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75.

by 전영웅

외래 진료실로 병동 간호사가 날 찾아왔다. 아버지가 복통으로 응급실에 오셔서 검사를 받았는데 급성 담낭염이라고 했다. 수술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 응급실 콜을 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설명하려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CT에서 보이는 간호사 아버지의 담낭은 크게 부어 있었다. 항생제와 함께 진통제를 투여해서 조금은 편안해지도록 조처했고, 수술을 준비했다. 염증으로 심하게 부은 담낭을 복강경 기구로 제거했다. 출혈이 조금 있었지만 수술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수술 후가 문제였다. 환자는 같은 수술을 받은 다른 환자들보다 회복 속도가 느렸다. 보통은 하루 이틀 안에 빠른 호전을 보이고 퇴원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간호사의 아버지는 수술부위의 묵직한 통증을 느꼈고 미열이 있었다. 피검사 상에서는 염증 수치가 분명하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감소 속도가 더뎠다. 주치의로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병동을 갈 때마다 보호자인 간호사를 마주하기가 살짝 민망해졌다. 간호사는 나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해하며 기다리는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나고 거치해 두었던 배액관에서는 체액의 양이 줄었다. 배액관을 제거해야겠다 설명하고 관을 빼는데, 순간 고여 있던 것으로 생각되는 많은 양의 체액이 관이 박혀있던 상처를 통해 쏟아져 나왔다. 간호사의 아버지는 그 순간 속이 후련하고 시원해진다며 표정이 밝아졌다. 배액관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서 염증성 체액이 수술부위 주변으로 고였던 것이다. 그것이 회복을 느리게 하고 미열과 통증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환자는 다음날 퇴원했다.

또다시 징크스를 경험했다. 의사로서의 징크스, VIP syndrome이었다. 내가 특별히 더 겪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VIP syndrome을 종종 겪는다. 지인이나 그들의 가족, 또는 특별한 사람들을 환자로 마주하면 같은 치료, 같은 처방을 해도 무언가 애매해지는 경우가 있다. 경과가 조금 다르던가, 회복기간이 길어지던가 했다. 또는 합병증이 생겨서 참 미안해지기도 했다. 다행히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어떤 의사는 가까이 지내는 교수의 사모님의 맹장수술을 집도했는데 수술 후 농양이 생겨 고생했다고 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스승을 수술했는데 합병증이 생겨 재수술을 해야 했다고 했다. 그런 경우에 비하면 내가 겪은 VIP syndrome은 아주 가벼워서, 지나고 나면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정도였다.

VIP syndrome이 꼭 아는 사람이나 그 주변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사회경제적 입지를 내세우며 치료자에게 좀 더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하는 환자들을 종종 보았다. 이럴 때 치료자는 원칙에 입각해서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면 치료가 중심을 잃는다. 중심을 잃은 치료는 대부분 문제를 일으켰다. 부작용이나 합병증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환자와 치료자의 관계는 엉망이 되어버렸다. 의사들 사이에서는 환자를 대할 때, 누가 되었던지 남 보듯 대하라는 이야기가 돈다. 그것이 치료의 원칙에 좀 더 충실하고, 치료에 객관과 냉정함으로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냉정함이 부족하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입장에서는 더욱 짙어지는 단점이다. 이제는 수술을 집도하는 일은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심각하거나 속이 쓰릴 정도로 고민하게 되는 VIP syndrome을 겪을 일은 없다. 그렇지만, 치료자라는 입장은 변함이 없어서 나는 나의 처방과 치료를 항상 고민한다. 내 앞에 마주 앉은 모든 환자들의 그것이 나의 고민 대상이지만, 내가 연락처를 직접 가지고 있는 지인들이 환자로 다녀간 후에는 고민이 좀 더 깊어진다. 진료와 치료에 문제가 있었거나 빠뜨린 것은 없는지, 실수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증상이 조금 심했거나 경과를 보아야 하는 경우엔 시간이 좀 지난 뒤 문자로 경과를 묻게 된다. 좋아졌다면 마음이 가벼워지지만, 반응이 시원치 않은 경우엔 고민이 조금 더 깊어진다. 치료나 처방에 문제가 없었는지 다시 돌아본다. 그리고, 혹시 VIP syndrome에 빠진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좀 더 냉정을 유지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잠시 일을 멈춘다. 작은 의원에서의 진료의 한계라는 것을 감안하며 스스로의 위안을 시도해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갑상선 수술을 받았던 아내는 수술 후 두 달 정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쉰 목소리만이 거칠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수술 과정에서 되돌이 후두신경이 손상받게 되면 발생하는 성대의 일시적 마비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 회복된다. ‘남편이 외과의사’ 딱지가 붙은 아내에게 발생한 VIP syndrome이었다. 그럴 수도 있음을 너무 잘 아는 입장에서 나는 별다르게 조처할 일이 없었지만 아내는 답답해했다. 회복도 너무 더뎌서 결국 나는 수술 전에 단 한번 마주하고 이후로는 연락조차도 하지 않았던 아내의 주치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명을 부탁했다. 주치의는 수술 과정에서 신경의 손상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접 VIP syndrome에 빠진 것 같다 말했다. 어찌 모르겠는가.. 신경의 손상만 없었다면 더 이상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기다림만 필요할 뿐.. 의사의 숙명과도 같은 신드롬 앞에서 나는 원인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었다. 냉정함을 좀 더 챙기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시로서 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묵직한 굴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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