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을 했다. 텃밭에 묶은 배추들을 칼로 밑동을 잘라냈다. 적당히 자란 무 들을 뽑고, 잡초들 사이에서 간신히 키를 키운 쪽파들을 뽑았다. 배추가 열 포기, 무가 다섯 개, 쪽파는 손으로 줄기를 집어 두 줌 정도 되었다. 나머지 재료는 집에 있는 것들을 쓰거나, 사 와야 했다.
직접 김장을 한 것이 두 번째다. 사실 김장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육지의 본가에서 해마다 보내주셨고, 김치 맛있기로는 으뜸인 동생네 시댁 김치를 조금 부탁해서 받았다. 겨울이 시작되는 이맘때 즈음에 받는 김치의 양만 해도 일 년의 대부분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름 김치의 달인들이 만들어 보내시니, 맛있었다. 이에 반해 재료들이 알차지도 않거니와, 인터넷으로 김장 방법을 뒤지고 예전 김장하는 엄마 옆에서 뭘 넣나 쳐다만 보던 알음으로 어설프게 손을 놀리며 굳이 김장을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재미로 하는 텃밭이지만, 이 때문에 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종종 생겼다. 김장이 그러했다. 여름의 끝자락에 심은 배추들이 두텁게 자라 묶어준 겉이파리 안으로 속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씨를 뿌렸던 무가 싹이 난 후 주변의 흙을 가르며 하얗고 굵은 둥치를 드러내면 뽑아서 요리 재료로 써 주는 것이 예의일 것만 같았다. 텃밭에 들어가 몸을 써야 할 시기는 지났지만,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며 그렇게 자란 것들을 어디에 활용할까 나름의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고민 끝에 김장을 해 보자는 내 제안에 아내는 인상부터 찡그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고에 시작부터 좋지 않을 것이 뻔한 결과물을 꼭 만들어야겠냐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나는 김장을 고집했다. 다른 집들처럼 많은 양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텃밭에서 나온 것들로만 이벤트 행사 같은 마음으로 만들면 된다 설명했다. 맛이야 좋다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그것 그대로 다른 요리에 활용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에는 내 손으로 완성한 굴을 넣은 김장김치에 수육을 먹을 생각부터 들고 있었다. 그게 김칫국 마시는 일이 될지 아닐지는 상관없이 말이다.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칼을 들고 텃밭으로 들어갔다. 배추의 밑동을 자르고 상한 겉이파리들을 떼어냈다. 김장용으로 쓸 만한 배추들을 모으니 딱 열 포기였다. 칼집을 내어 자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고, 속도 차지 않았다. 칼집 두 번으로 네 조각을 만든 게 딱 한 포기였고, 나머지는 칼집 한 번으로 두 조각 엉성하게 만들어졌다. 무는 가장 큰 것이 주먹 두 개 정도였다. 쓸만한 것들을 골라 뽑으니 다섯 개 정도였다. 뿌리와 무청을 자르고 물로 씻으니 겉모습이 뽀얗고 귀여웠다. 쪽파는 잡초들과 함께 뒤섞여 간신히 키를 키운 것들 중, 손질하기 힘들지 않을 정도로 가늘지 않은 것들을 골라 뽑았다. 솎아내듯 골라 뽑은 것들이 줄기를 잡아 두 줌 정도였다. 가늘지 않은 것으로 골라 뽑았지만, 손질하기엔 무척 가늘어서 뿌리를 자르고 겉줄기를 벗기는데 힘이 없으니 밑동이 뚝뚝 끊어졌다. 텃밭에서 기른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김장을 하자는 다짐에 필요한 것들을 모으고 다듬었다. 다듬은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내가 보아도 김장재료로 쓰기에는 많이 부실해 보였다. 포기를 나눈 배추에는 미리 소금을 쳐 두었다.
