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태풍을 맞는다는 것은 엄청난 긴장을 일으킨다. 막힐 곳 없는 섬을 관통하는 바람은 언제나 거세다. 거센 바람은 바다에 파도를 만든다. 거칠고 거대한 파도는 갯바위를 덮치며 격렬하고 하얗게 폭발한다. 뒤이어 내리는 빗방울은 바람에 실려 옆으로 내려 꽂힌다. 창문을 덮칠듯한 바람 실린 폭우를 바라보는 마음은 불안하고 긴장이 넘친다. 해마다 겪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별로 없다. 집 밖의 날아갈 것 같은 도구들을 창고 안으로 집어넣고, 탁자나 의자 같은 것들이 날아가지 않게 구석에 눕혀두는 정도가 전부였다.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집 안에 있다가, 지나간 후에야 뒷수습을 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최선이다. 폭염의 끝자락에 드디어 태풍이 온다는 소식은 반가움이었다. 그러나, 지나가고 난 후엔 다행감이 조금 섞인 아픔과 상처를 돌보아야 하는 고된 노동이 남아 있었다. 태풍 솔릭(Soulik)은 내가 사는 섬을 할퀴고 지나갔다.
제주에 살면서 몇 번의 태풍을 겪었다. 육지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던 강렬하고 거센 비바람은 그 자체로 긴장을 유발했다. 그러나 아파트에 살 때엔 긴장감만 있을 뿐,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태풍의 피해라고는 베란다 창틀을 통해 들어와 흥건히 고인 물이 전부였다. 섬을 관통하는 태풍을 밤새 긴장 속에 주시하다가 베란다의 물만 닦아내면 일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왔다. 주택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든 게 긴장을 담은 노동이었다. 비바람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바람에 날아가는 것은 없는지, 텃밭은 무사할지 등등 둘러보고 손보아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태풍이 지나가는 순간엔 긴장이 극대화된다. 프로젝트 창의 특성상 바람의 압력에 물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창틀에 수건을 대어 주었다. 공간 이음새가 벌어졌는지 거실과 보조부엌 사이에서 물이 새면 바닥에 수건이나 양동이를 대어주었다. 컨테이너 공간인 작업실의 창틀에서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물이 자주 흘러들었다. 역시 수건을 깔고 태풍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태풍이 지나가면, 빗물이 들어왔던 곳곳을 체크하고 밖으로 나갔다. 미처 안으로 들이지 않았던 야외용 그릴은 바람에 날려 산산조각 나듯 내용물이 다 흩어져 있었고, 묵직한 합판으로 짠 야외탁자는 멀리 마당에 내동댕이 쳐 있었다. 텃밭의 작물들은 모두 쓰러지고, 나무 한 두 그루는 넘어져 있는 일은 예사였다. 집 전체를 둘러보고 지붕과 벽면은 이상 없는지, 파손이나 손상된 구조는 없는지 둘러보는 일은 필수였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당장의 치우고 정리할 것들부터 해결한 다음, 비바람에 보였던 문제들을 업체를 불러 수리했다.
태풍은 섬을 고립시켰다. 비행기와 배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는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이 섬에 들어온 이들이 태풍을 만나면 꼼짝없이 섬에서 태풍을 겪어야만 했다. 한 번은 여름휴가에 맞추어 태풍이 올라왔었다. 우리 가족은 섬 안의 섬들을 하루씩 자면서 여행하기로 했었다. 가파도, 마라도, 우도, 추자도.. 그러나 계획은 그저 계획으로만 남기고 말았다. 가파도에 들어가려고 문의를 하니 들어는 갈 수 있지만 언제 나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당시 태풍이 무척 세서, 만일 강행을 했다면 태풍 이후의 높은 파도 때문에 2주간 고립될 뻔했다. 사람도 고립된다.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은 정말 다급하거나 하지 않고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위험했다. 평소에도 바람에 실린 비는 우산 같은 건 아무 소용없게 만드는 곳인데, 태풍의 비바람은 어쩌면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태풍이 지나가는 동안엔, 집 안에서 긴장을 품은 채 스스로 고립되는 것 만이 가장 안전하고 합리적인 판단이다.
