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가 풍년이었다. 낚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한치 대박 소식에 몸을 들썩이지 않을 수 없었다. 방파제나 갯바위로 낚시를 나가면 하룻밤에 수십 마리는 거뜬했다. 어떤 이는 밤을 새워 잡은 한치가 70여 마리라고 했다. 배를 몰아 멀지 않은 앞바다에서 한치를 잡은 이들은 서너 시간 낚시에 백 여마리를 올렸다고 했다. 입도한 이후로 올해처럼 한치가 풍년인 해가 없었다.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들려오는 한치 조황 소식에 낚시 좀 한다는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바빠졌다. 나 역시 낚시 좀 하는 입장에서 마음이 들뜨지 않을 수 없었다.
퇴근 후 이른 저녁을 간단히 한 후, 집 앞 방파제로 갔다. 해는 아직 저물기 전이지만 방파제를 둘러싼 테트라포트 곳곳에는 낮에 낚시를 하던 사람들과 밤 한치 낚시를 위해 미리 와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한치 풍년 소식에 밤에는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나오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미리 자리를 선점하러 일찍 방파제에 나왔다. 그리고 방파제는 이미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미리 점한 자리에서 에기를 던지며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점점 어둑해지는 바다 위에는 찌낚시 불빛이 하나둘 늘어갔다. 구름이 거의 없는 여름 하늘에 별자리가 보이듯, 바다 위에도 찌불빛이 마치 바다 위 별자리를 만드는 것 같았다. 방파제에서 조금 떨어진 가까운 바다 위에는 한치 배 불빛들이 켜졌다. 불빛들은 모여 밤을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주변 밤바다를 밝게 비추었다. 가져온 랜턴을 굳이 켜지 않아도, 내 낚시 장비와 주변 상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한치 낚시의 시작이다. 해가 완벽하게 저물고 어둠이 완연하게 깔리면, 멀리 깊은 바다에 머물던 한치 떼가 뭍 가까이 몰려와서 먹이사냥을 시작한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특성상 낚시 미끼를 물기 시작하면 곳곳에서 한꺼번에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빨리 건져 올리고 빨리 던져 한치 떼가 몰려나가기 전에 낚아내야 한다. 한치 낚시는 손맛보다는 마릿수이다. 그리고, 먹는 맛이다. 한치는 미끼를 물면 그냥 무겁기만 하다. 살짝 묵직한 느낌으로 힘없이 끌려 나온다. 그저 잡히는 재미, 많이 잡는 재미, 그리고 빨리 손질해서 회로 먹거나 손질 후 냉동실에 넉넉하게 보관해서 오래도록 먹는 재미이다.
방파제 낚시하면 어화가 핀 밤바다의 먼 풍경과 파도소리의 여유를 상상한다. 밤바다의 물결 위로 둥둥 뜬 찌불빛의 한가로움과 찌를 보며 가만히 기다리는 느긋함을 기대한다. 무언가 잡히지 않아도, 그런 것들이 나를 위로해주었기 때문에 나 역시 밤바다에서의 낚시를 즐기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너무 힘들어졌다. 한치 낚시는 더더욱 그러했다. 밤바다의 청량한 공기 대신 어디선가 날아오는 담배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공기는 마치 방파제 주변만 배회하는 듯 담배냄새는 수시로 내 코에 닿았다. 방파제를 점령한 아저씨들은 잠시 대를 내려놓고 뒤돌아서서는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았다. 낚시채비를 정비하거나 바꾸면서 발생하는 비닐 쓰레기와 수시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꽁초는 그냥 그 자리에 버려졌다. 방파제는 무규칙 무질서로 점철된 하나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그 안에서 낭만이란 없었고 대부분이 아저씨라는 점에서 나태해진 수컷들의 소소한 욕망만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욕망의 대상이 바다에서 나오는 한치라는 것만 제외하면, 담배연기 자욱한 밀실에서 내기 도박을 하는 남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인 것이었다.
