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국 한 그릇에서 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
몸국이라는 요리는 어감부터 이상했다. 몸이라니, 몸뚱이를 넣고 끓인 국 같아 형태는 상상할 수 없어도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물론 몸이 모자반을 뜻하는 제주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동네잔치, 추렴한 돼지라는 키워드에서 파생하는 요리이기도 하다. 돼지 삶은 물에 손질한 모자반을 넣고 끓여낸 국 한 그릇, 이제는 이상한 어감에 적응하고 익숙해져 내가 이 섬에서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몸국이 제주에만 있는 음식이 아니다. 작가 한창훈은 그의 글에서 제주에서 거문도를 거쳐 육지의 남쪽 해안으로 가며 변하는 모자반 국의 명칭을 보여준다. 제주에서는 몸국이라 불리는 것이 거문도에서는 몰 국, 육지에 다다르면 모자반 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먹거리로서의 모자반은 더 가깝다. 육지에서는 수많은 메뉴들 중의 하나로 잘 보이지 않던 이름이, 이 섬에서는 몇 안 되는 메뉴들 중에서 비중 있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국을 처음 만난 건, 구제주 인제사거리 부근의 돔베고기와 함께 몸국을 잘 한다는 식당에서였다. 이제 막 입도한 우리 가족에게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저지에서 제주시까지 오신 지인은 나에게 이영권 선생님의 책 제주사를 선물했다. 함께 자리에 앉아 돔베고기와 몸국을 맛보며 나눈 이야기는 주로 제주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좀체 알아들을 수 없고, 의미도 잘 닿지 않는 제주어는 내 앞에 놓인 뚝배기 속 몸국과 흡사했다. 메밀을 풀어 진득한 돼지육수에 검 갈색의 해초가 풀어진 고깃살과 섞여 담긴 한 그릇은 입 안에서 살짝 까끌했다. 맛은 있는데 생소한 식감과 느낌은 뱃속으로 들어가서도 여전했다. 벨크로 같은 까칠한 표면으로 뱃속을 살짝 긁는 느낌이었다. 해장음식으로는 괜찮겠다 생각하며 반찬이 부족해 ‘여기요~’라고 내가 종업원을 부르는 순간, 지인은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내 말을 막았다. ‘네?’라고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지인은 뒤를 돌아보며 바깥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양!’
생소함은 조금 오랫동안 남았다. 생소함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거리감은 조금씩 줄어들면서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맛있게 먹으면서도 잔상처럼 남겨지는 그 느낌은, 이 섬에서 나를 약간 부유하게 했다. 시간이 걸리는 그런 것들의 하나인지 아니면 이주민으로서 어쩔 수 없이 안아야 할 틈새 같은 간격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이제는 많이 알아들을 수 있어도 말하기엔 여전히 어색한 제주어, 입 안과 속을 들들 긁는 듯한 몸국의 느낌, 괸당, 그리고 그런 것들의 총체인 이 섬의 문화들.. 나는 여전히 ‘배지근하다’라고 말하는 이 섬에서의 음식 느낌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배지근함은 고기국수, 국밥 또는 다른 다양한 음식에서도 느낄 수 있다지만, 나는 유독 몸국에서 배지근함을 찾아보려 애쓴다. 몸국의 작은 생소함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배지근함을 느끼려는 노력은 어쩌면 정말 모르기 때문에 헛짚는 일인지 모른다. 7년을 넘는 시간 동안 틈새를 좁히지 못하고 부유하는 나 자신은 정체성의 문제이다. 아직 온전히 동화되지 못한 이 섬에서의 정체성은, 앞서 말했듯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문제인지 아니면 이주민으로서 어쩔 수 없는 문제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이 작은 거리감이 삶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3자 적 위치에 서서 몸과 맘이 편할 때도 많다. 그러나,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이 종종 마음과 머리를 휘감으면, 나는 이 섬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묵직한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한가하던 곳들도 이제는 사람과 차들로 북적이고 있다. 적적하던 해안도로에도 심심치 않은 간격으로 차들이 지나가고, 가벼운 산책인지 올레 장정에 나선 건지 알 수는 없는 사람들의 걷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이 빠지면 먹을만한 것들이 있나 갯바위를 둘러보는 사람들도 늘었다. 보말, 톳, 모자반 등등.. 사람들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모아 담는다. 대문 앞 의자에 앉아 검은 갯바위를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할망이 ‘우리 먹을 것은 좀 남겨두지..’라고 작은 한탄을 하는 요즈음의 제주섬이다. 잔치 때나 먹었다는 몸국을 이제는 아무 때나 식당에 들어가 먹을 수 있고, 모자반은 사람이 늘어나고 용도가 다양해지니 몸값이 조금 올랐다. 하지만, 많아지고 편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험으로도 온전함을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그런 것들은 대부분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섬을 여행하는 사람들이야 사실 그리 깊게 생각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이 섬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금 다르다. 깊이를 담은 이해는 공감을 하고 관계를 잇는데 자주 필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7년을 넘게 이 섬에 발을 붙인 나는 어떠한가.. 내 앞에 놓인 몸국 한 그릇에서 생각과 고민의 가지들이 뜨거운 김 퍼지듯 넓게 뻗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