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78.

by 전영웅

관장님의 갑작스러운 승단 심사 준비 권유에 지난 3주는 많이 바빴다. 몸이 힘든 것은 아니었지만, 준비에 신경이 많이 쓰여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준비 수련으로 도장에 출석하는 시간이 애매한 저녁시간이어서 퇴근 이후의 시간을 수련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퇴근 후 바로 도장으로 출석하거나, 집에 들러 잠깐 저녁을 먹고 정리한 뒤에 도장으로 가거나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한동안 집은 말 그대로 잠만 자는 곳이었고, 마당에서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반려견은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2단을 딴 지 2년 하고도 반년이 흘렀다. 단 취득 후 2년이 흘렀으니 3단 승단을 준비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3단을 취득할 만큼 실력이 되는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면 할수록 무릎과 발목은 아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수련은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쉬어야 하는 건 아닐지, 무엇이 우선인지 고민스러웠다. 고민 속에 3단 승단은 뒤켠으로 밀려나 있었다. 도장에 출석해서 수련을 하다 보면, 나보다 단과 검력이 낮은 검우들의 실력이 나보다 월등히 높아 있었다. 마음은 그러했다. 좀 더 수련을 하고 단은 천천히 생각하자. 저 친구들이 3단 승단 심사 준비에 들어가면 그때 같이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관장님의 생각은 달랐다. 승단을 해야 그만큼 실력에도 더 신경 쓰게 된다 했다. 그리고 나를 종용했다.

죽도는 머리나 손목, 허리를 치는 것이고, 검은 몸을 찌르거나 베는 것이다. 평상시의 수련은 주로 호구를 입고 죽도로 타점을 치는 기술을 수련한다. 심사는 이에 더해서 검을 다루는 기술인 본과 본국검법이라는 정리된 기본 검술을 시연해야 한다. 호구를 입고 연격을 2회 하고, 1분간 대련을 한다. 그다음엔 본국검법과 본을 시연한다. 본은 3단의 경우엔 대도 7본과 소도 3본을 모두 시연한다. 2단 승단 심사 때엔 대도 7본까지 했으니, 이번엔 소도 3본을 모두 익혀야 했다. 검도는 모든 세를 익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단이 오를수록, 검을 이해해야만 하고, 검기를 발산해야 하고, 따라서 자세에서 검기와 검력이 느껴져야 한다. 그것은 죽도 수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심사위원들은 완벽하게 익힌 세에서 느껴지는 검기와 검력을 심사하는 단에 따라 평가한다. 그것은 형체나 방법도 없이 다소 주관적인 것이긴 하나, 검도를 어느 정도 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소도 3본을 모두 외워야 했다. 대도 7본은 세와 검기를 다시 정립해야 했다. 본국검법은 순서를 많이 잊어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해보며 기억을 되살려야 했다. 몸은 2년 전의 상태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격렬한 대련을 하는 것은 아니니 몸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러나, 몸은 자꾸 잊어버렸다. 소도 3본은 세나 검기를 정립하기도 전에 각 본마다의 움직임을 외우는데 급급했다. 대도 7본은 몸에 익어서 그런지 자세는 그런대로 나왔지만, 검의 이해에서 나오는 세세한 움직임은 여전히 어려웠다. 본국검법은 잘못 놓인 도미노 블록 하나 때문에 흐름이 끊기는 것처럼, 잘 흐르다가 다음 세를 잊어버려 몸이 멈칫했다. 모든 것이 신경 쓰였다. 심사에서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 요건인데, 준비를 하며 느끼는 것은 예전보다 실수가 많아졌다는 점이었다. 상대와 본을 맞추어보고, 본국검법을 하면서 자꾸 자세가 틀리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종종 생겼다. 어째서일지 고민이 되었다. 너무 급작스럽고 빠듯하게 준비해서 그런 것인가도 생각해보았다.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단지, 몸이 자꾸 무언가를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나와 본을 맞추는 상대에게도 스트레스였다. 이어지는 흐름이 나 때문에 끊기지는 않을까, 내가 자세를 잊어먹음으로 상대 역시 당황스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꾸준하게 도장에 나가 심사 준비를 하면서 끝까지 떨쳐지지 않았던 걱정이었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시간은 유유히 흘렀고, 토요일 오후 예정되어 있던 승단 심사 시간이 되었다.