게다가 한치 풍년 소식에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몰려들었다. 너도나도 한치를 건져보겠다는 욕심은 먼저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양보와 배려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에기를 던지던 적당한 공간은 찌낚시 채비들에 점점 좁아지더니, 찌가 점점 많아지고 물이 흐르기 시작하니 아예 없어지다시피 되었다. 게다가 몇몇 꾼들이 내 옆과 뒤로 자리를 잡더니 내가 서 있는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내 앞으로 찌를 던져대기 시작했다. 내가 던진 에기가 그들의 채비에 걸리거나 엉키는 일은 당연했다. 한치가 걸려 채비를 당겨 걷으면 옆사람이나 뒷사람의 채비가 같이 걸려 나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치가 물도록 액션을 주는 상황에서도 채비가 엉키는 일 역시 다반사였다. 짜증은 점점 화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치 낚시고 뭐고 낚시 방해하는 인간들 채비 몇 개 끊어버리고 철수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나온 낚시이니 몇 마리 정도는 잡고 가자는 마음으로 애써 침착했다. 주변의 꾼들은 여전히 모른 척 자신들의 낚시만 하고 있었다. 한치 몇 마리를 잡는 동안, 나는 그들과 엉킨 채비를 여러 번 풀어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한치 배 불빛으로 성황을 이루는 밤바다를 가르며 나타난 것은 멜배였다. 멸치 떼가 보이면 그물로 멸치를 잡는 배인데, 이들이 바다를 한 번 휘저으면 멸치 떼를 쫓던 한치 떼들은 흩어져 먼 바다로 달아나버렸다. 멜배 세 척이 방파제 가까운 바다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채비를 접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사실 내가 가장 주저하는 낚시가 한치 낚시이다. 한치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북적이는 사람들이 불편해서이다. 사람들로 가득한 방파제 한자리로 비집고 들어가 서 있다 보면, 생각을 내려놓은 인간군상들이 저마다의 바닥에 깔린 본능과 욕망을 뒤섞어 바다 위에서 꾸물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방파제에서의 한치 낚시는 그것의 결정판이다. 그래서 나는 특별한 손님 방문 등의 이유가 생기거나, 낚싯배를 가진 동생이 출조 한 번 하자고 제안하지 않는 한 한치 낚시를 하지 않는다. 올해는 유난히 한치 풍년이라는 소식에 지인들과 또는 홀로 몇 번 낚시에 나섰다. 풍년이라는 상황답게 잠시의 낚시로 소소한 조과를 올리긴 했지만, 한치 낚시는 여전히 짜증만 유발하는 낚시라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풍년인 만큼 한치 가격도 많이 떨어져서 차라리 동문시장에 가서 사 먹는 게 낫겠다 싶기도 했다. 그리고, 한치는 역시 잡는 것보다 사 먹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낚시는 빈자의 취미이다. 그만큼 누구나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취미라는 의미이다. 누구나 바닷가에 서서 무언가 낚이기를 바라며 채비를 던진다. 이 비좁은 나라에서는 언제나 ‘누구나’가 문제이다. 누구나 바닷가에 서니 많아진 누구들은 무질서해지고 무책임해진다. 갯바위 방파제 아래로 비닐쓰레기와 담배꽁초들이 흘러 다니고 여기저기 배설물 냄새가 나는 원인이다. 요즘엔 낚시를 주제로 하는 예능 방송 때문에 낚시인구는 더욱 늘었고, 그만큼 무질서와 쓰레기도 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던 밤바다 낚시는 이제는 욕망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인위적인 통제가 능사는 아니지만, 무질서와 쓰레기가 대책 없이 늘어나는 바다를 바라보면 낚시면허제는 꼭 시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거두어 철수하고, 자기가 낚시한 자리가 지저분해졌으면 바닷물로 청소하고 나오는 자발 의식도 갖추도록 고민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런 대책도 고민도 없다. 바닷가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바다는 물 반 사람 반이 되어간다. 취미는 욕망으로 변질되고, 생각 없는 본능은 풍경을 더럽히고 있다. 한치는 여전히 맛있다. 그러나, 온전히 즐기기에는 생각이 정말 많아지는 낚시 대상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