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를 캤다. 6월 초 심은 줄기는 가을이 짙어지며 무성해졌다. 바람에 찬기운이 살짝 배이기 시작할 때면, 해마다 고구마를 캤다. 폭이 넓은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가서 덤불을 들어 뿌리 위치를 확인한다. 주변에서부터 호미로 살살 흙을 긁으면 뿌리 가까이에서 붉은 고구마의 덩치가 드러난다. 주변의 흙을 호미로 살살 파낸 후에 고구마를 손으로 잡고 살살 흔들며 뽑았다. 주먹보다도 큰 고구마가 손에 들렸다. 옆에다 두고 다시 살살 흙을 파서 고구마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캐냈다. 그렇게 캐낸 고구마가 광주리로 두 개 반 정도 되었다. 양과 크기가 작년보다도 더 좋아진 듯 보였다.
두 평이 조금 넘을까 싶은 밭 공간에서 나온 고구마가 그 정도였다. 고구마는 유독 우리 밭에서 잘 되었다. 감자나 마늘, 양파 같은 것들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수확량이나 상태가 별로인데, 고구마는 달랐다. 해마다 넘치는 양의 고구마가 밭에서 거두어졌다. 올해는 작년과 같은 자리에 고구마를 심게 되어서 연작피해를 걱정했었다. 생길지 모를 피해를 줄이려고 반려견의 배설물과 잡초, 음식물 쓰레기 등으로 만든 퇴비를 거두어 고구마 줄기를 심은 자리에 집중적으로 뿌려주었다. 그래서인지, 올해 수확은 작년보다도 더 좋았다. 고구마는 해마다 거를 수 없는 우리 텃밭의 중심 작물이 되었다.
고구마를 캐는 시기는 텃밭의 겨울을 준비하는 때이다. 기울어가는 가을의 찬바람은 손바닥만큼 작은 텃밭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가지는 진즉 시들어 말라버렸고, 고추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렇지만 고추는 커지지 못한 채 시들거나 붉게 변해버렸다. 서리태 콩도 잎이 누래지며 떨어졌다. 바질도 꽃대를 바짝 세운 채 힘을 잃어갔다. 주말 이틀은 변하는 텃밭 풍경에 내 노동을 쏟아부어야 했다. 바질은 잎이 누렇게 변하기 전에, 필요로 하는 분에게 연락해 뽑아가게 했다. 콩은 뿌리째 뽑아서 바람이 적고 볕도 적당한 데크 위에 거꾸로 세워 말렸다. 가지와 고추도 다 뽑아내었다. 모종을 파는 집에 가서 월동 양파 모종을 구입했다. 흰 양파 모종 30여 개, 붉은 양파 모종 30여 개를 구입했다. 다른 심을 것들이 있나 둘러보니 부추와 샐러리가 있어 같이 구입했다. 부추야 심어두면 해마다 잘라먹을 수 있으니 좋은데, 샐러리가 월동이 가능할지는 의문이었다. 무엇엔가 홀린 듯 사버린 기분이다.
콩과 바질, 고추, 가지가 있던 자리는 괭이밥으로 뒤덮여 있었다. 제주에서 김매기용으로 흔히 쓰는 날이 가는 호미를 들고 이랑의 괭이밥들을 모두 긁어내었다. 마른땅이 드러났다. 고구마를 캔 자리도 드문드문 잡초들이 키를 키우고 있어서 같이 뽑아주고 흙을 골랐다. 고구마를 캔 자리에 양파를 줄지어 심었고, 부추는 텃밭 구석자리에 줄지어 심었다. 샐러리는 고추 뽑아낸 자리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심었다. 그렇게 한 해의 모종 심기가 마무리되었다. 물을 넉넉하게 주고, 주변을 정리하니 저무는 해에 집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었다.
미친 듯 더웠던 여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사람은 이래서 간사한 존재인가 싶었다. 이제 점점 추워질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혹독한 추위는 없겠지 싶은 근거 없는 낙천에 마음이 늘어졌다. 사람은 이래서 우매한 존재인가 싶었다. 미친 듯했던 더위에 한 계절 고생을 같이 한 것들이 내 텃밭에서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그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뽑아 버렸으니, 이래서 인간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존재인가 싶었다. 텃밭의 곳곳이 빈 공간이 되고 늦여름 결에 심은 것들은 제자리에서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주말 동안 월동하며 한 계절의 추위를 함께 겪어나갈 것들을 심었다. 메마른 이파리들과 줄기들이 텃밭 여기저기에 떨어져 바람에 들리거나 떨고 있었다. 그 스산한 풍경에 가을은 지나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는 기분이 물씬 들었다. 이제 조금 더 지나, 속이 올라오는 배추를 묶어주면 한 해의 텃밭일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전에, 월동할 것들에 비료를 넉넉히 주고 작년보다 나은 소출을 기대해 보려 한다.
날은 서늘해졌지만, 마당 곳곳의 잡초들은 추위를 탈 줄 몰랐다. 수시로 올라오는 잡초들을 퇴근 후에 해가 남아있는 대로 호미를 들고 캐내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집 뒷마당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더니 마치 원시 그대로의 밀림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잡초는 잡초대로 저마다의 군락을 이루어 땅을 뒤덮고 키를 높이고 있었다. 돌보지 않았던 옥수수가 제대로 자라 보지도 못한 채 퍼석하게 말라 뒹굴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곳곳에 심은 서리태 콩이 잎을 누렇게 말리고 있었다. 콩은 뽑아 데크에서 뒤집어 말렸고, 나는 작정하고 호미를 들고 밀림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땅을 뒤덮은 이끼나 양탄자를 한 꺼풀 벗겨내듯, 땅을 긁어 잡초들을 거두어 냈다.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뒷마당은 깨끗해졌고, 캐낸 잡초들을 네기로 긁어모으니 허리까지 무더기로 마당 한 켠에 쌓였다. 운 좋게 뿌리가 제대로 뽑히지 않은 잡초들은 겨우내 작은 싹을 틔우면서 월동을 할 것이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내년 봄까지 뒷마당에 쭈그려 앉을 일은 없을 것이라 기대 내지 다짐을 한다. 쌓인 잡초들과 반려견 배설물과 EM을 섞어, 겨우내 퇴비를 만들 때나 뒷마당에 발을 들일 것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관통하는 필로티 공간 아래 그늘에 고구마를 널어 말리는 중이다. 아내는 거둔 고구마 줄기를 다듬어 반찬거리를 준비했다. 주말 동안 몸을 움직인 마당을 둘러보니 여전히 자잘한 일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겨울 전에 해 두어야 할 큰 일거리들은 마무리되었다. 로즈마리 덤불을 전정해주고, 올리브가 좀 더 익으면 거두어주고, 마당 잔디밭의 간간한 잡초들을 뽑아주기만 하면 더 이상 몸을 부려야 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아내가 적당히 거두고 남긴 고구마 줄기 덤불을 마당 구석으로 치우고, 마당에 널린 고구마 잎을 긁어 모아 버렸다. 일하는 동안 목줄을 풀어 주었던 반려견을 다시 묶어두었고, 농기구들을 물에 씻어 세워놓았다. 일요일 오후가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낮동안 거세게 불었던 북풍도 서서히 잠들고 있었다. 장갑과 장화를 벗고 몸을 씻었다. 늦가을의 텃밭일은 뿌듯함보다는 아쉬움 깃든 스산함을 느끼게 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워 그러는지, 아니면 점점 빠르게 흐르는 시간에 정신없이 흘려보낸 것들이 많아져서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