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힌디어로 행복한 마음, 이상향이라는 의미를 가진 여행자의 집이었다. 하귀 마을 일주도로를 건너 미수동 포구로 내려가는 언덕에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낡은 건물이었다. 커다란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온 젊은 부부가 내부를 꾸미고, 작은 식당까지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내부는 전면이 통유리창이었다. 바다로 검게 흘러내리는 듯한 가문동 포구가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풍경의 왼쪽 3분의 일 정도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바다와 하늘이 채우고 있었다. 북서쪽을 바라보는 풍경은 붉게 물드는 저녁 석양을 바라보며 술 한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동이 트는 새벽에 잠을 방해받지 않았다. 늦은 밤 가문동 포구의 불빛과 수평선에 뜬 어화에 굳이 밤 풍경 좋은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출입구 쪽으로는 작은 식당 공간을 마련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여행자들 뿐만 아니라,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개방된 공간이었다. 함께 웃는 모습이 참 예뻤던 두 부부는 저녁마다 분주했다. 검게 칠한 정면의 벽은 칠판같이 활용되었다. 딱히 고정된 것은 아니었던 몇 가지 메뉴들이 분필 같은 것으로 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간이식당처럼 디귿자로 꾸민 공간의 의자는 조금 불편했고, 탁자는 높이가 잘 맞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공간에 모였다. 지금으로부터 6여 년 전, 저녁만 되면 편하게 술 한잔 하거나, 편안하게 마주할 공간이 아쉽던 때였다.
알음알음으로 모였었다. 식당이라고 하지만, 시설도 조금은 조악했고 음식도 숙련된 것이 아니었다. 손님이라곤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여행자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반가운 섬주민들이 몇몇 모여들었고, 그중엔 나도 있었다. 제일 반가워한 것은 나에게 낚시를 가르쳐 준 동생이었다. 그는 집이 하귀였다. 미수 포구에 배가 정박해 있으니 오가면서 들르기도 했고, 약속한 날 저녁에 모일 때면 그는 세상 편한 옷차림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서 자리에 앉았었다. 그와 함께 우리 집을 포함, 서너 집의 가족들이 모여 주인 부부와 함께 즐겁게 술과 음식을 즐겼었다. 술이 어느 정도 들어가면, 하귀 주민이 기타를 들고 김광석을 노래했고, 우리는 조용히 들으며 깊어가는 밤 시간을 음미했다.
우리만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가끔 게스트하우스에 머무는 여행자들도 함께 했고, 제주에 살겠다며 내려온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오래 전도 아닌 그 당시엔 이 섬 안에서 꿈을 꿀 수 있었다. 돈이 없어도,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 볼 수 있다는 꿈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주엔 임대료는 많이 주지 않아도 되니, 들어와 살며 관리만 잘해달라는 농가주택이나 주거공간이 많았다. 게스트하우스를 돌며, 이 섬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나 단기 일거리로 삶을 이어가는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딜쿠샤의 젊은 부부같이, 게스트하우스 같은 공간을 마련해서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졌다. 그런 다양한 모습들이 현실과 삶의 기준에 비추어 옳든 옳지 않든, 꿈을 꾸고 실현을 모색해 볼 수 있던 때였다. 늦은 저녁 술 한잔에 하루 종일 귤을 따느라 힘들었다며, 잘 못 딴다고 타박 듣다가 결국엔 할망들에게 술시중 들다 왔다며 젊은 친구가 웃었었다. 오늘은 쉬었으니, 내일부터 따 놓은 공사장 일거리를 다 마치면 어디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 거라며 일정을 조율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딜쿠샤의 젊은 부부는 연신 주방을 오가며 음식을 나르다가도 잠시 앉으면 술 한잔 같이 마시며 자신들의 꿈을 이야기했었다.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돈이 조금 모이면, 해외로 나가 살 궁리를 하고 있다 말했다. 나는 그 꿈을 마음으로 응원했다. 당시의 제주는, 그런 꿈도 가능한 곳이었다. 딜쿠샤는, 행복한 마음으로, 이상향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딜쿠샤는 생각보다 오래 있지 못했다. 주인 부부의 남편이 페인트로 벽화 그리듯 외벽에 높게 쓴 딜쿠샤라는 이름은 어느 날 지워졌다. 주인 부부의 생각이 달라져서 다른 일을 하려 했던 것인지, 건물주가 계약이 끝나 공간을 비워달라고 한 것인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우리가 사랑하고 좋아했던 공간은 사라졌고, 제주는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급격한 파도에 휘말려 정신없이 변화했다. 평범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급류에 휩쓸려 앞을 보지 못했고, 급류에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내가 육지에서 보고 느꼈던 개발의 변화와 점점 영악해지는 사람들과 흡사했다. 꿈을 꾸던 사람들은 점점 밀려났고, 결국엔 자취를 감추었다. 꿈은 버틸 수 있는 능력이나 자본이 있는 사람들만이 꿀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었다. 미수동 포구의 언덕에 있던 이상향도 버티지 못했다. 젊은 부부의 캠핑 트레일러는 위치가 매번 바뀌다가 누군가에게 양도되었다. 두 부부도 이 섬에서 살아갈 궁리를 해야만 했다. 공간이 사라지니 마주할 시간도 거의 사라져서, 가끔 우연하게 마주치며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정도가 되었다. 지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들이 사는 모습을 간간히 듣곤 했다. 이 섬에서의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시간은 삶에 익숙해지고 점점 분주해지며 어쩌다 마주치면 반가운 미소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그 부부를 마주한 것은 딜쿠샤가 사라지고 나서 몇 번 되지 않았다. 그중 두 번은 남편이 일하다가 다쳐서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입원하거나 치료받으러 외래로 들렀던 일이었다. 그리고 한 번은, 무늬오징어 낚시를 하던 포구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옆에서 낚시 동생이 잡아 놓은 오징어를 손에 들고 가져갔었다. 그들의 미소는 여전히 밝고 화사했었다. 참 예쁘게 살고 있구나.. 나는 두 사람의 예쁜 삶을 여전히 응원하고 있었다.
이 섬의 삶은 점점 각박하게 변해갔다. 꿈이 사라진 현실 속 마저도, 소수의 여유로운 자들과 다수의 고된 노동이 분명해졌다. 그 주변의 대부분은 여행자들이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사건과 사고와 개발과 변화 속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은 꿈을 꾸던 사람들에 이어 꿈을 좀 덜 꾸거나 늦게 꾸는 사람들이었다. 딜쿠샤에 모였던 사람들도 그런 각박 속에서 버티며 살아가거나 하나 둘 사라졌다. 이상향을 꿈꾸던 두 부부는 각자 일거리를 찾아 일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다들 이제는 바삐 살아갈 수 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버티며 잘 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만 했다. 나는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중간중간,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소한 우여곡절을 듣는 정도였다. 다시 이 섬을 떠난다는 소식이 없다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싶은 마음으로 잘 버티며 살기만을 바랬다. 두 사람이 같이 웃는 모습은 참 잘 어울리면서도 화사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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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소식에 모인 자리에서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지인이 말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내가 이제까지 쌓아 온 세상이 무너졌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녀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