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와서 검도를 시작했다.
입도 후 한 달여가 지날 무렵 체중은 몸이 느낄 정도로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너자니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무릎이 조금 아파오고 발목도 붓기 시작했었다.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증상들에다 발목에까지 통증이 생기니 문제를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문제해결을 위해 내린 일차적이고 적극적인 우선처방은 체중을 줄이는 일이었다.
운동량이 매우 부족한 생활이라는 서울의 삶보다도 더 움직일 일 없는 삶이 제주의 삶이다. 물론 개인차가 존재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러 조금이라도 걷고 뛰는게 서울에서의 삶이었다면, 제주에서는 가까운 시장만 가는데도 집앞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오른다. 삶의 공간이 바뀌며 몸도 공간에 적응하면서 급격하게 줄어드는 활동량은 어쩔 수 없이 체중을 늘린다. 게다가, 이 섬에는 돼지고기를 필두로 무척 맛있는 먹거리들이 즐비하다. 한라산 하얀 소주는 어찌 그리 깔끔하고 음식들과 궁합이 좋은지, 곁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줄어든 활동량과 늘어나는 섭취량.. 나를 비롯하여 제주입도 후 일 년안에 급격한 체중증가를 보이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운동을 시작해야만 했고, 나는 오래전부터 생각해두었던 검도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운동을 할 것인가는 즉흥적이지 않은 고민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검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내가 제주에 와서 펼치는 오지랖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검도 역시 어린시절과 젊은 시절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비롯되었다. 해 본 것이라고는 어린시절 웅변학원 일 년 반 정도 다닌 것이 전부였다. 취미라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학에 가니, 동기들은 어릴적부터 해 오던 취미들을 가지고 동아리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기타가 그랬고 검도가 그랬다. 담배 하나 꼬나물고 기타리프를 연주하던 동기의 모습이 인상에 남아 베이스를 고민했다. 검도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동기는 이미 2단을 소유한 유단자였다. 동기들의 그런 모습들이 부러움과 동기가 되어, 나는 뒤늦게 하지못한 것들에 대한 보상으로 제주에 입도하자마자 오지랖을 펼치기 시작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과 때마침 출퇴근길의 모퉁이에 보이는 검도 도장이 있어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검도를 하고 싶어했지만 검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처음엔 죽도를 잡고 휘두르는 방법과 자세부터 잡아나갔다. 수련하는 관원이 거의 없는 도장에서 관장님은 새벽운동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나의 요구에 마지못한 표정으로 응했다. 홀로 죽도를 휘두르고 자세를 잡아나가다가 도복을 받아 도복 입는 법을 배우고 뭔가 기본적인 것이 갖추어졌다 생각했을 때, 수련시간을 점심시간으로 변경했고 나는 점심을 집에서 싸 온 삼각김밥 하나로 대체했다.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안되어 발목의 통증과 부종은 사라졌고, 무릎의 통증도 서서히 좋아지고 있었다. 체중이 조금씩 줄고 있었다.
수련동기도 생겼다. 내 또래이자 인근 병원의 물리치료사인 그 역시 검도를 해보고 싶어 입문했는데 시점이 나와 거의 비슷했다. 그와 나는 한 짝이 되었다. 혼자보다는 사람이 많을수록 수련효과가 좋은 검도이기에 우리는 점심시간에 맞추어 도장에 나와 함께 수련했다. 여기에, 회사원인 3단 유단자 분이 같은 시간에 맞춰 합류함으로 우리는 나름의 시간대를 맞추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검도는 지금까지 7년을 이어 수련 중에 있다. 현재는 2단을 획득한 유단자 대열에 들었지만, 수련도장도 바뀌었고 그간의 우여곡절로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은 취미이자 운동이 되었다. 일단 검도는 나의 체중조절과 근력과 몸의 균형을 잡는데 중심이 되어준 운동이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지만, 수련이라는 것은 몸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을 자아내는 일련의 과정이다. 좀 더 효율적인 자세, 자세를 가능케 하는 몸의 중심과 힘,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초근력과 체력.. 그리고, 내 몸 자체에서 느끼는 또는 뒤늦은 운동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한계에 대한 체감.. 검도는 내가 알지 못했던 몸의 세계와 인간관계의 영역을 깨닫게 해 준 묵직한 운동이었다. 지금은 검도를 통해 내 몸에 적합한 체중과 그에 맞는 근력과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체중조절과 건강이라는 단순한 목적을 넘어 검도는 인간이 가지는 하나의 작은 세계임을 오랜 수련을 통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내가 이어가고 있는 운동은 검도와 헬스이고, 간간히 자전거 라이딩을 한다.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체중증가를 고민하는 이들과 중년의 나이를 넘겨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을 진단받고 고민하는 환자들에게 꼭 설명한다. 이 섬에서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체중조절이 어렵고, 대사량이 자연스레 떨어지는 중년의 시점에는 근력운동과 유산소운동을 꼭 해서 만성질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주의 삶은 마냥 좋을 수 만은 없어 스스로를 위한 준비와 유지가 꼭 필요하다. 동시에 나에겐 염두에 두고 하고자 하는 것들이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듯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던 곳이 제주였다. 꾸준한 유지는 나의 노력이지만, 그것 역시 이 섬에서의 삶이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지금의 환경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