나는 토요일 오전 진료를 양해를 구하고 조금 일찍 마치고 심사장으로 향했다. 같은 단 심사를 준비한 검우와 심사 전 빠르게 본을 맞추어 보았고, 번호표를 배정받은 뒤 심사가 시작되었다. 검도의 세계는 보수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여서 도복의 주름은 꼿꼿하게 서 있어야 하고, 호구를 맨 끈도 꼬임없이 바르게 주행하고 묶여 있어야 했다. 그것이 심사의 이면에서 이루어지는 평가의 한 요소였다. 그런 점에서 나는 조금 서툴러, 이틀 전 다리미로 열심히 잡은 주름이 많이 펴져서 도복이 다소 펑퍼짐했다. 역시나, 그것은 하나의 지적사항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먼저 호구를 쓰고 연격 2회와 1분간의 대련이 이루어졌다.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고, 긴장 탓에 목이 말랐는지 기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앞으로 30명 정도의 소년 초단부터 2단까지 심사가 이루어졌고, 3단 심사 대상자는 나 포함 4명이었다. 심사위원은 3단부터는 1분간 대련을 단 한 번으로 마무리하지 않았다. 정해진 상대 외에도 함께 나온 심사자들과 대련을 주문했다. 잠깐의 대련이었지만 긴장 탓에 체력은 무척 급격하게 소모되었다. 내가 자세를 바로 잡았는지도, 제대로 공격이 들어가고 타점을 잡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옆에 선 진행자의 주문대로 난 머리가 하얗게 된 채 대련을 했고, 어느 순간 중단이 되고 들어가라는 말에 자리에 돌아왔다. 그제야 머릿속이 조금 가라앉으면서 무언가가 지나간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내 앞으로 30여 명의 심사자들이 본국검법을 시연하고 나의 순서가 되어 본국검법을 시연했다. 엉뚱하게도, 한 번도 틀리지 않았던 세에서 발 움직임이 살짝 꼬여 멈칫했다. 순간 머리가 다시 하얗게 변하면서 몸은 본능처럼 다음 세를 진행하며 어색함을 수습했다. 실수라니, 걱정이 시작되었다. 탈락하면 어쩌나.. 꼬장꼬장하신 심사위원장은 처음에 복장부터 지적하더니 본에 들어가서는 총체적인 부실이라며 심사자 모두의 세를 타박했다. 그 타박에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잘 진행되던 세를 중간에 중지시키고는 각 본마다의 요구되는 세를 설명하고 시연시켰다. 자세도 그렇지만 단이 오를수록 긴장과 검기가 없는 본은 의미가 없다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심사인지 강습인지 모를 승단심사가 2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긴장이 풀어지니 피로가 몰려왔다. 뭐든 막 먹고 싶어 지는 욕구도 함께 올라왔다. 주말 운동을 위해 모인 도장 검우들과 운동을 하고 갈까 하다가, 피로와 식욕 때문에 운동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본국검법의 꼬인 발과, 본의 지적사항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탈락하면 다시 보면 될 일이지만, 준비과정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던 터라 심사 때의 실수들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집 정리를 하고 맥주와 함께 간단한 저녁을 하고 있는데, 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걱정하지 말고, 긍정적일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로 통화를 마무리하고 나는 조금 안심이 되어 저녁을 이었다.

검도는 재밌고, 꾸준하게 이어가고 싶은 운동이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실력과 몸의 한계가 느껴지니 그만큼 고민도 커진다. 그런 와중에 3단 승단 심사를 치렀다. 심사는 통과할 듯싶다. 그러나, 심사를 통과해도 통과하지 못해도 고민은 하나 더 늘 것이다. 3단에 걸맞은 실력인가 하는 고민이던지, 어떻게 하면 몸의 실수를 줄이고 검기와 세를 정립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던지 말이다. 산 하나를 넘으니, 생각했던 대로 이전보다 쉬울 리 없는 길이 내 앞에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수월하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한발 한 발 꾸준하게 내딛는 사람일 뿐이다. 내 검도는 이제까지 그래 왔다. 길을 잃으면 길을 찾을 때까지 허둥지둥하지 않고 꾸역꾸역 걸어 나갔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그렇게 꾸준하게 걸어 나갈 것이다. 그게 나한테 어울리는 방식이고, 검도를 즐기는 방법이다. 지금은 잠깐, 긴장을 풀고 잠시 앉아있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에세이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