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논란의 중심이 된 제주에서 의사로 산다는 것은 마음이 조금 불편한 일이다. 그것은 당장의 수익이 줄어들까 하는 류의 표면적 걱정이 아니다. 앞으로 의사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하는 정체성의 걱정이다. 영리병원의 논란이 된 녹지병원이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어쩔 수 없이, 굳이 신경 쓰려하지 않아도, 나는 의사로서의 삶이 바뀔 가능성 때문에 마음이 시끄러워진다.
영리병원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뜨거운 이슈였다. 서귀포 헬스케어 타운 내 녹지병원 건설 허가는 10년도 더 된 과거의 일이고, 영리병원 이슈는 그때부터 부상되었기 때문이다. 준공이 되고, 개원 허가를 내는 시점이 현재이며, 영리병원 이슈는 다시 급부상 한 것이다. 녹지 병원의 설립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일이다. 제주도를 비롯해서 전국 8개 경제 자유구역 내에는 출자총액의 50% 이상을 외국인 투자로 조달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면 외국계 의료기관이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이미 오래전부터 허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녹지병원은 중국계 녹지그룹이 설립한 병원이다.
사실 녹지병원 자체로만 보면 영리병원의 문제는 크게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주도라는 관광지 특성상 떼로 몰려들던 유커들이 한국의 미용성형 의료분야에 관심을 가지던 상황에서 녹지그룹이 계산 하에 세운 병원이 녹지병원이다. 그런데, 사드 사태 이후 급격하게 변한 상황은 한창 지어지고 있던 녹지병원의 위기가 되었다. 지어진 병원을 그냥 둘 수도 없어 개원을 하게 된 꼴이다. 내과 가정의학과 피부과 성형외과라는, 가볍게 보기만 해도 쉽게 파악되는 병원의 특성과, 급격하게 줄어든 중국 관광객이라는 상황은 병원의 위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국인 진료 금지라는 조항에도 반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료를 거부할 수 없다거나, 환자가 진료받을 권리 등을 말하기 전에 녹지병원은 그렇게라도 위기를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설령 녹지병원이 진료를 개시한다 하더라도, 시스템이 부족한 병원을 일부러 찾아갈 환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보험적용을 받지 못해 비싼 진료비를 내야만 하는 병원을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저렴하면서도 똑같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찾아갈 이유도 없는 것이다. 녹지병원은 특별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의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다.
논란의 이유는 녹지병원 자체가 아니다. 녹지병원 허가로 시작된 영리병원의 설립 가능성이고, 영리병원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한국 의료서비스 체계의 변질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은 일차적으로 환자의 건강을 위한 진료가 우선이고, 수익은 그것의 결과로써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수가를 포함하여 진료시스템 전반을 국가의 통제 아래 두고 있다. 반면, 영리병원은 수익창출이 일차적 목표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병원이 수익을 위해 움직이면 어쩔 수 없이 진료에도 열심이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이다. 투자자의 이익배당을 위해 운영되는 영리병원의 전반적인 논란은 이미 수없이 회자되고 있고, 미국의 경우 자본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영리병원은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기 매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쨌든, 그 엄청난 분량의 설명과 논란은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의사의 입장에서 영리병원 설립 이후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영리병원 허가나 설립을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조용히 영리병원이 생기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가장 큰 이유로는 저수가에 발 묶인 의료행위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병원의 규모가 클수록, 저수가로 인해 발생하는 적자규모는 증가한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 비급여 진료를 늘리거나, 장례식장 식당 등의 부대시설 운영에 신경을 쏟아붓고 있기도 하다. 작은 병원이라고 해서 그런 불만이나 현실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의원만 해도, 의료인력의 고비용 인건비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의료기기라는 딱지만 붙으면 이유 없이 비싸지는 여러 의료 장비의 가격이나 대여료도 신경 써야 한다. 기본적으로 고비용이 드는 의료환경에서 저수가의 압박은 벗어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통제하는 의료체계가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심평원이 제시하는 진료와 처방의 기준은 매우 이기적이고 원칙과는 자주 다르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 시 실시하는 대장암 검사를 대변 잠혈검사로 시행하는데, 이는 의학적으로는 80% 이상의 위양성률을 보이기 때문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검사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은 무조건 이 검사에서 양성을 보이는 환자에게만 대장내시경을 무료로 제공한다. 당연히 두 검사의 결과의 연관은 거의 이어지지 않는다. 당뇨환자의 처방에 있어서도 세 가지 약제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 교과서적 권장내용과 심평원의 권장내용은 다르다. 그래서, 의사가 교과서적 처방을 내릴 경우, 한 가지 약제의 비용은 환자가 전부 부담해야 한다. 만일 이 상황에서 환자의 불만이 발생하면, 그 불만은 의사나 약사가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국가 의료시스템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오죽하면 심평의학이라는 비아냥까지 생겼을까..
