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77.

by 전영웅

얼마 전부터 맛집 포스팅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일부러 중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마치, 달리던 차의 엔진이 꺼지며 서서히 속도가 줄며 멈춘 것과 비슷하다. 의지와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내와 함께 맛있다는 집을 찾아 핸드폰이 아닌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자료를 만들었다. 사진들을 노트북으로 옮기고 정리해서 식당별로 분류해 저장해 두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블로그에 포스팅할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포스팅할 만한 식당들의 자료를 모아두었지만, 노트북 안에서 조용히 잠만 재우고 있다. 의지 또는 힘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른다. 가장 편하게 유추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이제 이 섬 안에서 격한 흥미를 가지고 무언가를 찾아다니기엔 조금 오래 살았다는 점이다. 나는 현재 입도 8년 차를 훌쩍 넘긴 이주민이다.

제주 입도해서 많이 받았던 질문들 중 하나가 ‘어디가 맛있냐?’였다. 그러던 중, 동문시장 내 순대국밥집인 광명식당에서 아이가 국밥을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블로그에 한 번 올려볼까? 생각한 것이 내 맛집 블로그의 시작이었다. 내가 정리한 맛집은 나름 인기 있었다. 포털 다음의 메인에도 몇 번 오르고, 방송사에도 제주 관련 프로그램을 구상할 땐 알게 모르게 내 블로그를 참조했다. 사실 내가 맛을 잘 감별하거나 미각이 뛰어나지는 않았다. 주관적 느낌과 평가를 무모하게 밀고 나갔었고, 그것은 호불호가 되어 내 뒤로 조용히 쌓여갔다. 그렇지만, 내가 자신 있게 맛집 포스팅을 이어나갔던 건, 어느 누구의 물질적 도움이나 지원 없이 아내와 나의 노력으로 하나하나 이어나갔기 때문이다.

맛집 포스팅을 이어나가던 중, 처음으로 만난 장벽은 세월호였다. 그 엄청난 참사 앞에서, 열린 공간에 어디가 맛있더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본능 행위에 비루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 들끓던 시절의 한 달간 포스팅을 쉬었다. 다시 해야하나 싶은 고민이 생겼다. 그런데, 당시의 맛집 포스팅은 블로그 운영의 메인이나 다름없었다. 비루한 기분만으로 중단하기엔 여러 정황과 약간의 이기심으로 아까웠다. 나는 다시 포스팅을 이어나갔고, 현재에 이르렀다.

맛은 단순하게 인터넷 상에서의 개인 취향에 머무르지 않았다. 맛은 주류 방송의 주된 주제로 발전했다. 맛을 주제로 직접 찾아가 먹어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토론하고 감상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사람들은 시류에 편승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일이 점점 많아졌다. 업데이트가 필요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난 내 맛집 포스팅도 그런 흐름에 작은 부분 일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현상들에 소소한 잔인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맛의 열풍은 세월호의 참사가 벌어진 이후에 더욱 불었다. 세월호는 은폐되려 하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선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위로와 세월호를 잊고 살자는 무례함이 치열하고 부딪히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맛이라는 주제는, 상식과 비상식, 논리와 비논리의 다양한 생각들을 흡수해버렸다. 이성적 사고가 작동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본능대로 원하는 욕구에 점점 더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맛집 포스팅은 이런 몰두에도 작게나마 기여하고 있었다. 포스팅을 이어나가던 내 작업 안에서 환멸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했다.

맛의 열풍으로 시작된 맛집 탐방의 행렬은 맛의 질서도 서서히 파괴했다. 맛있다는 집은 몰려든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몰려든 사람들이 주는 피로감으로 맛집은 점점 고유의 맛을 잃어갔다. 망가지는 것은 급격했고, 또는 한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몰려다니며 그렇게 하나하나 파괴하고 있었다. 한 곳이 파괴되면 맛이 변했다는 책임 없는 비판을 휙 던진 다음 다른 맛집으로 발길을 몰았다. SNS나 방송에 노출되는 홍보는 중요해졌고, 그것을 활용하여 맛집 아닌 맛집들이 우후죽순처럼 많아졌다. 사람들은 광고에 낚이며 기준 없이 몰려다니면서 각자의 촌평을 남겨댔다. 나 역시 그런 현상에 책임이 없지 않았고, 자유롭지 못했다. 들어왔던 몇몇 제안은 거의 거절했고, 대가를 받고 포스팅을 한 일은 없으니 내 주관은 떳떳했지만, 나는 이미 자유로운 블로거는 아니었다.

