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토요일의 오전 진료 틈틈이 뉴스를 체크했다. 실시간 검색에는 제주공항이라는 단어가 올라와 있었고, 뉴스엔 윈드시어 발령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오후에 광주공항을 거쳐 전주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짙어졌다.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날씨가 많이 안 좋아서 오늘 뵈러 가기 어렵겠어요. 죄송해요.’
전날 밤에 아버지의 전화를 먼저 받았었다. 날씨 보니까 눈 많이 오는 것 같던데 힘들면 무리해서 오지 말라고 하셨었다. 나는 상황을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오후에 출발 일정이 잡힌 당일 오전, 결국 나는 갈 수 없을 것 같다 답해드렸다. 아버지는 덤덤하게 괜찮다, 무리할 필요는 없다 대답하셨다. 감기에 걸렸다가 나아지며 살짝 갈라지는 목소리셨다. 통화를 마치고, 나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범섬과 월드컵 경기장이 반쯤씩 보이는 서귀포 신시가지엔 눈이 바람에 흩날렸지만, 해도 어렵지 않게 보이고 있었다. 무리 없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한라산을 중심으로 산남과 산북의 날씨는 서울과 부산만큼 달랐다. 먹먹함에 답답함이 더 얹혔다.
추석을 보낸 다음 주에 전주에 들렀을 때엔 아들 없이 나와 아내 둘이었다. 한 달 전, 아들이 방학을 맞아 제주에 들어왔고, 한 달 정도 머물다 해가 바뀌면 다시 들어가야 한다. 학교 일정이 우리의 명절과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해외의 국제학교이다 보니 명절에 손주를 보여드릴 수 없었다. 아버지는 얼마 전, 언제 한 번 오지 않느냐 지나가듯 물으셨었다. 그러다가, 며칠 후 다시 전화하셔서 내년 설날이 되면 제주로 본인이 오시겠다 말씀하셨다. 그 말들엔, 손주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그러셔도 된다고 했다가 아차 싶어 전화로 다시 부랴부랴 사정을 말씀드리고 전주 일정을 잡은 것이 연말의 주말이었다. 아들 녀석을 데리고 전주에 가서 보여드린 다음 학교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대로 실행할 수 없게 되었다.
괜찮다, 무리하지 말아라는 부모님의 다독임을 가볍게 제치고 서프라이즈 방문 같은 이벤트를 할 수 없는 곳이 이 섬, 제주이다. 이 곳은 무리해서 안 되는, 무리를 할 수도 없는 곳이다. 괜찮다는 다독임 이면의 깊은 서운함을 어쩔 수 없이 서로 감내해야만 한다. 섬 안에 고립되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고, 기다리던 마음은 체념처럼 내려놓아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은 줄었지만, 그 자리를 아쉬움과 먹먹함이 가득 채웠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지난번 집에 들러 우연히 보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5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이후로 살이 많이 빠지고 등이 조금 굽어 있었다. 집과 애써 거리를 두고 살려하는 외과의사 아들도 혈연 앞에서는 마음의 벽이 아주 쉽게 무너졌다. 표정은 애써 덤덤한 척했지만 속은 철저하게 무너져 가루가 되었고, 마음의 비에 젖어 온 몸으로 스며들었다. 축축해져 힘이 빠졌고, 그것이 눈물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시선은 거실 티브이에 고정했다. 잠시 그러다가 돌아가겠다며 집을 나섰었다.