영리병원이 활성화되고, 병원마다의 경쟁이 생기며, 통제에서 벗어난 의료수가가 상승하면 의사들의 진료환경은 어떻게 변할까? 우선 실력이 검증된 의사들은 유치 경쟁으로 몸값이 상승할 것이다. 이는 의사들 간에도 빈부의 차이나 경쟁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현상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재형성된 수가와 재 분포된 과별 수익성에 따라 그 정도는 매우 심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의사들에게 새로운 압박으로 작용하여 더 큰 스트레스의 환경이 될지, 아니면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진료환경을 만들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의사는 본의 아니게 의료비 상승의 원인자이자 수혜자로서 복잡한 위치에 다시 서게 될 것이다. 세상의 시선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영리병원에 의해 국가 의료체계가 흔들리고, 민간 의료보험과 경쟁하면서 당연지정제나 의무가입제 등의 최후방어선이 흔들리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 속의 의사들은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로, 몸값을 인정받지 못해 경쟁의 뒤쪽에 선 의사들은 국가의료보험에 속한 병원에서 민간의료보험에 속하지 못한 환자들을 진료하게 될 것이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일 가능성이 많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진료환경을 만들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의사나 환자나 자괴감 속에 놓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두 번째로, 민간보험사들의 약관에 따른 보험적용 기준과 국가의료보험의 적용기준이 다를 것이다. 그런 경우, 삭감이나 불인정 항목이 제각각일 경우, 의사는 교과서적 진료원칙이나 진료방법보다는 삭감이나 불인정당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는 부담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이는 진료환경의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이다. 민간 의료보험사마다 보험약관이 다를 경우에는 최악의 상황이다. 의사는 진료보다, 불인정 항목이 생기지 않도록 차트 정리에 더 신경 써야 할 것이고, 환자가 가입한 보험사에 따라 진료의 방식이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인정 항목이 많을수록, 병원은 그 의사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진료를 잘하고 못하는 것을 신경 쓰는 것보다, 보험 불인정 항목이 많은가 적은가를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영리병원 하의 진료환경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런 상황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세 번째로, 의료환경의 급속한 재형성이다. 현재의 한국의료환경은 일차 이차 삼차 병원으로 구분되어, 각 단계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환자는 어느 병원이든 자유롭게 선택해서 갈 수 있지만, 구조적으로는 하위 단계에서 상위단계로 해결하지 못할 환자의 상태를 의뢰하는 구조이다. 영리병원이 설립되면 이 구조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구조로 바뀔 것이다. 대형병원이 생기고 곳곳에 같은 이름의 작은 병원이나 의원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 구조는 대형병원의 운영을 위해 작은 의원들이 환자들을 모으고 보내고, 관리하는 구조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한 마디로, 개인의원은 미끼병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현재의 의사들은 분포의 재편을 겪으면서 대형 자본 휘하에 그렇게 종속될 것이다. 사실 가장 상상하고 싶지 않은 형태의 병원이다.
영리병원은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미래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영리병원을 정확하게 상상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의료는 맨땅에서 일구어지는 것이 아니고, 기존의 체제에서 조금씩 비틀고 적응하며 성장한다. 따라서, 현재의 한국의료체계라는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울 자본주의 의료, 즉 한국형 영리병원의 모습은 아직은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본의 속성상 철저하게 이윤만을 목적으로 움직이게 될 것이라는 점만 명확하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징은 독특한 점이 있다. 나라 밖에서 어떤 제도를 수입해오면, 그것을 한국의 환경에 맞게 변형한다며 아주 이상한 모습으로 바꾸어버린다. 그것도 제도의 근본취지를 왜곡하고, 다수가 아닌 특정 소수의 이익에만 충실한 그런 형태로 말이다. 한국에 영리병원이 들어선다면, 그것이 현재의 불합리한 한국의료제도의 개선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 것인가 하는 의문도 강력해진다. 자본의 속성때문에 그러하고, 이제까지 제도라는 것을 다루어왔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속성 때문에도 그러하다. 변화의 위기를 맞는 한국의료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나라는 의사 개인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많이 두려워진다. 내가 실력이 없는 의사로 전락할까 두려워서가 아니다. 지금보다 그다지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