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산타 할아버지가 두세 번 정도는 다녀갔었다. 윗목에 편 두터운 이불,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 둘 못이나 고리는 없었다. 큼직한 선물이 그대로 들어갈 만한 빨간 양말도 없어서 그냥 신던 양말 중에 가장 큰 양말을 베개 위쪽에 두었다.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던 마음은 가난이 한겨울 웃풍처럼 흐르던 방 아랫목 어머니 눈치를 살펴야 했다. 어떤 해에는 양말을 다시 집어넣고 빨리 자라는 타박을 들었고, 어떤 해에는 가벼운 미소로 우리 남매의 들뜬 기분을 다독였다. 성탄 이브의 밤은 두근대는 가슴으로 길었다. 날이 새도록 말똥할 것 같던 눈이 까무룩 감겼다가 미닫이문 유리를 통해 빛이 느껴지며 눈이 번쩍 떠졌다. 얼른 고개를 위로 젖혀 베개맡을 바라보았다. 내가 신던 양말에는 들어갈 리 없을 크기의, 포장지에 싸인 네모난 선물이 놓여 있었다. 들떠 있던 마음은 날아갈 듯 신이 났다. 또는, 기대했던 선물이 놓여있지 않아 깊은 실망에 빠졌다. 들뜨거나 깊이 실망한 마음은 아주 조용히 가슴에 담아야 했다. 성탄과 연말 왁자한 분위기 속에서 새벽까지 기타를 놓을 수 없었을 아버지는 우리가 깊은 잠에 들어 있을 시간에 집에 들어와 아랫목에서 깊은 잠에 빠져 계셨다.
조용히 마루로 나가 포장지를 뜯어보면 대부분은 장난감이었다. 성탄절 오후가 되면 동네 꼬마들은 저마다 성탄절에 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들고 골목에 모였다. 각자의 장난감들을 비교하면서 누구 것이 더 좋다 나쁘다 평하고, 자랑하기 바빴다. 또래들의 품평 속에서 점수가 후한 장난감의 주인은 목에 힘이 들어갔고, 점수가 박한 장난감의 주인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 입꼬리가 내려간 채, 부러운 시선으로 또래들의 품평을 조용히 바라만 보는 아이들은 성탄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품평이 대충 마무리되면 이야기는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 없다 논쟁으로 이어졌다. 나이가 많아봤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나 될 또래들에게 산타의 존재 유무는 중요했다. 그런데,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은 성탄선물의 결과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산타는 없다며, 선물은 엄마 아빠가 사주는 것이라며 소리를 빽 지르다가 발을 구르며 집으로 사라지는 아이들은 대부분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산타를 믿었던 나는 그저 혼란스러웠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못했고, 나에게도 어떤 해에는 선물이 주어지다 어느 해에는 선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내가, 그리고 누구는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선물이 오지 않았나.. 고민스러웠다. 연탄재 구르마도 들어오지 못할 좁은 골목 끝, 다닥다닥하게 벽을 맞댄 집들이 모인 이 동네도 그러고 보면 무척 넓어 보였다. 산타는 무슨 재주로 이 좁은 동네에서도 아이들을 가려 선물을 주었을까 신기했다. 기분이 상한채 집으로 들어간 아이들이 빠진 나머지 아이들의 품평과 논쟁이 마무리되면, 그 좁다란 골목은 추위에 아랑곳없이 해질녘까지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의 넓다란 놀이터가 되었다. 저녁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들의 큰소리가 골목에 퍼지면, 성탄절 하루는 그제야 조용히 마무리되었다.
