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3.

텃밭은 내 삶의 숨통이자 일부이다.

by 전영웅

양력으로 3월이 되면 나는 마당 한켠에 마련한 텃밭을 바라보며 한 해의 농사를 구획 짓고 가늠한다. 시간이 지나며 흐르는 공기에 온기가 더해지면, 나는 메마른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삽을 들어 땅을 뒤집는다. 얼지 않고 서서히 풀리는 3월의 제주 땅은 느릿하게 발효를 진행한다. 구상해 둔 대로 이랑과 고랑을 만든 뒤, 음력 3월 1일이 지난 적절한 시점이 되면 모종을 사다가 심고 씨앗을 파종한다. 고추, 가지, 상추, 토마토, 호박, 오이, 물외, 콩 등등.. 봄 텃밭 농사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봄의 시작부터 중반까지 조금은 이른 땀과 몸의 통증을 겪어내면, 최적의 시기에 준비를 마친 뿌듯함과 한 해의 풍성함이 주는 보람을 기대하는 것이다.

텃밭을 운영한 지 10년이 지났다. 전공의 후반부터 시작한 텃밭은 나의 숨통이 트이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였다. 근무를 하고 오프인 날엔 퇴근하자마자 피곤함에도 차를 달려 텃밭에서 삽질과 호미질을 했다. 작물을 키우는 방법도 모른채, 시간이 날 때마다 달려가 지주대를 세우고 물을 주고 매달린 것들을 수확했다. 텃밭을 처음 시작한 곳은 경기도 광주의 귀여리였다. 집이나 근무하던 병원에서 차를 달리면 두 시간이 걸리는 그 곳을 어떻게 다녔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한 정성과 관심이다 싶다. 텃밭은 해마다 장소를 바꾸어가며 손바닥만한 공간을 끊임없이 이었다. 끊임없는 이음은 작물을 관리하는 방법들을 조금씩 터득하게 했고, 때마다 거두는 작고 보잘것 없는 수확은 소소한 기쁨이었다. 그보다도 나에겐, 초록의 덤불과 검갈색의 흙을 마주하며 삽질과 호미질을 하며 몸을 놀리고 땀을 흘린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디에 텃밭을 마련하던 간에 집과의 거리는 어쩔 수 없었고, 시간 역시 쉽게 나지 않아 자주 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갈 때마다 몸으로 무언가를 가꾼다는 즐거움에 해마다의 텃밭을 포기할 수 없었다.

제주에 와서도 텃밭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 때, 그래서 나름의 속도로 하나하나 적응을 해 나가고 있으면서도 텃밭은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수소문해서 간신히 마련한 제주에서의 첫 텃밭은 오라골프장 초입 사거리 한 구석의 공터였다. 건입동 집에서 텃밭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지만, 서울에서 가꾸던 텃밭을 생각하면 그리 먼 거리도 아니었다.

제주에서의 텃밭은 서울에서와는 달랐다. 우선 모종을 심고 파종하는 시기가 3주 정도 빨랐다. 상대적으로 더운 지역이다 보니 잡초가 생각보다 무성하고 빠르게 자랐으며, 벌레가 많아 약을 치지 않으면 모종들이 제대로 자라기 힘들었다. 서울에서는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텃밭운영을 마무리하고 갈아엎었다. 제주에서 초반의 텃밭들은 운영주체들이 계약기간을 설정해서 겨울텃밭을 운영할 수 없었을 뿐, 사계절 텃밭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텃밭 운영에 나름의 원칙이 있었는데, 절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멀칭등의 목적으로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서울에서는 그나마 지켜낼 수 있는 원칙이었지만, 제주에 오니 무척 지키기 어려운 원칙으로 변해버렸다. 농약을 치지 않은 자연상태의 작물들은 제대로 크지 못하고 죽어버리거나, 성장한다 해도 먹기 어려운 수준의 상태로 마무리되곤 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으니, 갈 때마다 풀모기에 뜯겨가며 허리까지 오른 잡초를 뽑아주어야 했다. 멀칭을 하지 않으니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주어야 한다는 걱정에 발을 동동 굴렀다. 운영이 어렵고 수확이 어떻든 간에, 두 가지 원칙은 아직도 지켜내고 있다.