나는 전주의 부모님께 아들 녀석을 자주 보여드리지 못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집과의 거리 때문이었다. 마음의 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겨 있었다. 집은 내게 편안함보다는 불편과 부담이었다. 마음의 거리와 불편과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간의 현실적 심리적 당위가 되어갔다. 그리고, 내가 가족들을 데리고 제주에 입도하면서, 거리감은 실제적 거리가 되어 모든 것을 당연하거나, 어쩔 수 없이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나는 이 섬이 만들어 주는 거리감에 기대어 안주했다. 제주에 와서 스스로 만들어 가던 자유와 행복감에 젖었고 그것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제까지 유지하던 집과의 마음과 실제의 거리감이 필요했다. 가끔씩 연결되었던 집과의 소식은 매번 불편했다. 그러나, 아들은 손주의 위치에서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점점 등이 굽고 약해지셨다. 혈연은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의식하게 했고, 내 고집과 강퍅함을 꺾어버렸다. 나는 집에 연관해서 몇 가지 감정이 뒤섞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언제나 침묵하셨다. 집안의 수많은 일들과 사건들 앞에서, 아버지는 그저 침묵만 하셨다. 내가 굳이 아버지를 타박하자면, 그 이유는 침묵이다. 그 침묵이 지금 나와 가족들의 현재를 만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침묵을 존중한다. 그것이 아버지의 어쩔 수 없는 성정이었든, 아니면 일부러 선택한 삶의 자세였든 내가 알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안고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현재에 와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현재를 사랑하고 만족한다. 아버지의 침묵은 나에게 좋거나 좋지 않은 요소로 작용했다. 아버지가 침묵을 깨고 좀 더 적극적으로 가정사에 나섰다면 지금과 무엇이 많이 달라졌을까 생각해보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을 만족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의 침묵과 내가 가진 집에의 불편감이 지금의 심리적 현실적 거리를 만들고 유지해 왔음이 조금 아쉽다. 너무 오래되어 고착된 그 거리와, 시간이 흐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속마음이 충돌한다. 거리를 좁히려 노력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속마음을 다스리고 혈연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나는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가지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난 후의 마음엔 솔직하게 후련함이 조금 배어들었었다. 집에 가서 느꼈을 가시방석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됨에 그러했다. 훌쩍 자란 손주를 보여드리겠다고 데려가는 것이지만, 자주 마주하지 못해 어색해할 아들 녀석의 고개 숙인 무표정도 나름의 부담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고착된 집과의 거리가, 참 많은 것을 부담스럽고 어색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직접 만나 뵙고 보여드리지 못함에의 죄송함, 전화기 너머의 살짝 갈라진 노년의 목소리에 숨겨진 서운함이 자꾸 생각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가지 못하면 적어도 반년 이상 시간이 지나야 손주 녀석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갔어야 했을까.. 비행기표는 이미 취소를 했음에도 마음속 미련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갑자기 주말 하루 반의 시간이 텅 비어버렸다. 퇴근하면서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 넣을까 고민하며 곳곳에 눈이 쌓인 산간도로를 조심스레 운전해서 서귀포에서 제주로 넘어왔다. 중산간을 넘자마자 날씨는 서귀포와 확연하게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마트에 들러 닭 한 마리와 와인 두 병을 샀다. 세 식구 단출하게 저녁을 차릴 생각이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심해진 감기 증상에 코타츠 안으로 누워 있었고, 아들은 그 옆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닭을 통째로 양념해 재운 뒤 오븐에 넣었고, 와인 한 병은 뱅쇼를 만들어 감기를 앓는 아내에게 건넸다. 동지가 지난 지 얼마 안 된 겨울 오후는 해가 금방 저물었고, 거실 창 밖은 바람소리만 남은 채 어두워졌다. 세 식구가 코타츠에 모여 앉아 와인과 함께 오븐에 구운 닭을 저녁으로 먹는데, 거실 창 밖 하늘로 비행기 불빛이 지나갔다. 평소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조금 거센 바람에 좌우 날개가 비척이며 고도를 낮추며 공항방향으로 내려갔다.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무리를 해서라도 갔어야 했나.. 손주 녀석 앞에서 표정은 아무렇지 않지만,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간 채 말씀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두어 잔 마신 와인에 살짝 취기가 올랐다.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천장에 부딪히는 소리가 거칠었다. 그래, 무리하지 않은 게 잘한 거야.. 다시 아버지의 등 굽은 뒷모습이 떠올랐다. 병에 남은 와인을 마저 따라 마셨다. 아내와 아들은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음악이 멈춘 거실에 깊은 밤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바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