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돼지의 맛은 감탄 그 자체였다.
병원 식당에 내려가 식판을 들고 줄지어 담긴 반찬들을 보니, 직원들 먹는 것엔 별로 관심이 없다는 병원장의 인상을 직접 보는 듯 했다. 작은 병원에서 직원들 복지에 얼마나 신경쓰겠나 싶으면서도, 배고프니 그냥 먹어야겠다 싶은 수준의 음식들에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날 메뉴 중 하나는 돼지고기 고추장볶음이었다. 퍽퍽해보이는 살코기를 얇게 썰어서 야채와 함께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볶아낸 것이었다. 그래도 고기가 있어! 하고 넉넉히 식판에 담고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돼지고기를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얄팍하고 부스러지듯 뒤섞여 익은 볼품없는 고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나 싶어서였다. 혼자서 조용히 감탄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잠시, 직원들 식사에는 관심없어 보인다고 실망했던 병원장에게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제주에 들어와 산 지 7년을 넘기고 있지만, 돼지고기는 여전히 맛있다. 돼지고기는 이 섬의 주된 음식이자 삶이었다. 돼지는 삶고, 구워지고, 채워졌다. 잔치가 열리면 추렴한 돼지는 그대로 솥에 삶아졌다. 삶은 고기를 도마에서 듬성듬성 썰어 소금 조금과 함께 내면 돔베고기가 되었고, 삶은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면 몸국이 되었다. 추렴한 속의 창자를 선지에 버무린 찹쌀로 채워 삶으면 순대가 되었고, 그 순대와 머릿고기를 함께 삶은 국물에 넣으면 순대국이 되었다. 고기국수의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돼지삶은 물에 면을 넣어 팔기 시작한 것이 한국전쟁 이후였고, 그것이 고기국수의 시초가 되었으니 말이다.
고기를 굽는 방법은 육지나 섬에서나 매한가지였다. 질 좋은 참숯 위에 석쇠를 놓고 굽거나, 그게 어렵다면 전기나 가스불 위에서 불판을 놓고 굽거나.. 다른 점이 있다면 작은 그릇에 멜젓이 담겨 불판 위에 같이 올려지는 것이다. 잘 손질된 고기를 불 위에 놓고 타지 않게 때를 잘 맞추어 한 두번만 뒤집은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살짝 바삭해질 정도로 마저 굽는다. 멜젓에는 매운 고추 하나 썰어 넣고 마늘 두어 조각 넣고 하얀 한라산 소주 조금 넣은 뒤 불판에서 함께 끓인다. 잘 익은 고기를 멜젓에 푹 담갔다가 쌈야채 위에 올리고, 마늘과 고추와 쌈장을 올려 싸서 먹는다. 물론 그 전에 하얀 한라산 노짓것으로 한 잔 들이켜야 한다. 잘 구워진 돼지고기 본연의 맛을 보고 싶다면 그냥 멜젓에 조금 찍어 먹어도 좋다. 그 맛! 고소하고 감칠맛이 입 안을 점령하는 그 순간의 행복감은 이 섬에서 돼지고기를 먹는 이의 특권이다. 제주에 놀러 온 친척 한 분은 잘 구워진 돼지고기를 먹고는, 혹시 고기를 미원물에 담갔다 꺼낸 거 아니냐고 의심 반 감탄 반으로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는가.. 사실 난 그 이유를 모른다.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남쪽 섬에서 길러진 돼지들 자체가 이런 맛을 품는 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그 맛을 즐기기에 바쁘다.
근고기 구이는 돼지고기를 통째로 불 위에 올려 면면을 익히고 잘라가며 굽는 방식이다. 그렇게 굽는 방법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유행인 연탄 근고기구이의 유래는 돼지고기 굽는 방법 하나는 정말 잘 할 수 있다고 자부하던 목욕탕 세신사 아저씨가 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자신만의 고깃집을 연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연탄불 위에서 구워야 한다는 점에서부터 연탄근고기는 일단 식당을 찾아가게 되는데, 이런 집들의 특징은 손님이 고기를 굽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돌아다니며 고기를 뒤집고 자르고 구워준다는 점이다. 세상에 제일 맛있는 음식이 남이 해 준 음식이고 제일 맛있는 커피는 남이 내려준 커피이듯, 능숙한 솜씨로 직원이 직접 구워주는 돼지고기는 얼마나 맛있겠는가. 다만 고깃값이 조금 비싸서, 집에 연탄아궁이 세트 하나 들여서 직접 구워먹어볼까 싶을 정도로 맛이 대단한 것이다.
입도하던 해, 그러니까 7년 전의 돼지고기 가격은 정말 저렴했다. 그 맛있는 돼지고기가 저렴하기까지 했으니, 내 입은 즐거웠고 내 살도 즐거움에 불어갔다. 10여명이 조금 넘는 병동회식을 가끔은 돼지고깃집에서 내 용돈으로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며 제주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함께 투기, 물가상승의 광풍을 맞았고, 음식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7년전 돼지고기 가격에서 정확히 3배로 상승했다. 이제는 맛있다는 돼지고깃집도 부담없이는 갈 수가 없고, 되도록이면 고기를 사다가 집에서 구워먹게 된다. 조금은 아쉽다. 맛있다는 식당에서 외식하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는데, 이제는 사람에 치이고 가격에 치여서 그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니 말이다. 제주는 그렇게, 급속한 속도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다. 긍정적이지 않음이 분명한 방향으로 말이다.
입도 후 첫 식사는 순대국밥이었다. 처음 대접받은 음식은 돔베고기와 속을 들들 끓게 하던 몸국이었다. 고기국수는 어떤 형태의 일상음식이었고, 종종의 회식자리에서 맛보는 오겹살이나 목살구이는 행복이었다. 제주에는 바다가 있으면 산이 있듯이, 바다의 음식이 있으면 땅의 음식이 있다. 땅의 음식들의 중심에 돼지고기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사실이다. 그것이 이 섬에서의 삶을 채우고 유지하게끔 한다. 굳이 먹거리에 대한 이런저런 토를 달기 이전부터 돼지고기는 삶의 일부였다. 삶의 일부로서 변화가 있다면, 이전엔 마을 잔치에나 나오던 것들이 이제는 일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일상이 되어버릴 정도로 흔해진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의 고민은 일단 접고, 나는 종종 이 섬에서의 돼지고기 맛을 즐길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것은 이 섬에 머무는 이들의 특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