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자가 우측 아랫배가 아프다며 진료실로 들어왔다. 진찰대에 눕히고 복부를 촉진해보니 맹장염이 의심되었다. 방사선과로 보내 초음파 검사를 해 보니 맹장이 두텁게 부어 있었다. 맹장염이 확실했다. 나는 수술이 필요함을 설명했고, 응급으로 맹장 절제술을 했다. 수술을 마치고 회진시간에 환자의 병실에 가 보니, 환자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었다. 수술 전과는 다른, 마취의 몽롱함이 뒤섞인 수술 후의 통증이 환자를 괴롭히고 있었다. 수술 직후라 마약성 진통제까지 투여하며 통증을 가라앉히고는 있었지만, 환자의 표정을 보니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하룻밤이 지나면 훨씬 좋아질 거라는 말로 안심을 시킬 수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교통사고가 나면 안전벨트에 배가 순간적으로 눌려 장간막이 찢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찢어진 장간막에서는 절단된 혈관에서 피가 새어 나오고, 그것이 배에 고이며 혈복강이 된다. 30대 중반의 남자가 그러했다. 격한 복통으로 응급실에서 촬영한 CT 소견은 명백한 장간막 손상에 의한 혈복강이었고, 그 외 다른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외과의사에게 원인이 명백한 혈복강은 그다지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다. 나는 그의 배를 조금 열고, 여전히 심장 박동에 따라 피를 쏟고 있는 찢어진 장간막 단면의 작은 동맥을 결찰 했다. 주변의 다른 출혈부위에도 지혈을 했고, 동맥손상으로 허혈 된 소장 구간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런 소장 구간은 없음을 확인하고, 찢어진 장간막을 봉합했으며, 복강 내 다른 손상은 없는지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을 한 후 배를 봉합하고 수술을 마쳤다. 수술은 순조로웠고, 수술 전 환자에게 예고한 대로 술 후 10일 이내 퇴원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환자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수술 후 이틀이 지나자 배가 부풀었고 장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환자는 답답함과 통증을 호소했다. 나 역시 답답했다. 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날마다 단순 복부 방사선 사진으로 장운동 여부를 확인했고, CT도 다시 찍어 혹시 발견될 원인이나 놓친 원인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원인 또는 이유는 보이지 않았다. 환자는 답답함과 통증으로 괴로워했고, 나는 그런 환자를 보며 괴로워했다. 이런저런 약을 쓰고 시간 역시 약일 수 있음을 상기하며, 꾸준하게 환자와 대화하며 기다렸다. 그렇게 2주가 가까워오자 환자는 결국 나에게 짜증을 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농약 먹고 죽어버리는 게 낫겠어요.’. 그리고 다음날 확인한 복부 방사선 사진에는 장운동이 회복되고 있었다. 환자도 한결 편해짐을 느꼈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함을 확인하고 며칠 후 환자는 퇴원했다.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다양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통증 때문이었다. 외과의로 활동하던 시절, 환자의 통증을 해결해주는 방법은 수술이었다. 원인을 수술적으로 제거한다는 면에서는 가장 확실한 통증 관리법이었지만, 수술 자체로 인한 수술 후 통증이 생겼다. 그리고, 술 후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수술 후 환자관리의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방법은 주로 진통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일반 진통제도 있지만, 수술 후 통증에는 마약성 진통제를 주로 사용했다. 큰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는 마약성 진통제를 충분한 양으로 담아 기계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투여하여 통증을 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증은 주관적이어서 진통제를 아무리 잘 투여해도 반응은 저마다 달랐다. 수술 후 경과가 좋지 않다는 신호 역시 통증으로 나타났다. 앞서 이야기한 환자처럼, 아파서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았는데 다시 아프다면 환자의 고통과 짜증은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원인을 찾고 적절한 투약과 관리를 하며 통증을 줄이고 회복을 유도하는 것이 의사의 일이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는 어쩔 수 없이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느라 말이 많아지고, 의사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난 후 환자의 질문은 아주 단순해진다. ‘그러니까 전 언제쯤이면 좋아진다는 겁니까?’ 또는 ‘그러니까 언제쯤이면 안 아파지는 거예요?’