받지 못한 성탄 선물에의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많이 옅어졌다. 산타란 그저 아이들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상상 속의 존재라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성탄절보다 성탄 이브가 더 기대되었다. 그것은 선물 때문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자연스러운 허락 하에 성탄 이브 저녁부터 성탄 새벽까지, 남녀 또래들과 함께 교회에서 보낼 시간이 기대되기 때문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성탄 이브와 성탄절은 항상 교회에서 보냈다. 12월이 되면, 주말마다 교회에 나가 성가 연습을 했다. 성탄 전야 예배를 마치면, 학년별 성가 대회가 열렸다. 학년마다 같은 색상의 옷을 입고 단상에 나가 성가를 불렀다. 어른 성도들 앞에서 모든 학년이 차례로 성가를 부르고 나면, 어른들은 집으로 돌아가 새벽송 선물을 준비했다. 우리는 중등부 고등부 따로 모여 마니또 게임을 즐겼다. 남학생과 여학생 선물을 나누고, 자신이 가진 번호가 적힌 선물을 차례로 받으며, 선물의 주인은 누굴까 설레는 마음을 품기도 했다. 게임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벌칙도 받고, 같이 기타 반주에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 자정이 되면, 교회 식당에서 야식을 먹고 조를 나누어 새벽송을 돌았다. 지금보다 훨씬 어두웠던 자정 넘은 새벽길은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고 적막했다. 적막한 골목길 도로길을 예닐곱 명씩 무리를 지어 배정받은 교회 성도님들의 집 앞으로 가서 조용하게 성가를 불렀다. 노래 기척에 집 안의 불이 켜지고, 잠에서 막 깨어 부스스한 성도가 웃는 얼굴로 미리 준비해 둔 선물을 건넸다. 어떤 집 앞에서는 성도님이 잠을 깰 때까지 성가를 서너 곡 이상 불러야만 했다. 그래도 들뜨고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어느 해 새벽송에는 어두운 하늘에서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벙어리 털장갑을 낀 채 걸음을 함께하던 고등부 누나가 화사한 표정으로 내리는 눈을 장갑 낀 손을 모아 받으며 반기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연하다. 두세 시간의 새벽송을 마치면, 교회에 잠시 모였다가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잠시 눈을 붙인 뒤, 성탄절 오전의 예배에 피곤하고 부은 눈으로 다시 참석했다.
의대생의 성탄절은 성적이 좋은 이들에게나 허용되는 자유였다. 나는 대학시절의 성탄절을 제대로 즐겨 본 기억이 없다. 낭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겨울이었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거나, 재시에 묶여 하루 종일을 도서관에서 보내야만 했다. 용돈을 벌지 않으면 밥을 굶어야 했고, 재시에서 떨어지면 한 해 유급을 하며 등록금을 다시 내야 했다. 필사적으로 살아야 했던 날들이었다. 교회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교회에서 삶의 해법을 찾지 못했다. 나의 삶에서 느끼는 거슬림, 괴로움, 그리고 내가 느끼는 세상의 부조리함을 어떻게 걷어내고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주로 종교에서 답을 찾고자 했다. 나에게 작은 실마리라도 건넬 수 있을 교회를 찾아다녔고, 종교 동아리에 가입해 선배들과 함께하던 종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십자가 아래 무릎 꿇고 앉아 눈물을 흘리며 두세 시간을 기도해도,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순진했던 생각들은 현실의 벽 앞에서 상처를 입고 점점 거칠어졌다. 그것은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적응의 과정이기도 했다. 그 과정안에서 종교는 교회는, 점점 거리가 생기고 있었다. 어떤 경우엔 실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현실의 압박은 버거웠고, 삶의 고민은 깨지지 않는 화석처럼 견고했다. 성탄절은 해마다 반복되었고, 나는 성탄 이브의 분위기를 교회 밖에서 느끼기 시작했다. 들뜨며 흐르는 이브의 풍경을 나는 애써 외면했고, 성탄절은 그저 조용한 휴일로 저녁 아르바이트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는 날이었다. 강원도 산골 도시의 성탄 추위는 눈 내리는 포근함이 아니었다. 텁텁하고 따뜻한 도서관 공기 안으로 몸을 피해야 하는 버거움이었다.