제주에서도 내 땅은 없었던지라, 해마다 텃밭 자리가 바뀌었다. 자리가 바뀌는 농사는 해를 잇는 농사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할 수 없으니 한해살이 작물들로만 기르다가, 변두리에 사는 지인의 뒤뜰에 텃밭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3년을 한 자리에서 가꾸었다. 한 자리에서 연속으로 텃밭을 운영하니 그제야 겨울 농사까지 이으며 월동배추와 무를 길러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의 땅인데다 멀지 않아도 집과의 거리가 있다는 점은 소소한 아쉬움을 만들었다. 작물들은 주인의 발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나는 내가 기르는 작물들에 잘 해야 일주일에 두어 번 발소리를 들려주는, 어찌보면 조금은 게으른 주인이었던 것이다.

입도 5년 차가 되면서 집을 지었고, 나는 설계 과정에서 마당 한 켠에 텃밭을 구상해 넣었다. 지금까지 운영해오던 텃밭 중 가장 넓은 면적으로 설계했고, 그것은 그대로 나의 놀이터가 되었다. 날마다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주인의 발소리를 날마다 지겨우리만치 들려줄 수 있는 텃밭이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기쁘고 즐거웠다. 열 평이 조금 넘는 텃밭에 나는 이제까지 그래왔듯 고추 가지 토마토 호박 오이 등등의 한해살이 작물들을 심고 가꾸었다. 하루하루 살피며 가물어 땅이 마를라 치면 바로 물을 넉넉하게 뿌려주었고, 성장을 방해하는 잡초들이 보일라치면 바로 호미를 들고 뿌리채 뽑아내었다. 제주에서의 텃밭에 한 가지 특징을 준 것이 있다면 허브재배였다. 따뜻한 지역이니 바질 고수 등등을 파종하거나 모종을 심어 금방 향기가 좋은 허브들을 거둘 수 있었다. 게다가 마당 한자리에 고정하여 연작이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니 허브의 종류들은 한해살이 뿐만 아니라 월동이 가능한 여러해살이 허브도 재배가 가능해졌다. 그래서 로즈마리와 타임, 라벤다를 비롯하여 펜넬, 딜, 고수, 바질, 민트종류들이 해마다 마당과 텃밭 한 켠을 무성하게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여름의 넉넉한 비를 만난 텃밭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 공간을 점령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는 호미를 들고 풀모기에 뜯겨가며 잡초를 뽑아 잡초더미에 하늘을 빼앗긴 작물들을 구했고, 땅을 뒤덮은 것들을 거둬내어 이랑과 고랑의 형태를 복원했다. 그리고, 가을 텃밭 자리를 넉넉하게 만들어서 월동배추 모종과 양배추 모종을 심었고, 무와 갓을 파종했다. 공간이 조금 더 여유가 있어 브로콜리와 콜라비 모종도 처음으로 심어보았다. 늦더위에 모종들이 시들거려 신경써서 물을 몇 번 주다가 넉넉하게 쏟아지는 비를 만나 모종들은 푸릇하게 기운을 되찾고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몸을 움직여 땅을 정리하고 모기와 싸워가며 쭈그리고 앉아 모종을 심는 일은 고역이다. 몸은 정직해서 마당과 텃밭에서 조금만 무리해도 다음날까지 곳곳에 통증을 매달아 놓는다. 그럼에도 나는 텃밭이 즐겁고 재미있다. 자급자족의 신성함이니 생명에의 경외감이니 하는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다. 그저 내가 내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이루고 거두며 일 년이라는 하나의 순환을 구성해 나간다는 성취와 만족때문이다. 성취와 만족은 해마다 치루어야 하는 본능이자 의무가 되었다.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이파리를 키우기 시작한 배추와 무를 보면서, 올해 가을 텃밭은 어떻게 정리하고 자리를 만들어 무얼 심을까 구상해본다. 서늘해진 공기와 짧아지는 해는 작물들의 성장을 재촉할 것이고, 한여름 잡초들과의 전쟁으로 녹초가 된 내 몸은 서서히 여유를 되찾을 것이다. 한 해의 순환의 내리막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나의 즐거움과 충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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