장>에 대한 비판적인 성명문을 발표한다. 영화 <주전장>은 '근거 없는 망상', '사실무근'이며 영화 인터뷰 내용도 일본회의의 공식입장이 아닌 '개인의 주장'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반론이었다. (일본회의 성명문 <About the documentary film "The Main Battleground of The Comfort Women Issue>, '19.4.19.)
이상한 일이다. 영화 <주전장>에 등장하는 일본회의의 구성원, '카세 히데아키', '스기타 미오', '사쿠라이 요시코' 등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반인권적 발언과 과거 일제의 침략전쟁을 부정하는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일본회의 내에서도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카세 히데아키'는「일본회의」의 대표의원, '스기타 미오'는 국회의원(중의원), '사쿠라이 요시코'는 일본회의 산하기관 대표) 그런데 무엇이 '근거 없는 망상'이라는 것일까?
사실, 영화 <주전장> 이전에도 일본회의에 대한 비판은 많았다. 텍스트로는 《일본회의의 정체》, 《일본 우익 설계자들》등이 있고, 일본 <아사히 신문>, 영국 <이코노미스트>, 프랑스 <르몽드> 등 언론에 의한 비판적 분석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도 일본회의는 이런 류의 비판들을 '음모론' 정도로만 취급해 왔다. 이를테면 '일본회의는 일본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꿈꾼다'는 주장에 대해 "일본회의가 공식적인 표명을 한적은 없지 않으냐"는 논리로 받아친다. 영화 <주전장>의 일본회의 비판도 이와 유사한 패턴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에 일본회의의 공식 홈페이지를 조금 더 심층 깊게 들여다봤다. 그토록 그들이 선호하는 '공식성', '공식적인 주장'이 과연 없었는지를 반박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일본회의, 제국주의 시대로의 회귀를 '분명히' 꿈꾸고 있다.
일본회의의 '공식' 기관지 월간 <일본의 숨결> 2013년 12월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대담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일본 최고의 순간 - 대동아 회의와 대동아 공동 선언」이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일제 침략전쟁 당시 '도조 히데키' 등 전범과 '만주국', '필리핀' 등의 친일세력 대표들이 모여 찍은 기념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사는 이때가 "일본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좋은 때"라며 찬양한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아시아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태평양 전쟁'이 '일본의 가장 좋은 때'였다는 주장은 전쟁으로 인한 일제의 범죄행위를 완전 부정하는 주장이다. 그들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 해방을 위한 '대동아 전쟁'이었고 때문에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전쟁을 통해 피해를 입은 수천만명의 아시아인, 피해자를 모독하는 말이다.
참고로 이 기사에 언급된 '대동아 회의'도 전쟁의 수세에 몰린 일제가 친일세력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주최한 고육지책에 불과했다. 오죽하면 '꼭두각시 인형들의 모임'이라는 비판을 연합군으로부터 받았을 정도.
하지만 기사의 내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본이) 아시아 해방, 유색 인종 해방의 대동아 전쟁을 끝까지 싸워 낸 결과, 전후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속속 독립국이 탄생했습니다. (중략) 오바마 대통령이 탄생하고, 골프의 '타이거 우즈'와 테니스의 '윌리엄스 자매'가 활약할 수 있는 것도 사실 일본의 덕분입니다"
*<일본의 숨결> 2013년 12월호 기사 中, 일본회의 대표위원 '카세 히데아키'의 언급,
*<しんぶん赤旗> ('14.3.14.)에서 참고
일본이 수행한 침략전쟁에 의해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해방됐으며 이를 통해 흑인이 해방,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고 '타이거 우즈'와 '윌리엄스 자매'가 활약할 수 있다는 말인데, '망상'이라 함은 이런 것이 망상 아닌가?
이처럼 일본회의의 '공식' 기관지 일본의 숨결은 일본의 침략전쟁 시기를 '가장 좋았던 때'로 찬양하고 동경하는 내용의 기사를 명백히 노출하고 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인권의식
일본회의는 일본군 위안부가 합법, 자발적이었으며 인권이 억압된 노예가 아니었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제기하는 위안부 문제를 '세계적인 선전전'이라느니 '역사왜곡, 날조'라며 비난해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회의 설립총회, 기관지, 각종 세미나 등에서도 분명히 언급되고 있기에 일본회의의 공식적인 입장임에 틀림 없다.
특히 자신들이 인권 억압 단체라는 것에 민감한 일본회의는 위안부 제도 또한 인권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인권'이라는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아래는 일본회의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설의 일부다. '마츠쿠니 쿠니토시'라는 일본회의 도쿄본부 간부가 작성했다.
