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83.

by 전영웅

퇴근하자마자 바닷가를 향해 차를 몰았다. 장비는 출근 전 미리 차에 실어 두었다. 목적한 해변 앞에 차를 세우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포인트를 보았다. 해는 기울어지고 있었고, 파도는 검은 갯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적당히 만들고 있었다. 웨이더를 입고, 주머니마다 장비들을 차곡하게 넣거나 고리에 매달아 놓은 게임베스트를 입었다.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농어대를 꺼내어 온전한 길이로 연결하고, 태클박스에서 적당히 쓸 만한 미노우를 골라 낚싯줄 끝 클립에 걸었다. 차 문을 닫고 기대와 흥분이 배인 발걸음으로 포인트를 향해 걸어갔다. 시멘트로 포장한 소로 옆으로 초겨울 바람에 누렇게 마른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검은 현무암 갯바위로 들어서며 울퉁불퉁한 경사를 조심히 밟아 나갔다.

파도가 치는 갯바위 끝으로 다가갈수록 바람은 한 방향으로 점점 거세어졌고, 파도소리는 좀 더 시끄러워졌다. 파도에 젖은 현무암 갯바위가 윤이 나며 좀 더 검게 빛났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파도가 부딪치는 갯바위 끄트머리들을 바라보았다. 바람은 정확하게 등 뒤에서 불어오고 있었다. 가끔씩 몰아치듯 불어 몸을 앞으로 밀어댔지만, 낚시하기엔 아주 좋은 바람 방향이었다. 파도는 멀리서 너울처럼 밀려오며 크기를 더하다가 갯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로 바닥을 적셨다. 리듬을 타고 규칙적으로 다가오는 파도는 어느 때엔 강하게, 어느 때엔 약하게 갯바위를 적셨다. 파도를 맞아야 하기에 웨이더를 입었지만, 파도를 최소한으로 맞으려면 내가 서려고 하는 포인트의 상황을 잘 읽어야 했다. 캐스팅 하기엔 편안한지, 계속 서 있으면 파도를 어느 정도 맞을 것인지, 위험하지는 않은지, 그리고 만조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어나는 물과 파도에 진입과 철수는 용이한지.. 같은 자리에서 낚시했던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포인트를 잠시 관망했다. 그리고, 서고자 하는 포인트에 진입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해만 완전히 저물어 준다면 조건은 거의 완벽했다. 수심도 적당히 깊고 장애물도 많지 않아서 채비 손실에 대한 걱정도 거의 없는 포인트였다. 나는 릴의 베일에 걸어 두었던 미노우를 뺀 뒤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실어 힘껏 캐스팅했다. 바람에 날리는 미노우는 멀리 날아가 작은 파문을 하얗게 만들며 착수했다. 나는 바로 대를 낮추고 적당한 속도로 릴을 감기 시작했다.

낚싯대는 NS사의 cabin II, 릴은 시마노사의 stradic 4000번이었다. 1,2호 합사에 30lb 쇼크리더를 연결했고, 루어는 Rapala사의 플루터스틱 20그램, 전갱이 무늬의 미노우를 장착했다. 제주 농어 루어 장비의 전형적 조합이었다. 나는 농어를 노리고 낚시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석이 지나며 날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나는 서서히 농어 낚시를 생각한다. 바람이 남풍에서 북풍으로 변해가며 집에서 보이는 바다에 하얀 포말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면 나는 농어 낚시 장비를 손질한다. 날이 좀 더 추워지고 옷깃을 살짝 여미게 만드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장비를 들고 갯바위에 나선다. 바람은 거세고, 거센 바람에 파도도 거칠다. 아무도 없는 검은 현무암 바위 위에서 바람과 파도를 느끼며 나는 열심히 캐스팅한다. 거칠고, 고립감이 약간 배인 외로움, 내가 원하는 만족스러운 조건이다. 조금은 위험한 듯해도, 사람에 부대끼지 않음에 자유마저 느끼는 순간이다.

