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낚시를 시작하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낚싯대를 챙겼다. 어둠이 완벽하게 깔린 이른 밤, 나는 낚싯대를 들고 천천히 탑동으로 걸어나갔다. 걸어서 10분, 동자복 앞을 지나 산지천 다리를 건너고 서부두 횟집거리를 지나 탑동 매립방파제 앞에 섰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나와 바닷속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채비를 던지고 있었다. 탑동광장 가로등이 비치는 바다 표면 위에는 전갱이 치어들이 말 그대로 새까맣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새까맣게 몰린 치어들의 군집 사이사이에서 이따금씩 작은 폭탄이 터지듯 포말이 튀었고, 치어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전갱이 치어들을 따라 몰려온 광어떼들이 바닥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튀어오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광어를 잡기 위해 열심이었다. 나도 채비를 달아 바닷속으로 던져 넣었다. 채비라고 해야, 육지에서 배스나 쏘가리를 잡던 루어채비여서 바다에서 쓰기엔 좀 약했다.
낚시를 좋아해서 육지에 살 때도 루어낚시나 플라이낚시를 즐겨 했었다. 제주에 들어오니 내가 이제껏 알던 낚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바다낚시를 배우고 싶었지만, 낯익은 사람조차도 없는 곳에서 낚시를 물어 볼 사람은 언감생심이었다. 어느날, 저녁을 먹고 아내와 아이 셋이서 밤산책으로 탑동광장에 갔는데, 바닷가 방파제를 따라 사람들이 죽 늘어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무엇이 잡히나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니, 바다에는 전갱이 치어들이 엄청난 규모로 유영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아래 광어를 잡으려 연신 노력중이었다. 이따금씩 올라오는 광어를 보니 횟집에서 보는 그런 크기들이었다. 올라오는 광어의 모습에 마음은 두근거리고 조급해져서, 다음날 당장에 있는 채비를 챙겨 탑동으로 나온 것이었다. 육지에서 쓰던 조금은 뻣뻣한 배스용 루어대에 꼬리가 긴 웜채비를 달아 열심히 캐스팅하였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옆에서 가끔씩 올라오는 광어는 생미끼에 반응한 녀석들이었다. 입질을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굳어지는 순간 갑자기 투둑하고 루어대로 신호가 들어왔고, 릴의 드랙이 찌익 하고 풀리기 시작했다. 순간 당황한 나는 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대를 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느꼈던 건, 민물에서 배스를 걸었던 느낌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었다. 버티는 힘 자체가 압도적으로 강했다. 잡을 수 있을까 고민하며 대를 세워 버티고 릴을 감으려는 찰나, 뚝 하는 느낌과 함께 대가 가벼워졌다. 채비가 끊긴 것이었다. 제주 입도 후 나의 첫 바다낚시 경험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제주에 살면서 낚시는 꼭 하고 싶은 취미였다. 하지만 바다낚시는 생소한데다, 나는 생미끼 낚시가 아닌 루어낚시를 즐기는 축이었다. 바다루어 낚시를 물어 볼 사람이 없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나며 내가 원하는 낚시를 도와줄 친구들이 나타났다. 한 사람은 입도 십여 년전부터 낚시동호회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형님이었다. 민물 바다루어 구분없이 곳곳을 다니며 낚시를 즐기는 형님은 우리가 제주에 내려간다고 하니 내심 반가워했다. 그러더니 입도 얼마 후 집에 두고 쓰라며 낚시장비를 한 보따리 보내왔다. 의도가 어찌되었던 나는 고맙고 반가웠다. 그 장비들로 초기 장비구입에의 부담없이 열심히 바다에 나설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형님은 종종 제주에 내려와 나를 데리고 다니며 포인트, 기법, 채비운용 등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제주 낚시친구들도 소개시켜주었다. 제주에서 형님과의 첫 출조는 탑동 앞바다에서 무늬오징어 낚시였다. 에기라는 새우모양의 가짜미끼를 이용하여 무늬오징어를 유인하는 낚시이다. 형님은 바다를 마주하고 서서 포인트 특성, 캐스팅 후 줄을 읽는 법, 운용기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후 에기를 이용한 무늬오징어 낚시는 사시사철 즐기는 나의 주요 낚시가 되었다.
두 번째 친구는 모임에서 만난 선주민 동생이었다. 낚시와는 무관한 모임에서 우연히 마주한 동생은 국내 조구업체 필드스텝으로도 활동하는 실력있는 낚시인이었다. 그것도 바다루어를 전문으로 활동하는 친구이니, 나에게는 정말 좋은 선생을 만난 기회였다. 이후로 나는 그 친구의 조언으로 장비를 구입했고, 채비와 운용에의 좀 더 깊은 감각을 가질 수 있었다. 동생은 작지만 나름 활용도가 높은 배도 한 척 가지고 있어서, 종종 배에 같이 올라 선상 채비운용에의 감각도 익힐 수 있었다. 이 친구를 통해 배움으로 나는 바다루어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우선 에깅낚시를 기본으로 농어루어, 한치에깅, 선상 타이라바, 슬로우지깅 등의 영역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꾸준히 흐른 지금, 동생은 가끔 동행출조를 하고 술도 한잔 하면서 낚시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경험과 감각을 쌓는 일이다. 7년이 지난 지금, 바다루어낚시는 내가 즐기는 가장 큰 취미가 되어서 포인트나 기법, 상황파악 등등의 요소를 무리없이 활용하는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5월이 되면 무늬오징어나 한치를 낚기 위해 종종 방파제 위에 서고, 늦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 해의 통통하게 살이 오른 농어를 잡기 위해 방수바지를 입고 갯바위에 선다. 한겨울 넙치농어나 대물 무늬오징어에 대한 기대도 종종 가지며, 내 생일부근의 주말에나 선선해진 가을 어느 날에는 배를 예약해서 선상낚시를 즐긴다. 집안 어른들이 오신다는 소식이 들리면 나는 며칠 전부터 루어대를 들고 바다에 나가 대접할 거리들을 직접 잡아오고, 친구들이 놀러오면 마침 잡아두었던 무늬오징어나 매운탕거리들로 저녁을 챙겨주기도 한다.
제주에서 낚시는 나에게는 필수였다. 지금도 그렇다.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고, 잡히던 잡히지 않던 그것 그대로 낚시하는 시간을 즐기는데 만족한다. 먼바다에 어화가 수평선을 줄짓고 가까운 바다에도 섬광같은 배의 불빛들이 늘어나면,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불빛 아래 일렁이는 물살을 앞에 두고 무념의 마음가짐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 섬에 사는 사람으로 그런 간절함을 때마다 충족시키기는 어렵지만, 기회가 된다면 잠깐의 이동으로 대를 들고 바다 앞에 설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밀물의 밤바다에 서서 가벼운 대에 에기를 달아 던져넣고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탁 트인 밤바다 전경을 바라보고 느끼는 여운, 나에게는 제주의 삶을 선택함으로 얻은 하나의 축복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