당장의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에게 ‘언제쯤 나아질 거다.’라는 대답 역시 그 시간만큼의 짜증이 될 수 있었고, 어떤 경우엔 희망고문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환자에게 통증은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고통이었고, 길어질수록 짜증과 불신만 커지는 이유였다. 짜증과 불신을 담은 환자의 표정 앞에서, 나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했다. 교과서적으로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은, 당사자의 고통 앞에서 쉽게 납득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서로 간의 불신과 민망이 교차하고 나면, 나는 환자의 고통의 수준이 문득 궁금해졌다. 얼마나 아픈 것일까.. 외과의사지만 마취하에 수술 한 번 받아 본 적이 없었다. 태어나자마자 탯줄 연결부위가 감염되고 농양이 생겨 배농한 절개자국이 지금도 남아있지만, 기억에 없는 고통일 뿐이다. 대학시절 뇌수막염으로 병원에 이틀 입원한 것이 전부인 환자경험으로 내가 수술한 환자의 고통을 전부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는 환자에게 수술과 경과와 그의 통증의 원인을 열심히 설명하고 주지 시키며 안심시키지만, 나는 정말 그의 통증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외과의사로서의 칼을 내려놓고 일반의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은 근골격계 통증관리법을 배우고 공부해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통증을 수술적으로 해결하던 과거와 달리, 주사 한두 방으로 통증이 바로 좋아지는 모습은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통증이 사라지고 몸이 편안해진다는 것의 직접적인 변화를 눈 앞에서 바로 확인한다는 것의 경쾌함과 즐거움은 머리와 가슴 안에서 작게 피어나는 희열이었다. 수술처럼 확실하게 원인을 잡아내는 것과는 결이 다른 통증관리법이지만, 주사 전후 통증의 강도가 급격하고 확실하게 다른 환자의 모습에서 나는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어떤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한눈에 보이는 환자의 변화에서, 어쩌면 환자에게는 통증이 전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 무릎과 허리가 아픈데 특효라며 스테로이드가 잔뜩 들어간 정체불명의 약을 밥 먹듯 먹기도 하고, 원인을 아무리 설명해도 당장에 통증만 해결할 수 있는 주사만을 고집하는 환자들도 많았던 것이다. 수술하던 외과의 시절보다, 주사 몇 방으로 통증을 해결해주고 있는 요즘이 환자들의 감사인사를 더 많이 받고 있다. 결이 다른 치료법이고, 외과 시절 환자상태를 부여잡고 속을 쓰려가며 고민에 고민을 더하던 치열함이 덜하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그러나, 통증이 사라짐으로 일상이 가능해진 환자의 입장에서 고마움의 표현은 그저 담담하게, 나 역시 잘 나아주어서 감사한 일인 것이다. 통증이 거의 전부인 사람들에게 통증의 해결은 더 이상의 바람 없는 기쁨이었다.
오래전, 한 치과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의사는 치과치료에 두려움과 고통을 느끼는 환자들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다른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통증에 대한 고통은 저마다 수위가 다르기야 하겠지만, 그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참 존경스러웠다. 외과에 파견을 나와 나와 함께 잠시 일했던 한 전공의 선생님은 본인이 맹장수술 경험이 있어서인지, 맹장수술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에 상당한 공감을 하고 있었다. 어릴 적 소아 백혈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는 의사가 소아과를 선택한 이유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 아이들에 공감하며 돕고 싶기 때문이었다 말했다. 통증은 스스로 일부러 경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같은 경험 없이는 온전히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따라서, 같은 경험이 없는 의사는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환자 앞에서 조심스럽고 진지해질 수밖에 없다. 머리의 지식은 환자의 치료법과 경과를 예상하게 할 뿐이다. 머리의 지식으로 환자의 고통을 설명하고 그것으로 환자를 이해하는 일은 매우 용렬한 일이다. 외과의사로서, 한 번도 몸에 칼을 대어 보지 않은 입장에서 환자를 대하는 일은 공감하려 노력하는 일이자, 진지하게 설명을 건넴으로 환자를 안심시키고 이끄는 과정이었다. 이제 서서히 어깨와 무릎과 발목에 소소한 통증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에, 주사 몇 방으로 증상이 좋아졌다 신기해하는 환자 앞에서 그가 가졌던 통증은 어떤 무게였을까 고민하는 일은 매우 중요해졌다. 나는 의사이지만, 아직 통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이제껏 별다른 일 없이 의사생활을 해 왔으면서도 가장 무겁게 나의 발목을 부여잡는 약점이기도 하다. 공감과 이해는 같은 경험에서 우러난다고 한다. 그러나, 통증은 그러기에도 힘든 생명체의 고통이다. 내가 끊임없이 진지해야 하고 묵직해져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