태풍 솔릭이 오고 있었다. 오후부터 바람이 심상치 않아지자 나는 서둘러 퇴근해서 집주변을 정리했다. 텃밭 도구들을 모두 창고로 집어넣고, 밖에 있어야 할 것들은 구석으로 몰아 무거운 것으로 잘 눌러두었다. 반려견의 물그릇 밥그릇도 모두 집 안으로 넣어주었다. 창문은 모두 닫는 것으로 태풍 대비를 마치고 태풍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바람은 점점 거세어지고 비가 섞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수시로 집 안팎을 돌아다니며 비가 새거나 파손되는 부분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바람은 주로 동풍계열이 불었다. 내리치는 듯한 비바람에 동쪽을 바라보는 컨테이너 작업실 창틀에서는 빗물이 새기 시작했다. 보조 부엌의 작은 창틀에서도 조금씩 빗물이 배어들었다. 다행히 그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태풍은 아직 지나가기 전이었다. 비바람은 더욱 거세어져서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가 앉아있는 반려견이 걱정되어, 목줄을 풀고 집 현관으로 들여놓았다. 다시 한번 집 안팎을 살피며 더 이상의 문제는 없는지 살피고는 잠을 청했다.
새벽 5시경에 정점을 찍을 거라는 태풍은 날이 밝았음에도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집은 여전히 무시무시한 바람소리 속에 갇혀 있었다. 다시 한번 집안 곳곳을 살피며 밤새 다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까 살폈는데 다행히도 더 이상의 문제는 없었다. 비바람은 지난 밤보다 더 심해져 있었다. 평일의 아침시간이다 보니 엄청난 태풍 속에서도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남쪽으로 보이는 언덕길과 북쪽의 마을 골목에서 차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SNS를 보니 그 거센 비바람 속에서도 비닐을 씌운 신문이 제 때 배달되었더라는 누군가의 포스팅이 있었다. 비바람이 부담스러워 운전이 무서운 누군가는 정시에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 중이라 했다. 나 역시 출근을 해야 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서귀포까지 넘어간다는 것 자체가 걱정이었다. 집을 좀 더 둘러볼 겸 해서 출근시간을 한 시간 반 늦추었고 나는 계속해서 집 곳곳을 살폈다. 반려견은 답답한 모습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현관에 갇혀 있어야 했다. 태풍은 더디게 움직여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고, 나는 출근을 해야만 했다. 반려견 역시 한나절 더 현관에 갇혀 있어야 했다.
엄청난 자연재해 속에서도 사회 시스템은 작동해야만 했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일을 해야만 했다. 태풍쯤은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문명은 발달했고, 발달한 만큼 사람들은 움직여야 했다. 예전 같으면 피해는 컸을 망정,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가만히 움츠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문명 속에서 사는 나는 태풍의 정점 속에서 차를 몰아 무사히 출근을 했다. 자연재해를 거스를 수 있을 만큼 발전한 문명 속에 사는 인간들은 태풍 속에서 움직이며 뿌듯해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자신의 의지를 넘어서 시스템에 의해 반강제로 움직여야만 하는 인간들의 삶에는 자부심이 섞여 있을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편리와 안정을 선사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할까? 태풍이라는 엄청난 자연재해 안에서도 제 때 배달을 해야 하고 제 때 출근을 해야 하는 인간의 삶은 행복을 보장할까? 문명의 발달은 인간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있을까, 아니면 버거운 부담을 던져주고 있는 것일까..
솔릭은 큰 피해를 남기지는 않았지만, 작고 많은 생채기를 남기고 지나갔다. 마당의 나무 세 그루가 기울어 넘어지기 직전에 있었고, 텃밭의 작물들은 거의 모두 쓰러져 있었다. 무겁게 만들어 준 마당의 개집은 바람에 옆으로 살짝 틀어져 있었고, 바람을 피해 잘 고정해두었다 생각했던 야외용 그릴은 바람에 넘어지고 날아가 여기저기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반려견은 현관에서의 하루를 잘 버텨낸 다음에서야 마당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인간이 주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이제부터다. 태풍에 문제를 보인 집안 곳곳을 직접 내 손으로 보수를 하던지 아니면 업체를 불러 보수를 해야 한다. 기울어진 나무들을 지주대를 대어 다시 세워주고, 쓰러진 작물들을 세워주고 죽은 것들은 거두어 가을 텃밭도 준비해야 한다. 바람에 날린 것들을 정리하고 창문들을 열어 예전처럼 통풍과 환기를 시켜야 한다. 큰 피해는 없어 다행이지만, 나는 많이 분주해졌다. 날은 아직 덥지만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태풍은 직접 몸으로 겪어내야 하고, 스스로 뒷수습을 해야만 하는 이 섬의 비중있는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