난 그렇게 동력을 잃어갔다. 생각해보면 너무 짙은 자의식 때문에 스스로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자책일 수도 있다. 조금은 가지고 있어야 할 작은 양심을 잃지 않는 선에서 타협해도 되는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엔진은 이미 꺼졌고 포스팅은 잠시 멈추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아니 시작할 것인지는 나 스스로도 아직 알 수 없는 문제다. 멈춤은 중단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움직이게 될지, 나 역시 궁금한 미래의 일이 되어버렸다.

주관성이 짙은 맛을 가지고 무어라 말하는 것이 굳이 의미가 있을까 싶다. 그래도, 맛에 대해 나름의 객관을 담아내는 이야기들 중, 나는 황교익의 말들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결론을 먼저 내세운 뒤에 과정을 설명하려다 보니 의도치 않게 여러 논란에 휩싸이고 만다. 백종원이 집밥이라며 육수에 설탕을 거침없이 쏟아 넣는 장면에서 나는 기함했다. 그는 사업가로서는 존중하지만, 외식 사업장에서나 할 법한 그런 음식 맛 내는 꼼수들을 집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모습은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백종원의 레시피를 맛있다며 칭송했고, 황교익의 날 선 고집에 맛을 아느냐는 비난까지 날려댔다. 맛은 그런 것이었다. 자기의 입에만 맛있다면 그만인 그런 주관의 총체이다. 내가 맛집 블로깅을 하며 어쭙잖은 맛을 이야기한 것도 그런 주관에 전적으로 기대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말 맛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알고 보면 혀에서 느끼는 알량한 감각일 뿐이다. 누구 말대로, 뱃속으로 들어가면 다 뒤섞여 그저 영양공급원일 뿐이다. 혀가 맛을 느끼는 이유는 내 몸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의 몸에 필요한 것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오히려 너무 과해서 문제인 세상이다. 생각해보면 과함을 위해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많은 먹거리들이 건강하거나 자연 그대로의 성정을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거나, 성정을 유지하지 못한 먹거리들로 만든 음식들이 정말 맛있을까? 그래서, 요즘의 음식들은 맵거나 짜거나, 또는 그런 요소들을 오묘하게 섞어 구미를 당기는 식의 소스나 양념이 중요해진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개인의 주관을 넘어선 사회적 맛을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먹고 느끼는 맛의 평균율 정도라 표현하면 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맛을 따지자면 우리 사회는 맛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점점 상실해가는 맛의 평균율 안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우리의 모습은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점점 작아지는 큐브 안에서, 공간이 작아지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찾아 몰려다니는 작은 생명체들의 무리 같다고 보면 될까?

맛이라는 주제는 여전히 세상의 수많은 고민과 논리 사이에서 생각을 흡수해버린다. 방송은 그 화학반응을 열심히 촉매하고 있고, 우리는 오늘도 어느 집이 맛있다더라 하며 수고롭게 찾아 나서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것이 잘못되거나 비난받을 일은 절대 아니다. 맛은 생존에서 비롯된 본능이자, 즐거움을 추구하는 이성적 행위의 한 축이기 때문이다. 단지, 이성의 다른 축들이 맛을 추구하는 즐거움에 너무 많이 잠식되어가지 않느냐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은 아직도,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이성적으로 싸워야 하는 수많은 벽과 적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아진 즐거움의 추구가, 즐거움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멈춰 섰다. 이미 블로그는 방문자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우선적으로 내 블로그를 지금처럼 재미없게 유지를 해야 할지, 아니면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지 판단이 급선무일 정도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천천히 나아갈 듯하다. 블로그로 먹고사는 것도 아니고, 동력을 잃은 맛집 탐방에 어떤 연료를 넣어 엔진을 다시 살려야 할 지도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당분간은 집 안에서 무얼 먹어야 할지 고민할 생각이다. 장을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냉장고를 파먹는 일도 나름 재미이다. 방어 철이 돌아왔는데, 방어 횟집을 생각하지 않고 방어 잡을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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