" '납치'(위안부 강제연행)를 저지하기 위한 폭동 등이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노예사냥'*이 없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아닐까. (중략) 위안부는 민간업자에게 이끌려 고수입을 요구하며 전장까지 갔던 여성들이다"
*<일본의 숨결> 2011년 12월호
*노예사냥이라는 표현은 1982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 '요시다 세이지'씨의 발언 등에서 유래
영화 <주전장>에서도 나오는 설명이지만 인권이 억압되는 상황이란 무력의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그 '상태'가 억압적인지에 초점을 둔다. 즉, '족쇄'를 팔다리에 차고 있어야만 노예가 아니라, 족쇄를 차지 않았더라도 모든 것이 억압된 노예적 상태에 놓인 것을 '노예'라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이에 기본적으로 인권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폭동이 없었으니 강제성이 없다"는 따위의 주장을 근거로 삼지 않을 것이다. 폭동이나 유혈사태가 없었으니 자발적이라는 표현은 조선인들이 일제에 억눌려 있는 '식민지적 인권상황'을 아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바닥을 치는 일본회의의 인권의식을 보여준 사례는 또 있다. 2015년 10월 일본회의는 '야마기와 스미오'라는 인물의 강연회를 주최한다. '야마기와 스미오'라는 인물 자체도 대단히 우익적이고 혐한적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이지만 더 놀랄 것은 이 인물이 지은 책이다. 일본회의 주최의 이 강연회 포스터에는 강연자가 지은 저서에 대한, 아래와 같은 설명이 실려있다.
"위안부 문제의 핵심이 여기 있다. 위안부는 합법적인 전지(전쟁터)의 매춘부였다"
백번 양보해, 출판사의 책 소개를 단순히 실었을 뿐이라고 하더라도 인권을 아는 단체가 '이렇게 입에도 담기 힘든' 비하 표현을 쓸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이다.
군국에 대한 향수: 일본제국헌법에 대한 추앙
일본회의가 추구하는 가장 핵심적인 목표는 바로 현행 일본 헌법의 개정이다. 특히 일본의 국제적 무력 행사와 이의 수단이 될 군대의 보유를 전면 금지한 일본 헌법 제9조는 일본 우익들에게 '일본의 진정한 자주'를 가로막는 독소조항으로 대상화되어 있다.
일본회의는 평화헌법이라고도 불리는 현행 일본 헌법을 점령군에 의해 강요된(押し付けられた) 헌법임을 숱하게 주장해왔다. 일본회의의 주장에 따르면 강요된 헌법을 버리고 일본 국민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 실상, 이 새로운 헌법의 모델은 바로 일본제국헌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회의 홈페이지에는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헌법안이 올라와 있다. 「일본회의의 신헌법 대강」이 바로 그것이며 당연히 '공식'이다. 「일본회의의 신헌법 대강」은 그 전문을 통해 자신들이 계승발전시켜야 할 것은 '메이지 이후의 입헌주의 정신과 역사임을 명시하고 있다. 메이지 이후의 입헌주의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제국헌법으로부터 시작한다. 즉, 일본회의가 '일본제국헌법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는 주장은 펙트에 가깝다.
이에 대해선 또 다른 증거자료가 있다. 일본회의의 최대 실세, 사무총장 '가바시마 유조'는 아래와 같은 글을 남긴 바 있다.
"일본의 정치사는 천황이 문신, 무사, 정치가에게 정치를 위임해온 것이 전통이다.(중략) 천황이 국민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시스템에서 주권은 어느 쪽에 있는가. 이에 관해 서양적인 양자택일론을 그대로 도입하면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해체된다. 현행 헌법의 국민주권 사상은 이 점에서 부정되어야 한다"
*《조국과 헌법》, 가바시마 유조, 1993년 4월호
* 아오키 오사무 著,《일본회의의 정체》에서 재인용
일본이 국민주권을 포기하건 말건, 타국의 일이므로 관여할 부분은 아니지만, '일본제국헌법 부활을 꿈꾼 적이 없다'는 일본회의의 변명은 완전히 틀린 것 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아베 총리도 일본회의 공식석상에서 일본제국헌법을 찬양하는 강연을 한 바 있다. 2012년 7월 16일 이루어진 「지금 다시 "메이지 헌법 정신"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강연회였다. (부제는 내우외환에 처해 근본을 구한다) 포스터에는 메이지 일왕의 시구 '일본 민족정신(大和魂)의 기개는 어려울 때 나타난다'까지 적혀 있다. 메이지 일왕의 이 시구나 '야마토 타마시이(大和魂)' 같은 단어는 군국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열렬히 주창된 일종의 '선동구'로 파시즘적 성향을 띄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일단 배설하고 보는, 무책임한 일본회의의 논리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화 <주전장>은 인터뷰 동영상이라는 분명한 자료를 활용,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미키 데자키 감독도 자신의 견해나 입장을 영화를 통해 주입하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수많은 고민거리를 안고 극장을 나오게 된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객관성과 증거도 일본회의에는 먹혀들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영화에 출연한 사람들의 발언을 그저 개인의 견해로 치부해버린다.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비판은 '그런 적 없다'라고 부정한다. 논거는 제시하지 않는다.
최소한 영화 내의 '이런저런 문구는 이래서 맞지 않다' 정도로 반박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설령 일본회의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대표성이 있는 인물들(대표의원, 국회의원, 산하단체 대표 등)이 한 발언은 책임을 지는 것이 타당하다. 그것은 공식 단체가 가진 사회적 책임의 범주에 속한다.
물론 일본회의에 그런 수준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일본회의가 발행한 기관지와 홈페이지 게재 사설, 각종 세미나 등은 공식의 범주 내에 들어가는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에 본 분석기사를 적었다.
지난 19일, 미키 데자키 감독은 지난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와 인터뷰를 가졌다. 영화 <주전장>을 보고 비난을 퍼부을 일본 우익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질문에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법정에서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일본회의가 이 정도의 논리 수준을 가진 집단이라면 미키 데자키 감독의 법정 승리는 거의 확실해 보인다.
*오마이뉴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47&aid=0002235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