버거웠던 의대 생활 끝에 의사고시에 합격하고 예의 전문의 수련과정과 군의관으로의 군시절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 성탄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들뜸도 기대도 마음 안에서 모두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연말의 병원은 미친 듯 바빴고, 바쁘지 않아도 병원을 지켜야 했다. 바닷가 부대의 군의관은 상수리나무 숲 속 관사에서 조용히 술 한 잔 마시며 성탄절을 보냈다. 성탄은, 현업에 종사한 이후로 현실에 분주해야 했던 시간 속 소중한 휴일일 뿐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 시간을 방해받는 건 화나 짜증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교회라는 공간과 분명한 선을 그은 이후 내가 바라보는 성탄절은, 자본주의 사회 특성상 경기의 불황과 호황에 따라 분위기가 가라앉거나 호화로워지는, 연말의 세상 가늠자였다. 마음이 메말랐다고도 할 수 있었다.
제주에서 맞이하는 성탄절은 아내의 성탄 장식, 이브의 파티, 그리고 아내와 아들이 성탄예배에 참석해서 홀로 조용히 보내는 오전의 여유였다. 아내는 제주에 와서 독립적인 우리 가족만의 공간이 마련되자, 성탄 때마다 거실 한쪽에 성탄 트리 장식을 했다. 전기로 반짝이는 전구들을 달았다. 그것이 성탄을 기대하는 아들 녀석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현실에 메말라버린 나의 건조한 마음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어떻게든 성탄 분위기를 내 보려는 본인의 의지였을 수도 있다.
친구들이 많아진 이후로 성탄 이브는 파티의 시간이 되었다. 들뜨고 번잡한 시내보다는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좋아할 나이가 된 나와 아내는, 성탄 이브를 가족끼리 조용하게 보내거나 친구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열곤 했다. 또는, 친구들의 집에 초대받아 즐겁게 먹고 마시는 시간으로 보냈다. 그렇게 적당히 왁자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조금은 취한 기분으로 주변정리를 하고, 어릴 적 새벽송을 출발했을 그 시간 즈음에 잠자리에 들었다. 세상은 조금 무섭고 암울해져서 새벽송은 거의 사라졌다.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는 우리 집이 멀기도 하거니와, 새벽송을 하지도 않는 세상에 성탄 새벽의 무언가를 준비할 일은 없었다. 시간이 쌓인 몸은 어서 잠자리에 들라고 생체신호를 수없이 보내고 있었지만, 성탄 새벽의 고요함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었다. 아쉬움은 이내 생체신호에 압도되어 나는 까무룩히 잠에 들었다. 많이 커버린 아들 녀석은 이제 선물용 양말 같은 것은 찾지도 않았다. 성탄 선물은 무얼 사 줄 것이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으로 확답을 받아낼 뿐이었다. 나는 새벽녘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와 밤새 기타줄을 튕기느라 얼얼해진 손가락으로 아들 녀석과 딸내미 선물을 고이 싸주었을 아버지의 정성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올해 성탄 이브는 육지에서 여행 온 친한 친구와 함께 몇 집이 모여, 며칠 전 잡아 올린 큼직한 농어로 매운탕과 구이를 해서 크리스마스 음악을 들으며 먹고 마셨다. 적당한 취기를 안고 새벽녘 집에 들어와 잠이 들었다. 성탄 휴일의 이른 아침을 늦잠으로 즐겼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아내와 아들은 성탄예배에 참석하러 교회에 갔고, 나는 지금 적당한 재즈를 틀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성탄의 기분은 내 등 뒤에 선 작은 성탄트리에서나 퍼져 나오고 있다. 연말의 검진과 독감으로 진료가 미친 듯 바쁜 나날 사이의 휴일이라는 사실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나는 어릴 적의 기대나 들뜸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할 무미건조한 어른이 되었고,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아들 녀석은 그 시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성탄을 즐기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었고, 나는 시간에 침식되어가고 있었다. 심심치 않게 들리던 성탄 음악은 오늘을 기점으로 다시 자취를 감출 것이다. 병원은 여전히 바쁠 것이고, 나는 연말 분위기 따위는 상관없이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렇게 반복하며 한 해가 지나가는 중이다. 무미건조한 어른의 성탄절 오전은 이렇게 작은 회상으로 조금은 특별하고 조금은 아쉬움을 남기며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