올해엔 무늬오징어를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아니, 낚시 자체를 시도하지 않았다. 낚시방송이 인기를 끌며 낚시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낚시업계는 환호할지 모르나, 나는 너무 싫었다. 포인트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에 제대로 된 낚시를 할 수 없었다. 사람에 지쳐 낚시를 온 것인데, 다시 사람에 치이고 있었다. 몇 번의 에깅 출조에 미련 없이 대를 접고 철수했다. 그러고는 더 이상 에깅 포인트에 나서지 않았다. 에깅 낚시라고는 장인어른 장모님이 오셨을 때 맛이라도 보여드린다고 시도한 한치 낚시 세 번 정도가 전부였다. 그것도, 아수라장 속에서 부글거리는 속을 참아가며 몇 마리 건져냈다. 낚시 생각을 하면 포인트마다 넘쳐나는 사람들부터 생각났다. 자연스레 출조를 포기하고 다른 일에 전념했다. 그러다 더웠던 날이 지나고 날이 추워지면서 나는 자연스레 농어를 떠올렸다. 농어는 나에겐 해마다의 숙제 같은 대상어였다. 시즌이 되면 한 마리라도 잡아보고 해를 보내자 하는 다짐이 언제부터 생겼다. 그래서, 늦가을이 되면 나는 부랴부랴 장비를 들고 갯바위로 나갔다. 크든 작든, 나는 해마다 한두 마리의 농어를 잡아 올렸다. 그리고, 잡아 올린 농어는 친구들과 회로 즐기거나, 집에 어른들이 오시면 매운탕으로 끓여 대접했다. 내가 직접 잡아 올린 자연산 농어라는 타이틀은 꽤 인기가 있었고, 희소가치마저 있었다. 손질과 회 뜨기를 직접 하고 매운탕도 나름의 비법이 있으니, 더욱 그러했는지 모른다.

해가 짧은 시기라 낚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방은 어두워졌다. 하늘에는 흩날리는 실구름에 배인 주홍의 잔광만 남았다. 바람은 좀 더 차가워지고 이제껏 익숙하던 하얀 포말의 파도는 살짝 두려워졌다. 밤은 그렇게 사람을 위축시킨다. 그래도 혼자 있음이 버겁지 않았다. 만조시간까지는 두어 시간이 남았다. 나는 방향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열심히 캐스팅했다. 나는 제주어로 코지라 불리는, 바다로 나 있는 세모꼴의 너른 갯바위의 한 곳에 서서 낚시 중이었다. 그러다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주변의 다른 포인트로 장소를 옮겨가며 탐색을 이었다. 파도를 따라 연안으로 접근하는 농어의 습성을 생각하면 여건은 매우 좋았지만, 내가 던지는 미노우에 입질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았다.

만조시간이 가까워지며 물이 높아지고 있었다. 멀리 드러나 있던 갯바위들이 물에 잠기며 파도를 만나자 하얀 포말을 만들었고, 포말이 부서진 자리는 어둠 속에서도 푸른색으로 물빛이 바뀌며 해류에 따라 모양을 만들었다. 농어를 만날 수 있는 조건은 더욱 완벽해졌다. 나는 푸른 물빛을 의식하며 열심히 캐스팅을 이었다. 그러던 찰나, 캐스팅과 착지 후 릴을 감기 시작하자마자 무언가 묵직한 것이 툭 낚아채는 느낌이 들더니 드랙에서 찌익 하고 거친 소리와 함께 줄이 풀려나가고 있었다. 버거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나는 얼른 대를 세우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너무 빠른 속도는 농어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상태에서 대를 들고 버티다가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두어 번 릴을 감았다. 뭘까? 하는 순간 툭 하며 대가 가벼워졌다. 아악!!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탄식! 녀석은 물속에서 바늘을 떼고 도망쳤다.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은 낚시 동생은 아마도 먹이활동을 하러 연안으로 붙은 참돔이었을 것이라 말했다. 가능한 이야기였다. 내가 제주에 오자마자 농어 낚시하다가 잡아 올린 것이 참돔 두 마리였으니 말이다.

