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은 전날 밤 미리 싸 두었다. 가볍게 다니자는 다짐대로 기내 가방과 배낭이 전부였고, 오기 전과 비교해서 짐은 더 줄어 있었다. 쇼핑도 거의 하지 않아 추가된 짐은 향신료 몇 종류와 아내가 새로 산 가벼운 옷 몇 벌 정도가 전부였다.
나를 조호르바루에서 싱가포르의 창이공항까지 데려다 줄 콜밴을 이틀 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새벽 5시에 나를 데리러 올 것이니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출발할 준비를 해야 했다. 미리 짐을 싸 두었으니 간단히 정리할 것들 외에는 그다지 분주하지 않을 시간이지만, 마음은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운전거리로 한 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이지만, 국경을 넘어야 하는 일이다. 미리 출입국 신고서를 작성하고 여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국경 검문에서 문제가 생기면 일정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한산한 새벽시간이고, 몇 번 다녀본 검문소이기 때문에 특별히 걸릴 일이 없어 국경을 통과하는데 큰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국경을 넘는다는 부담과 비행기 시간에 좀 더 여유를 두어야 한다는 부담은 새벽녘의 여유를 압도했다. 그리고, 예약했던 콜밴은 5시가 되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전 8시였고 나는 3시간의 여유를 두고 콜밴을 예약했다. 그러나 콜밴은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해 보니 지금 고속도로 위이고 10분만 기다려달라는 답을 받았다. 여유는 있으니 그러자 싶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도 콜밴은 소식이 없었다. 다시 전화했다. 열심히 가고 있다고, 10분만 더 기다려달란다. 8시 비행기라고 빨리 오라고 재촉했더니 충분히 도착해서 탑승할 수 있다는 답을 보냈다. 그래, 탑승은 할 수 있겠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는 나와 옆에서 나를 배웅하는 이들의 마음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시 잠시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콜밴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전화, 처남네 동네인 타운하우스 입구라고 한다. 곧 들어오겠구나 했는데, 1-2분 거리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5시 반을 넘기고 있었다. 비상사태 수준의 불안이 감돌았다. 처남댁은 집에서 사용하는 차 키를 꺼내 들었고, 아내는 간단한 채비를 한 후에 출입국신고서와 여권을 챙겼다. 나를 배웅하려 잠에서 깬 아들과 함께 아내는 졸지에 새벽 해외여행을 할 판이었다. 나는 차 키를 받아 들고 처남네의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는 아내가 앉고 뒷좌석에는 아들이 앉았다. 집에서의 배웅이 본의 아니게 창이공항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은 아내가 운전을 할 것이다. 5시 40분에 급히 차를 몰고 출발, 처남댁은 그 사이 오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를 콜밴에 전화해서 다급하고 화가 난 목소리로 ‘cancel!’을 외치고 있었다. 조수석의 아내는 급하게 자신과 아들의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했고, 나는 조금 급하게 차를 몰았다.
마음이 급했던 것 같다. 국경 검문에서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어야 하는데, 이상하게 잘 열리던 트렁크가 열리지 않아 허둥지둥했고, 검문 경찰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간신히 연 트렁크의 짐가방까지 열어보라고 명령했다. 간신히 끝난 건가 싶었는데 검문소 마지막 입구에서 다른 경찰이 차를 옆으로 세우라고 하고는 프리패스 카드를 달라고 했다. 아마도 여권심사 시 체크기에 넣어야 했던 프리패스 카드 리딩이 잘못되었던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약 5분 정도 국경에서 지연이 되었다. 마음은 더 다급해졌는데, 싱가포르로 들어서서는 벌금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늦었다고 속도를 밟다가는 벌금으로 악명 높은 이 나라에서 티켓을 끊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새벽이라 차가 별로 없다는 것이 위안이었고, 나는 규정속도의 언저리에서 속도를 맞추어가며 차를 몰았다. 섬이자 도시국가인 이 나라가 별로 넓은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새벽의 질주는 어째서 그리 길게 느껴지는지, 싱가포르가 이렇게 큰 나라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하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혹시 오늘 부른 콜밴 운전수가 말레이 사람 아니냐고.. 아내는 맞다고 했다. 