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은 여전히 불편하다. 무릎 아래 다리로는 항상 무겁다. 우측 무릎은 간간히 부담스러운 신호를 보낸다. 우측 어깨도 최근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나마 좀 나은 건 왼팔이다. 검도를 하는 입장에서 죽도를 힘 있게 잡아야 하는 왼팔이 사정이 낫다는 건 그나마 다행인 일이다. 그렇지만, 왼팔 하나 좀 낫다는 것이 총체적 난국의 몸뚱이를 보상해주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검도는 흔들리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훈련되지 않은 운동신경은 몸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이어진 채 반응하고 움직이는지 깨닫지 못한다. 검도의 중단세에서 상대의 머리나 손목을 칠 때, 바짝 긴장해 있던 왼쪽 다리는 순간의 반응으로 몸을 앞으로 튕기듯 밀어낸다. 순간에 반응하는 왼쪽 다리의 도약과 도약에서 나오는 가속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타격을 가해야 한다. 도약의 순간, 왼쪽 다리 근육들의 수축에서 나오는 힘이 그대로 몸통에 전해져야 도약의 최대 효율을 얻을 수 있다. 운동신경은 그 순간의 과정을 조율한다. 훈련되지 않은 나의 운동신경은 그러하지 못했다. 최근 어렴풋이 깨달은 사실인데, 도약을 하겠다고 왼쪽 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내 몸통은 반 박자 느리게 준비하고 반 박자 느리게 나아간다. 근육의 수축력도 약해서, 도약의 거리가 길지도 않다. 왼쪽 다리의 힘이 몸통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시도하는 머리 치기는 항상 상대의 머리에 죽도가 닿기도 전에 제압당하거나, 먼저 맞고 마는 결과를 낳았다.
거의 모든 운동과 무술들이 몸통의 힘을 중시한다. 고전적으로는 단전을 많이 이야기했고, 최근에는 코어라는 표현으로 몸통의 힘을 강조한다. 몸통에는 몸의 중심도 담기게 된다. 따라서 검도를 포함한 모든 운동이나 무술의 움직임에서는 몸통의 힘이 중요하다. 배에 힘을 주라는 이야기가 이 때문이다. 몸통에 힘이 잡히고 이를 바탕으로 팔다리의 움직임이 가볍고 유연해진다. 몸통을 구성하는 근육들은 크게 내 외부로 나누어서 외부에는 복직근, 외/내복사근, 척추기립근 등이 있고, 내부로는 대요근과 장골근이 있다. 이들을 단련시켜야 몸통에 힘이 들어가고 몸의 움직임에 여유와 가벼움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역시 쉽지 않다. 운동을 꾸준하게 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몸통의 근육들이 단련되어 움직임이 가볍고 자연스러워진다. 뒤늦게 운동을 시작한 나의 경우엔 몸통에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의 의미조차 알 수 없어 몸에 체득하지 못했다. 끊임없이 말의 의미를 몸으로 체현하고자 노력했지만, 단련되지 않은 근육은 쉬이 피로해졌고, 호흡과 뒤엉키며 근육들 간의 조율이 엉망이 되곤 했다. 그것이 왼쪽 다리에서부터 전해지는 힘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몸은 느리고 멀게 도약하지도 못했다.
어떤 운동을 하든 간에 ‘검도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의식한다. 자전거를 탈 때도 하체와 몸통의 힘이 중요하고, 긴 호흡과 체력에 단련이 되니 검도와 연결되는 부분을 의식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점심시간에 찾아가는 헬스장에서도 스트레칭과 러닝머신으로 준비운동을 한 후에 상하체와 코어를 돌아가며 중량운동을 한다. 최근에는 몸의 여기저기에서 보내는 이상신호에 민감해져서, 신호가 오는 부위의 운동을 자제하고 중량도 적당하게 설정하여 운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검도는 더 이상 나아지지 않고 있다. 얼마 전 관장님은 나에게 문제점을 말씀하셨다. 너무 움직이지 않은 채, 죽도로만 상대를 치려고 한다고 말이다. 예전 같으면 이런 지적에 ‘내가 너무 움직이지 않나 보구나.’ 돌아보고 좀 더 신경 쓰며 연습할 텐데, 이제는 ‘몸이 어쩔 수 없이 반응하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체념하게 된다. 알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내가 신경 쓰는 모든 운동과 연습들이 부조화 속에서 퇴보의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훈련되지 않은 채 뒤늦게 시작한 운동이 이제는 신체적 한계에 닿아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넘고자 했던 상대는 가까워지기는 커녕 목표에서 더 멀어진 느낌이다. 열심히 뛰고 달렸더니 체력과 호흡은 좋아졌는데, 몸의 여러 이상 신호 속에서 근육들은 부조화를 일으킨다. 근육들의 부조화 속에서 더딘 운동신경은 더딘 조율로 움직임의 효율을 더욱 낮아졌다. 피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와 몸통에 두텁게 쌓였다.
부드럽고 신속한 연속 공격을 할 수 없다면, 그래서 단칼에 공격을 해야만 한다면 죽도를 한 번 바꿔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검도 선배의 조언에 따라 손잡이가 조금 짧은 병단형 죽도로 바꾸었다. 연습에서 몇 번 사용해보니 내 팔 길이와 움직임에 좀 더 들어맞는 느낌이었다. 죽도의 움직임은 좀 더 가벼워졌고 빨라졌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엉망이다. 연습의 시작에 몸을 의식하고 상대를 향해 도약을 몇 번 하다 보면 이제는 몸의 움직임에 무엇이 문제였던가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다. 다시 몸을 의식하며 움직임에 수정을 가하면 생각했던 움직임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몇 번을 하다 보면 근육들은 쉬이 피로해져서 다시 예전의 어색하고 비효율적인 자세로 돌아가버리곤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계에 봉착한 것인지 고민은 계속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깨닫고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함으로 꾸준하게 도장에 출석한다. 출석도 일말의 문제가 있긴 하다. 일주일에 두 번의 출석은 검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연습 양이다. 꾸준하지 못한 것에 비하면 나은 것이겠지만, 어떻게든 일주일에 두 번은 출석하겠다는 약속은 자체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은 연습 양인 것이다. 그것을 주어진 시간에 ‘검도에 도움이 되는 운동’들로 보상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그것이 얼마나 효율을 만들어내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나의 검도는 계속된다. 유일한 장점인 꾸준함으로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대련을 할 때마다 인간 타격대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도 나는 그 기분 속에서 ‘서서히 나아가겠지’라는 작은 희망을 품는다. 여전히 미친 듯 땀을 흘린 뒤 호면을 벗는 순간의 홀가분함과 충만감을 즐기고 있다. 내가 느끼는 나의 부족함 중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하나하나 챙겨나가려 한다. 3단 승단 준비가 가능해진 시기가 왔지만, 당분간은 스스로가 느끼는 부족함부터 챙긴 뒤에 준비하려고 한다. 미친 듯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운동하기 딱 좋은 이 가을에, 운동하기 좋은 만큼 내 문제와 한계도 더욱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