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어아시아
빨간 제복을 입은 에어아시아 승무원을 보면 나는 일단 무섭다. 농담 조금 보태서, 기내에서 조금만 실수하면 일단 따귀 한 대 올리고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신속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그래도 마음은 가볍다. 과도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의 모습과는 정반대이다. 내 입장에서도, 그런 감정노동 하에 이루어지는 편의와 서비스는 되려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쿨하고 깔끔하게, 각자가 필요한 것들만 오가는 서비스가 마음이 편하다.
여성 승무원의 제복은 붉은색에 가슴선과 허리선의 볼륨감을 상당히 강조한 디자인이다. 볼펜은 가슴 옷깃에 꽂고 다닌다. 여성성을 과하게 강조한 제복을 그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했다. 그리고, 일말의 여지도 절대 허용 못하는 우리나라의 B사감들, 페미니스트의 간판을 매단 프로불편러들은 에어아시아 여성 승무원의 복장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사실, 그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보여 준 태도를 바탕으로 판단해보자면, 그들은 당장 에어아시아 한국사무소 앞에서 ‘성차별적인 복장에 반대한다’고 피켓시위라도 벌여야 한다. 나는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태제들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에서 벌이는 저항과 투쟁의 방식에는 동의하기 힘들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라 불러도 될지 모를 그들, 페미니즘의 간판을 내세워 무슨 대단한 파시즘적 세상을 만들 것 같은 프로불편러들의 말들을 보면 트집과 흠집 내기에만 집착하는 병적 상태를 감지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이 온라인의 바깥세상에서 행동을 보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세상에 대한 피해의식의 결정체들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에어아시아 여성 승무원의 복장은 물어뜯기 아주 좋은 대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하다.
누구나 날 수 있다는 에어아시아의 모토는 반갑다. 가격이 저렴하니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단, 짐이 없거나 최대한 가벼워야 한다. 지난번에는 말레이시아의 조카들에게 떡볶이와 오리고기를 먹이겠다고 떡볶이 재료들과 오리 포장육을 잔뜩 사들고 갔다가 무게 제한에 걸렸다. 추가 요금을 내야만 했고, 결국 현지에서 수입된 같은 제품을 사서 요리하는 것보다 더 비싼 요리들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제주에서 쿠알라룸푸르 간 에어아시아 직항은 무척 반가운 노선이다. 아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 불편하지만 저렴하고 번거롭지 않게 오갈 수 있는 노선이기 때문이다. 이번 일정은 에어아시아를 이용하여 제주에서 쿠알라룸푸르로 갔고, 오는 일정은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여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홍콩을 경유, 제주로 돌아왔다. 오는 일정의 비행 좌석은 매우 편안했고 편의사양도 좋았다. 많은 면에서 비교되지만, 에어아시아는 나에겐 매우 유용한 항공사이다.
2. 푸트라자야
푸트라자야는 말레이시아의 새로 조성된 행정수도이다. 도시 한가운데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고 주변으로 건물을 배치한 계획도시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세종시와 같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차로 40여 분 걸리는 위치에 있다. 이번 여정의 첫 밤은 푸트라자야였다.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각으로 밤 9시 30분경이었고, 렌터카를 인수한 시각이 10시 반 경이었다. 푸트라자야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하니 11시를 훌쩍 넘겼고, 배가 고픈 나는 다시 시내로 차를 몰아 나왔다. 그러나, 도시는 고요했다. 체크 인 전까지만 해도 불빛에 화려했던 푸트라 모스크는 어느새 불이 꺼져 어두웠고, 뒤편의 총리 관저만 조명에 은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인도식 24시간 분식점 격인 마막을 겨우 찾아 자정 가까운 시간에 저녁을 해결했다.
이번 일정에서 푸트라자야는 첫날밤과 셋째 날 낮에만 잠시 머물렀다. 이튿날 일찍 숙소를 나와 클랑으로 가서 바쿠테를 먹고 바로 멜라카로 떠났다. 멜라카에서 하룻밤을 머문 뒤 다시 푸트라자야로 돌아와 낮동안 둘러보고 공항으로 가서 렌터카를 반납했다. 우리가 푸트라자야를 둘러볼 수 있었던 때는 토요일 오후였다. 도심의 건물은 거대하고 웅장했지만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핑크 모스크라 불리는 푸트라 모스크에만 여행자들로 북적였고, 아이언 모스크에서는 현지 이슬람 커플의 결혼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이언 모스크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푸트라자야 시내는 월요일 오후에 가장 많이 북적인다고 했다. 그리고, 금요일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푸트라자야는 주말 내내 텅텅 빈다고 했다. 나의 느낌은 도시 전체가 일요일의 여의도 느낌이었다. 도로에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웅장한 행정건물들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어 어두움을 더했다.