아내와 마트에 가서 나머지 재료들을 샀다. 배 하나, 까나리액젓, 멸치 새우 간 것, 생강, 생새우, 굴.. 김장재료전이 따로 열린 마트에는 열무, 갓, 절인 육지 배추 등등이 있었지만, 이벤트나 다름없는 우리 김장에 텃밭에서 거둔 것 외의 주요 채소류는 필요가 없었다. 다만, 마음이 좀 쓰이는 것은 절인 육지 배추였다. 사실 김장의 주요 과정 중 하나는 배추를 절이는 것인데, 그것은 나름의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에겐 그런 감각이나 경험이 없었다. 무턱대고 시작한 김장의 시작이 배추에 소금 좀 뿌리고 숨이 죽도록 놓아둔 것인데, 결과를 생각하면 대책 없는 모험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제주에서 자란 배추는 아무리 잘 절여도 김장을 해 두면 물이 많이 생겼다. 제주라는 기후와 땅의 문제일 듯한데, 이것은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다. 그러니, 이 섬에서 김장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육지 배추를 선호했고, 절임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잘 절여진 육지 배추를 사들였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대책 없고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이벤트라지만 먹는 것을 만드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소금을 뿌려 둔 배추는 늦은 밤까지 숨이 죽지 않았다. 그냥 겉절이를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끈질기게 생생함을 유지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커다란 대야에 고농도의 소금물을 만든 다음, 녀석들을 집어넣었다. 소금물에 잘 섞어 시간을 조금 보내니 그제야 숨이 죽기 시작했다. 그대로, 아침까지 두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나가보니 숨은 완전히 죽어 부피가 3분의 일 수준으로 줄어있었다. 바로 꺼내어서 물에 세 번 정도 씻었다. 대야를 뒤집어 씻은 배추들을 널듯 올리고 물을 뺐다. 절이는 시간은 적절했는지, 잘 씻은 것인지, 그리고 배추의 염도는 괜찮은지 아무런 감이 없었다. 다만, 잘 절여졌을 거라는 막연함만 존재했다.
오후가 되어서 우리는 본격적인 김장작업에 들어갔다. 커다란 대야에 고춧가루를 풀고 냉동실의 얼려둔 간 마늘을 적당한 양 잘라 넣었다. 표고버섯과 말린 명태, 다시마로 미리 끓여둔 육수에 찹쌀가루를 넣고 풀을 쑤어 식힌 뒤 대야에 부어 넣었다. 까나리액젓도 적당히 부었다. 나는 생강과 배, 양파를 씻고 껍질을 벗긴 뒤에 블렌더에 갈아서 대야에 부었다. 무 하나는 채 썰어서 양념용으로 대야에 넣었고 나머지는 무김치용으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두었다. 쪽파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대야에 넣었다. 지난봄에 텃밭에서 거둔 매실로 만든 청을 조금 부었고, 멸치와 새우 간 것을 넣었다. 고춧가루가 좀 맵긴 해도 다 섞어보니 대야 속 양념은 꽤 맛있었다. 이벤트라지만 걱정이 반이었던 김장에 희망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생새우와 굴을 넣어야 했다. 생새우는 생각보다 양이 많았지만 모두 넣었다. 다른 요리에 쓸 일도 없었다. 양이 많은 생새우에 김장양념은 더 감칠맛이 돌았다. 마지막으로 씻어둔 굴을 넣고 섞은 다음,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렸다. 양이 적으니 작업이라고 할 것도 없이 아들과 아내와 나 셋이서 몇 번의 손놀림으로 김장은 마무리되었다. 김치냉장고용 김치통 딱 하나가 채워지는 양이었다. 무김치는 반 정도 차는 양이었다. 그렇게 뭔가 허무하다 싶은 생각이 살짝 들면서 김장은 마무리되었다. 맛은, 배추가 조금 짠 듯 절여졌지만, 양념이 생각보다 짜지 않아서 당장의 조화는 괜찮았다. 돼지고기 조금으로 수육을 만들어서 생굴과 새우살이 알차게 들어있는 김장김치를 곁들여 먹었다. 소주 한 잔 더하니 세상이 가득 차며 충만해졌다.
깊고 풍성한 맛은 없었다. 재료를 넉넉하게 넣으니 그것이 어설프게 만들어진 김장김치의 맛을 보충했다. 배추는 애초에 작은데다가 너무 절여져서 볼품없는 부피에 조금 짠맛이 돌았고, 제주 배추의 특성대로 접시에 담긴 김장에서는 서서히 물이 생기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삭은 굴과 생새우가 그것 그대로 풍미를 만들어서 두 번째 만든 김장 치고는 만족스러운 맛을 연출했다. 사실 맛을 가지고 평가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내 텃밭에 심고 키운 것들을 가지고 김장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름의 신념이 만들어 낸 충만함의 맛이었다. 얼마 안 되는 양으로 이벤트같이 만든 김장에는 사실 그런 만족이 있었다. 그 만족 때문에 나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벌였던 것이다. 내년에도 김장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나름의 경험을 했으니 올해보다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그 기대가 꽤 높은 이유는, 집에서 먹는 끼니마다 내어지는 우리집 김장김치에 젓가락이 자주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나름 만족스러운 맛을 만들어 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