뭔가 상황이 조금 이해되었다. 여행 전 공부한 말레이시아 책에서 말레이 사람들이 말하는 ‘it will be OK!’는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많은 경우에서 그 말의 의미는 ‘나에게는 별다른 문제없이 잘 해결될 것이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곧 도착한다며 무리 없이 탑승할 수 있을 거라는 콜밴 운전사의 의미는, 어쩌면 ‘네가 불안하든 아니든, 혹시 네가 탑승을 못하더라도 나는 너를 탑승시간 안에 공항에 내려놓을 것이고 나는 콜비를 받고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서 사람들과 약속이나 일을 하는 경우, 말레이 사람들의 낙천적인 대답은 되도록이면 믿지 말아야 한다 했다.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엄격한 중국인들의 약속이나 일처리가 이럴 땐 차라리 낫겠다 싶어 지는 것이었다. 작년 같은 시각에 나를 창이공항까지 데려다준 콜밴 운전기사는 말이 많은 중국인이었다. ‘한국인들은 여기 오면 대부분 골프를 하는데, 골프를 안 한다는 한국인은 네가 처음이다. 게다가 낚시를 하고 검도를 한다니 나는 네가 참 신기해 보인다.’ 그는 한 시간 반 내내 이 주제로 나를 들쑤셔대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탑승 1시간 20분 전이었다. 발권 수속 심사까지 어려울 건 없었고, 시간도 생각보다 넉넉했다. 다급한 마음에 라이를 돌보아 준 친구들에 선물할 과자를 사고는, 양주 한 병 사들지 못한 채 탑승게이트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여유 있게 탑승을 했고, 좁다란 좌석에서 6시간 반을 영화를 보다가 잠들다가 제공되는 식사를 하면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다리를 펼 수 없는 좁은 자리에서 졸다가 주는 밥 먹고 다시 졸다가 하는 일은 양계장 좁은 사육케이지 속의 닭들을 간접 경험하는 기분이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여행하는 일은 이젠 일상의 연속 같은 기분이다. 작은 새로움이 배어 있지만 익숙한 환경에 잠시 머무는 일은 일상을 조금 다르게 연장하는 것 같다. 진료와 집 정리 등등의 제주에서의 일상이 잠시 중단되고, 예정된 비행기를 타고 잠시 공간을 이동해서,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치른 뒤에 다시 제주의 일상을 위해 공간이동을 하는 기분.. 나쁘지 않다. 가족의 일이 그곳에 당분간 있을 것이고, 일상의 연장이 조금은 다른 분위기 속에서 기분의 전환과 함께 이루어진다. 그것은 대단한 기대와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의 부담과 적응의 피로감을 덜 받을 수 있다. 한동안은 이렇게 주어지는 시간을 말레이시아에 쏟아야 한다. 잠깐이지만 당분간은 가족들과 그렇게 만나야 한다. 이 글은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김포에서 쓰고 있다. 피곤하다. 비행기는 15분 지연이 된다고 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부담은 크지 않지만, 하루 종일의 비행 여정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어서 가서 정리하고 씻고 쉬고 싶다.
이어짐 ;
나오지 말라는 만류에도 친구 가족은 나를 픽업해주러 공항에 나와 있었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줄을 서서 택시를 타거나 버스를 타고 조금 걸으면 되는 일이었지만, 일요일 저녁 바람 쐴 겸 가족들과 나왔다고 했다. 덕분에 조금 편하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기간 동안, 나는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우선 집에 혼자 있었던 라이의 밥과 산책을 날마다 챙겨준 친구들과, 돌아오기 전날 저녁 부킷 인다의 두리안을 파는 노점에서 마지막 두리안을 먹고 있는데 보이스톡을 걸어 ‘형, 내일 픽업하러 공항 나갈게요.’ 취한 목소리로 나를 챙기던 두 친구들이 있었다. 고마웠다. 나는 스스로 나를 챙겨가며 살자는 마음으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순간순간 친구들의 이런 관심과 도움을 받고 있자면, 나는 외롭게 살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삶의 자세가 그리 어긋나지 않았으며, 나는 참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구나 하는 감사함을 깨닫는다. 나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자세를 낮추고 감사한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둠이 완벽하게 깔린 마당으로 들어서며 ‘라이!’라고 불렀다. 어둠 속에서 하얗고 작달막한 몸뚱이는 어리둥절해하더니 갑자기 꼬리를 흔들며 낑낑대기 시작했다. 나는 짐을 두고 달려가 라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녀석은 내 맨살을 열심히 핥으며 날뛰기 시작했다. 미안했고, 홀로 잘 있어주어 고마웠다. 그렇게 오랫동안 녀석을 쓰다듬어 주었다. 여행을 다녀온 사이, 미친 듯 더웠던 밤공기가 조금 시원해져 있었다. 불을 켠 마당 잔디 위로 시원한 공기가 나직하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