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전 제주에 입도한 후 둘러본 풍경은 서울이나 육지의 풍경이 주는 느낌과 조금 달랐다. 그것은 사람이 사는 곳이 섬과 육지이기 때문에 생기는 그런 차이가 아니었다. 시선의 중심이 이동한 느낌이었다.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듯, 제주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구 시가지의 풍경에서 느꼈던 것은, 이 곳은 일본과 좀 더 가까운 곳이라는 점이었다. 여전히 남아 있던 적산가옥의 흔적들이 보였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의 생활 안에서 일본문화가 살짝 느껴지는 살림들과 생활습관들이 있었다. 거리상으로 일본과는 부산보다 먼 이 섬에서 어째서 일본문화의 흔적들이 보일까 궁금해졌었다. 더구나, 당시엔 제주와 일본을 바로 연결하는 항공편이나 배편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4.3과 관련한 제주의 근대사를 공부하고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만 해도, 군대환이라는 커다란 배가 조천에서 성산까지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아 일본으로 오갔다고 했다. 해방이 되자, 그 배를 타고 돌아온 재일 제주인의 숫자가 대략 5만이라고 했다. 일본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던 시절에 그 정도 규모의 사람들이 오갔다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흔적은 충분히 남아 있을 만했다.
해외여행을 거의 다녀보지 못했었다. 신혼여행과 잠깐의 미국 친척 방문이, 제주에 오기 전 해외여행의 전부였다. 제주에 살면서는 제주의 생활에 거의 취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주를 즐기기만도 바빠서, 해외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물론, 병원생활이라는 것이 그럴 만한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 주지도 않았다. 게다가, 대부분의 해외 여정은 김포나 인천공항으로 올라가서 출발해야 했다. 제주에 살면서 경험한 반가움과 아쉬움을 하나씩만 말해 보자면, 전자는 제주를 오가는 해외항공편이 증가했다는 점이고, 후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 연주자들의 서울 내한공연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이 제쳐두었다. 반가움을 잘 활용하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서도 바로 향할 수 있는 해외여행지가 많이 늘어나자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적극적으로 고민했다. 그것은, 서울을 의지하지 않고서도 제주에서 직접 내가 사는 공간의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의 중심이 좀 더 확고하게 이동하고 견고 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멀리 나가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은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길게 또는 짧게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상하이에서 중국의 한 면모를 관찰했고, 대만에서 단순하면서도 사뭇 복잡한 그 섬의 역사를 느껴보았다. 오사카와 교토를 다녀보며, 가깝지만 멀었던 일본 안의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을 보았다. 지인들은 직항편들을 이용 해 홍콩이나 마카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고, 나는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친척을 기반 삼아 제주에서의 직항을 이용해 비교적 자주 말레이시아를 오가고 있다.
항공편이 많아진 이후로 제주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역시 달라졌다. 사드 문제 이전 엄청나게 몰려다니던 유커들이 사라진 자리엔, 관광지나 호텔 주변으로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진료실에서는 억양이 다소 억센 영어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는 중국인이나 홍콩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약간 미끄러지는 듯한 한국말을 하는 일본인들도 많아졌다. 제주에 산다는 건 점점 더 분명하게 다른 시선의 중심을 가진다는 의미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변화일지 나쁜 변화일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시선의 확장 안에서 좀 더 자유를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조호르바루에 있다. 명절 휴가를 맞아 이 곳에 머물고 있는 아들과 아내를 만나러 왔다. 제주에서 쿠알라룸푸르로 연결하는 직항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공항에서 아내와 아들을 만나 함께 짧은 여행을 즐기다가 조호르바루의 친척집에 머물고 있다. 일주일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아들과 함께 있었고, 이제 나는 여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가야 한다. 출발지는 싱가포르의 창이 공항이다. 이 곳에서는 쿠알라룸푸르로 가는 것보다는 국경을 넘어 싱가포르로 가서 창이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 예전 같으면 인천을 경유하여 김포로 전철을 타고 가서 제주로 돌아와야 했다. 이제는 홍콩을 경유하여 제주로 돌아오는 항공편을 이용한다. 조금 덜 번거롭고 조금 더 저렴하다. 앞으로 좀 더 이곳에 머물고 있을 아들을 보러 오는 길 역시, 예전보다 조금 덜 번거로워졌고 비용이 많이 저렴해졌다. 아들을 만나는 기대는 조금 더 가벼워졌고, 겨울을 살다가 잠시 여름을 체험하는 재미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의 발길이 닿을 수 있는 곳들에 쌓인 시간과 나의 시선이 가 닿을 현재에 대한 호기심은 더 많아졌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담기고자 하는 중심에서 스스로 벗어나 변방의 작은 섬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중심을 느끼고, 시선에 점점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있음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