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16.

한 때 베이스 기타를 연습했었다.

by 전영웅

베이스 기타를 손에 잡은 이유도 검도와 마찬가지였다. 대학시절 자신만의 취미를 가지고 활동하던 동기들에 대한 부러움에서 시작되었다. 지나다니던 학과 복도 동아리 연습실에서 일렉기타의 현란한 리프와 드럼의 박진감 넘치는 리듬이 들려오면 이유 없이 부러웠고 나도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버거웠던 전공의 수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집 근처의 실용음악학원에 찾아가 베이스 기타 수강신청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개인 수강을 받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그 한 시간이 전부가 아니었다. 강사가 내어주는 연습 거리들을 받고 집에 오면, 그것은 한 주의 숙제로 시간이 날 때마다 연습을 해야 했다. 전공의 수련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라 했지만, 그것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장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시간은 항상 없었고, 나는 어떻게든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버텨나갔다.

어째서 베이스 기타를 선택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뒤늦게 듣기 시작한 음악들에서 유독 베이스음의 둔중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합당한 이유가 될 듯하다. 재즈에서는 비교적 쉽게 들리지만, 락이나 메탈에서는 들릴 듯 말 듯한 무게 있는 리듬에 자꾸 귀를 기울이며 집중하곤 했다. 그것이 고민 없이 베이스 기타를 손에 쥐게 했다. 연습용 베이스 기타와 작은 앰프를 장만했고, 턱없이 부족한 연습시간에 어떻게든 버틴다는 마음으로 짬짬이 손가락으로 줄을 눌렀다.

제주 입도 후에도 먼저 학원을 알아보았다. 시청 부근의 실용음악 학원에서 락 베이스 연습을 이어나갔다. 서울에서보다 시간은 무척 여유가 생겨서, 이른 아침 일어나자마자 30분 정도 연습을 이어나갔고 저녁에도 시간 나는 대로 연습을 이었다. 손은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고, 리듬과 음색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시작한 것들이 모두 그러하듯, 나아짐은 더뎠다. 마음만 조급했고, 손가락의 움직임과 자세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틀리기를 반복했다. 직장인 밴드 영상을 보여주며 '서른 살 넘어 시작했어요’라는 어떤 광고의 긍정은 광고답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악기를 시작했으면 밴드를 만들거나 가입하고, 공연도 해보고, 밴드만의 음악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악기를 다루는 입장에서 일종의 수순 같은 말로 들렸다. 그래야 실력도 향상된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어설픈 실력이지만 밴드에 가입하기로 했다. 때마침, 아내의 커피 모임에서 밴드를 구상 중이라 는 어느 분을 알게 되었다. 지역 방송사의 카메라 기자인 그분은 기타리스트였는데, 같은 회사의 드럼을 치는 기자를 데려와 셋이서 밴드를 결성했고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곡을 정하고 합주 연습을 시작했다. 기타와 베이스와 드럼의 조합은 일단 가장 안정적이고 일반적인 조합이었다. 그러나, 우리 밴드는 이어진 4년 내내 이름 한 번 제대로 없었고 보컬이나 다른 파트를 구하지도 못했다. 기타리스트의 실력과 음감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드럼은 학생 시절 밴드 경력이 있었던지라 감각적인 리듬을 구사했지만, 나는 여전히 타브 악보를 구해 음악에 맞추어 간신히 외워 치는 수준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각자의 회사일과 업무로 연습을 할 수 없는 주도 많았고, 밴드라지만 연습하는 곡만 많아질 뿐 실력이 그다지 늘지 않으니 우리에겐 시간을 즐기는 놀이터 정도의 의미였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마주하며 진행했던 연습은 세 가족의 인연과 함께 시작되어 처음부터 지금까지도 종종 모여서 저녁을 먹고 즐기는 관계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기타와 키보드를 다루셨다. 젊을 때부터 다루던 악기라 나름 능숙하셨고, 그것은 본업 외의 능력이 되어 가난한 집안의 빚을 서둘러 탕감하기 위해 야간 유흥업소의 연주자로도 일하셨다. 퇴근 후 저녁을 드시고는 잠깐 누워계시다 밤길을 나서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잘 다녀오시라고 인사를 하는 우리에게 호떡 사 먹으라며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어주시기도 했고, 어느 여름날 밤 출근길에 온 가족이 따라나서 길 중간의 시장에서 당시에 비쌌던 바나나를 하나씩 쥐어주시던 기억도 선명하다. 마루에 있던 키보드에 서서 코드를 짚어가며 노래하시던 모습도 선명하고, 어느 날엔가는 기타를 잡고 줄을 퉁기며 나와 동생들에게 노래를 불러주시던 모습도 선명하다. 악기를 다루던 동기들에 대한 부러움 너머엔 어쩌면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 내 무의식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통기타였고 나는 베이스였지만, 베이스를 잡을 때마다 기타를 잡고 줄을 퉁기던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던 이유는 나도 아버지처럼 기타를 잘 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그만두신 후, 아버지는 교회 장로로 임직 하시며 예배 전 찬양인도 시간에 기타를 연주하셨다. 작은 교회가 적당히 규모를 갖추기 시작하고 교인들이 늘어나며 악기를 다루는 청년 교인들도 많아졌다. 실용음악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청년들이 아버지와 함께 찬양인도를 하면서 약간의 갈등이 생겼다고 했다. 아버지의 연주는 코드 연주일 뿐이지 제대로 된 연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대의 차이만큼 경험과 이해의 차이가 생겼고, 교인이 늘어나면서 아버지도 담당할 영역이 줄어들었다. 결국 아버지는 교회 내에서 기타 연주를 그만두셨다. 나도 베이스 기타를 손에서 놓았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할 즈음, 종합병원에서 개인의원으로 근무하는 병원을 옮기면서 연습할 시간을 좀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시간도 없었지만, 나는 내 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제대로 된 악보를 보던 눈이 타브 악보를 보면서 악보를 읽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잠깐씩이지만 연습을 유지해오던 나의 손과 감각에 심각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는 귀에 디테일을 담고 싶었으나, 내 귀는 선율의 세세함을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던 것이다. 밴드는 점점 모이기 힘들어했고, 시내 외곽으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한 이후로 나의 시간 여유는 급격하게 줄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내 주변 환경과 상황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신경 써야 할 우선순위들이 생겨났고 베이스는 순위에서 밀렸다. 잠시 쉬자 생각하고 케이스에 넣어둔 베이스는 벌써 2년을 넘게 잠이 들고 말았다. 아버지의 삶의 한 부분은 마무리되었고, 나의 삶의 한 부분은 가던 길을 멈추었다. 나는 아직 모르겠다. 멈춘 걸음을 다시 걷게 될지 아니면 멈춘 자리가 존재의 흔적이 되고 말지..

사실 나는 아직도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직하지만 현란한 베이스 선율에 몸이 리듬을 타고 머리칼이 쭈뼛하게 선다. 마음은, 내가 다시 베이스를 잡고 조금만 연습하면 똑같이는 못해도 비슷하게는 연주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미련이고 망상인 줄 알지만, 그것들이 냉정한 이성을 압도하며 나를 부추긴다. 그러나, 나는 조금 두렵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굳은살이 완벽하게 사라진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나는 미련을 버리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시작도 망설이고 있다. 천성이 미련한 탓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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