아쉬워할 틈이 없었다. 긴장으로 팽팽해진 내 폐와 어깨가 캐스팅하는 내 팔에 통증을 느끼게 할 정도로 힘을 전달했다. 내가 선 포인트는 이제 파도가 몰려오면 물에 살짝 잠기고 있었다. 그러나, 위치와 여건이 너무 좋아서 물러날 수 없었다. 그렇게 30여 분을 한 자리에서 쉬지 않고 대를 열심히 던졌다. 만조까지는 30여 분이 남았고, 나에게는 그 시간만큼의 기회만 남았다는 절박감까지 얹혔다. 물은 거의 다 올라왔을 텐데도, 파도가 올라오면 내 발목까지 포인트가 잠기곤 했다. 아, 제발.. 하는 절박과 긴장이 뒤섞이는 찰나였다. 캐스팅 후 착지한 미노우가 릴에 끌려 바로 내 앞에서 들어 올려질 찰나, 물속에서 무언가가 펄쩍 뛰더니 퍽! 하고는 커다란 입으로 미노우를 낚아챘다. 동시에 찌이익~ 하고 드랙이 풀려나갔다. 녀석이 미노우를 물고 십 수 미터를 도망가더니 갑자기 수면 위로 튀어올라 몸부림을 쳤다. 아! 넙치 농어다!라고 느끼는 순간 나는 허리를 낮추고 대를 옆으로 낮게 유지했다. 다리엔 힘이 배로 들어갔다. 넙치 농어는 수면 위에서 몸을 털며 바늘에서 벗어나려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대를 높게 세워 유지하면 장력에 의해 털릴 가능성이 있다. 대를 최대한 낮추고 장력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넙치농어를 낚을 때의 요령이다. 게다가 녀석은 보통의 농어보다 힘이 좋았다. 일반 농어는 물속에서 힘 있게 채비를 물고 도망가기를 몇 번 반복하다 물속에서 퍼져버리는데, 넙치농어는 도망다가 끌려오다가를 반복하고 수면 위에서 바늘털이를 수시로 하는데도 좀처럼 지치지 않았다. 녀석의 습성에 따라 몸과 채비를 낮추어 장력을 유지하고, 드랙을 최대한 풀어두어 쉽게 바늘이 빠지지 않게끔 해 두니 녀석을 내 앞으로 끌어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녀석은 십 수미터를 도망가다가 다시 끌려오다가 어느 즈음에서 수면으로 튀어 바늘털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녀석은 지치지 않았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대를 팔꿈치에 붙이고 버티는 오른팔에는 힘이 무척 들어가며 아프기 시작했다.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의 싸움이 긴장 속에서 벌어졌다. 15분 이상을 그렇게 겨루었고, 포인트는 이제 파도가 올라오면 발목 위로 꽤 깊이 잠겨가고 있었다. 힘주어 버티는 하체가 어둠 속의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서 이동을 어렵게 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녀석을 끌어낼 때까지 버텨야 했다. 녀석의 크기도 가늠할 수 없이 그렇게 버텼다. 그러다 보니 녀석의 바늘털이가 뜸해졌다. 내 발 밑에서 다시 도망가기를 두어 번 정도 반복했다. 그러다, 발 밑에서 마지막이다 싶을 힘 빠진 바늘털이를 하더니 갯바위를 올라오는 파도에 힘없이 실려 내가 선 자리까지 다가왔다. 다시 파도가 밀려가자 녀석은 물이 빠진 검은 바위 위에 몸을 누이고 아가미를 가쁘게 움직였다. 랜턴을 켜고 나는 갸프를 꺼내 녀석의 아래턱을 걸어낸 뒤, 파도가 밀려들지 않는 안전한 위치까지 이동했다.