푸트라 모스크는 입장 가능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 시간에 맞추어 모스크 앞에 가니 주차장이 따로 없어 원형광장을 중심으로 차들이 갓길 주차를 하고 있었고, 관광버스들이 곳곳에서 관광객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입구에서 종교경찰들이 하나하나 복장을 검열하면서 사람들을 정리했다. 반바지를 입은 나는 정문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옆 입구로 들어가 나누어주는 가운을 입고 들어서야 했다. 말레이시아는 한겨울에도 무척 더운 나라이다. 그런 나라에서 모스크를 들어가기 위해 길고 두터운 가운을 입는 일은 땀이 많은 나에겐 고역이다. 여자들은 머리까지 둘러써야 했다. 어쨌든, 가운을 둘러쓰고, 신발을 벗고 회당으로 들어갔다. 넓고 웅장한 회당 내부와, 수학적 문양이 정교하게 그려진 천정 돔의 위압을 감상했다. 회당 안에서는 신도들의 예배가 진행되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입장이 허용된 공간 안에서 내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슬람의 성차별은 엄격해서, 회당도 남자와 여자의 공간이 구분되며, 예배 역시 따로 드려야 한다. 기도하며, 경전을 암송하는 그들의 모습은 무척 경건하고 진지했다. 모습을 바라보는 나 역시 숙연해졌다. 그러나, 예배당 바깥의 기둥과 경계벽 아래에서는 현지인들이 기대고 앉아 핸드폰을 보거나 아예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벽 하나를 두고 안에서는 경건했고, 밖에서는 늘어졌다. 하루에도 여러 번 기도를 드리고, 할랄 방식을 따지며 요리하는 그들이 회당의 안과 밖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극단의 대비가 아니었다. 오히려, 보편적 삶에 자연하게 녹아든 종교의 모습이었고,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어렴풋한 대답이었다. 형식마저도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그들의 종교는, 족쇄나 불편이 아니라 익숙함이었고 여유였다.
푸트라 모스크와 아이언 모스크의 모습은 상당히 수학적이었다. 좌우대칭과 대비가 정확했고, 천장 돔의 원형과 문양은 정교했다. 푸트라 모스크는 너무 거대한 데다, 사진이나 시야로 건물 전체를 담아 넣기엔 허용되는 거리 공간이 너무 짧았다. 그러나, 아이언 모스크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그 수학적 대칭과 정교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모스크의 본회당 입구에서 맞은편 행정건물로 이어지는 정원형식의 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스크 건물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행정건물들 역시 정교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고, 통로의 정원수 역시 대칭적이며 기하학적 문양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이슬람 문화 안에 존재하는 수학적 특성을 깊게 감상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자연스러움 안에 존재하는 수학과 기하학의 요소들이 이질적이지 않았다. 그런 요소들은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수학적 요소들을 즐길 줄 아는 여행자라면, 푸트라자야는 그에게 완벽에 가까운 여행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말레이시아엔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한국 문물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푸트라 모스크에서 만난 종교경찰은 나에게 대뜸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나는 대답했다. ‘South Korea.’ 그가 대답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기로 돌아가세요.’ 모스크 안에서도 한국말은 어렵지 않게 들렸고, 모스크를 설명하는 안내판에도 한국어 안내판이 따로 서 있었다. 아이언 모스크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는 나에게 영어로 설명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저 자리에서 사진을 찍지요.’, ‘이리 오세요, 한국 사람들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천장을 찍습니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는 참 잘 아는 사람들이에요.’, ‘핸드폰 주세요. 사진 찍어드릴게요. 보통 한국인들은 이렇게 사진을 찍더군요.’ 그러면서 바닥에 아예 눕다시피 자세를 취하고는 저격수처럼 핸드폰 카메라로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셋째 날의 푸트라자야에서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차를 반납할 시간을 계산해도 우리에겐 약 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공허하리라만치 고요한 이 도시에서 어디를 가 볼까 둘러보다 botanical garden을 가 보자 결정하고 차를 모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제법 거센 스콜이었다. 적도 부근의 겨울은 우기여서 비가 자주 내린다. 이런 빗 속에서 식물원을 걷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부근의 쇼핑몰에 들어가 가볍게 아이쇼핑을 즐기고는 공항으로 돌아가 차를 반납했다. 조호르바루로 가는 비행기표를 발권한 다음, 맥도널드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늦은 밤 조호르바루로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