절박은 흥분과 충만함으로 바뀌었다. 걸어냈다는 것 자체가 온전한 만족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더 큰 만족과 흥분에 둘러싸였다. 대략 가늠해보아도, 넙치 농어는 길이가 상당했다. 내 농어낚시 인생에서 두 번째 걸어낸 넙치농어였다. 몇 년 전 판포에서 올린 것은 50센티미터가 될까 말까였다. 방금 낚은 것은 손으로 대략 재어봐도 80센티미터가 넘었다. 이런 대어와 내가 싸워서 낚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 대만족인 조과였다. 이 순간 아쉬운 것은, 정확히 잴 수 있는 계측장비가 없다는 사실과, 혼자 다니는지라 녀석을 양 손으로 들고 있는 모습을 찍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아쉬운 대로 장비를 녀석의 옆에 가지런히 놓고 전체 사진과 미노우를 문 녀석의 머리를 찍었다. 물이 자작한 검은 갯바위에 몸을 누인 녀석은 완전히 지쳐서 퍼덕이지도 못했다. 녀석은 매운탕을 끓여주기로 한 아들과의 녀석과, 며칠 후 제주에 놀러 올 지인과의 저녁식사에 쓰일 것이다. 나는 칼로 녀석의 아가미 뒤를 찔러 피를 뺐다. 피가 충분히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비늘을 벗기고 배를 갈라 아가미와 내장을 제거했다. 이것으로 오늘의 낚시는 끝이었다. 녀석을 끌어내며 흥분과 체력으로 소모한 에너지는 상당해서, 더 이상 낚시를 잇기 어려웠다. 한 손에는 장비를 들고, 한 손에는 녀석을 건 갸프를 잡고 어두운 갯바위를 빠져나오는데, 녀석을 든 팔이 너무 무겁고 버거웠다. 숨이 금방 가빠졌다. 긴장으로 지친 몸에 80센티미터 정도의 넙치농어를 들고 울퉁불퉁한 바닥을 걸어 나온다는 건 잠깐의 극기훈련이었다. 차에 도착하자마자 넙치농어는 통에 집어넣고, 나는 웨이더와 게임베스트를 벗고 장비를 정리하여 차에 넣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해야 할 일은 남았다. 바닷물에 적신 장비와 웨이더 등은 바로 민물로 세척해서 말려야 했다. 특히 릴과 낚싯대는 신경을 좀 더 써야한다. 소금기에 녹이 슬고 삭기 때문이다. 합사줄도 소금기에 손상을 받을 수 있다. 마당의 건조대에 장비들을 널어놓고 호스로 물을 뿌려 소금기를 걷고는 그대로 말렸다. 넙치농어는 아내와 아들에게 보여주고 정확한 계측을 했다. 더도 덜도 아닌 80센티미터였다. 바로 데바칼로 양측 살을 필레로 떠서 숙성회로 먹기 위해 랩 포장한 뒤에 냉장고에 넣었다. 머리와 등뼈는 마디마다 칼집을 내어 접어 냉동실에 넣었다. 나중에 매운탕으로 쓸 용도이다.

필레는 하루 뒤 친구들과 모여 회로 먹었다. 껍질은 따로 벗겨서 소금물에 데친 뒤에 가늘게 썰어 먹었다. 한겨울 넙치농어의 껍질은 자체로 맛이 좋다. 어른주먹 세 개 정도 부피의 머리와 등뼈는 무와 다시마 육수에 뭉근하게 오래도록 끓여낸다. 그대로 매운고추를 넣으면 지리, 고추가루를 풀면 매운탕이 된다. 나의 낚시는 이렇게 마무리까지 풍성하고 만족스럽다.

올해는 무늬오징어를 잡지 못한 보상때문인지, 농어낚시에 좀 더 집중했다. 10월 중순 경에 40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농어를 잡았고, 11월과 12월에 각각 80센티미터의 일반농어와 넙치농어를 낚아냈다. 그것들은 때마다의 저녁모임에 요긴하게 쓰였다. 올해 농어조과는 무척 만족스럽다. 더 이상의 욕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도, 시즌이 마무리되기 전에 두 번 정도 더 나가볼까 한다. 거친 겨울바다를 마주하며 느끼는 자유로움,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는 여유, 힘차게 버티는 농어와의 싸움, 그리고 스스로 준비해서 마무리까지 책임지는 파티의 즐거움까지.. 나의 농어낚시는 충만함으로 가득하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다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랗고 조밀한 밀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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