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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15. 2019

2019년 2월, 말레이시아 여행 단상들, 6.

  8. 여정의 남은 이야기들

   내가 말레이시아를 자주 가는 이유는 그 곳에 처남네가 정착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더욱 자주 가는 이유는  처남네에 아들을 맡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맡겨두는 시간이 그리 길 것 같지는 않지만, 피붙이가 어딘가에 가 있다는 것은 나의  움직임을 고정한다는 것과 같다.  

  스스로  매어 놓은 조건 안에서 나의 여행은 이어졌다.  매인 조건이라 하더라도, 이국은 언제나 호기심의 대상이고 갈 때마다 새로운  호기심이 생긴다.  자주 가서 익숙해지면, 그만큼 움직임에도 여유와 요령이 생긴다.  이번 여행에는 직접 카 렌탈을 이용하고,  직접 운전해서 푸트라자야, 클랑, 멜라카를 돌아다녔다.  혼다 시빅 구모델을 렌트하는데 이틀간 약 15만원 정도가 들었다.   제주보다는 비싼 가격이지만, 우리나라 렌터카 비용보다는 조금 저렴한 편이다.  가장 좋은 이점은 가솔린 가격이다.  이 곳은  가솔린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이틀간 세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연료통을 거의 정확하게 한 통 분량을 소비했는데, 한화로 약 2만  천원 정도였다.  처남의 차가 2000cc급 밴 차량인데, 연료통을 완전히 비운 상태에서 가득 채우는데 한화로 2만 5천원  정도이다.  그것도, 작년에 비하면 3천원 정도 가격이 내렸다.  전 세계적으로 유가가 하락한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유가에  세금을 엄청 가져다 붙이는 우리나라의 기름값이 이 정권 들어 저렴해진 이유는, 정부의 선심이 아니었다.  하락하는 유가에 기댄 것  뿐이었다.

  이 나라는 자동차가 없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다.  차가 없으면 바이크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생활상이다.  그런데 차값은 무척 비싸다.  수입차에 매기는  세금은 엄청나다.  우리나라 소나타가 수입되면 세금포함 차 가격은 거의 1억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수차는 세금혜택이 많아  저렴하다고 한다.  말레이시아에도 프로톤이라는 자국의 자동차 브랜드가 있다.  그리고, 브랜드는 외국회사이지만 자국내에서 생산되는  차에도 세금혜택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처남의 차도 토요타이지만 말레이시아 국내에서 조립한 차라 세금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기아브랜드의 부품을 수입하여 자국내 조립해서 NAZA라는 명칭을 달고 달린다.  조호르바루의 한인들이 선호하는 차는  혼다의 소형 SUV인데, 이 역시 자국내 조립차량이라 세금혜택이 많다고 한다.  



   이 나라에는 바이크가 많이 다닌다.  주로 차를 살 수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조호에서 싱가포르로 매일  넘어다니는 바이크 노동자들을 위해, 투아스 국경에는 바이크 전용 검문소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한적한 도로에서는 젋은이들이 떼로  바이크를 타고 다니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도로에서는 자동차와 바이크가 뒤섞여 돌아다닌다.  위 아래로 도로가 겹치는  입체교차로의 아래쪽 그늘은 항상 바이크들의 무더위와 스콜을 피하는 장소로 표기되어 있다.  이 곳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 중 하나는  바이크 강도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달리면서 가방을 날치기 하거나, 2인 1조로 다니며 타겟이 보이면 바로 앞뒤로 붙어 칼을  꺼낸다고 한다.  주로 자전거족들이나 길가는 행인들을 노린다.  처남도 자전거를 타고 타운하우스 경비구역 밖으로 라이딩을 하다가  바이크 강도단에 걸려 자전거를 버리고 도망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 곳에서도 긴 팔 옷이나 두터운 겨울 점퍼를 판다.  쇼핑몰에 가면, 입으면 스키장에 가야 할 것 같은 두꺼운 옷들을 파는  매장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옷들을 사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이다.  여유가 있어 북쪽의 눈내리는 나라에  겨울구경을 가려 하는 사람들이 한 부류이고, 나머지는 바이크를 타는 노동자들이다.  오랜 시간 바이크를 타려면, 뜨거운 햇볕에  노출되거나 날아오는 돌들을 맞거나 비를 맞아야 할 수 있다.  그들은 긴 팔 점퍼를 등부분을 앞으로 해서 반대로 입는다.  그러고  바이크를 타면 그런 위험들로부터 어느 정도 안전할 수 있다.  
 


   한인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조호르바루는 점점 조용함이 사라지고 있다.  정말 시끄럽다는 말이 아니고, 있는듯 없는 듯 살던  한인들 사이에 교류와 자본이 늘어나면서 갈등도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자녀교육만을 이유로 이 곳에 오지 않는다.   사업과 투자 등의 이유로 이 곳에 오는 일도 많아졌다.  현지 부동산과 손잡고 투자 홍보를 하는 한인업체도 생겼다.  현지인들을  내세워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한인 어학원들도 늘었다.  한인들이 늘어나면 어떤 면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갈등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확인을 분명하게 할 수는 없지만, 일부 어학원이 한인 단기 수강생을 모집하면서 픽업, 카 렌탈,  수강료 등등에서 비합리적인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한인들이 가세한 현지 부동산 업체의 일부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우회적인 편법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소식 역시 들린다.  그런 사건들이 하나하나 쌓여서, 조호르바루 한인사회는 소소한 갈등들로  속이 점점 시끄러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그저 사람이 많아지며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인지, 아니면 한인들이 많아지며  생기는 특이현상인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타지로 발을 들여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할 사람들간에 점점 불신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레이시아에도 구정이 있다.  Chinese new year라며 거의 일주일을 쉬었다.  다민족 국가이고 각 민족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있으니, 각 민족마다의 명절을 다 쉰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휴일도 많고, 아이들은 학교가 쉬는 날도 무척 많다.   머무는 동안 들른 식당과 웬만한 거리는 홍등이 가득했고, 문설주는 온통 붉었다.  쇼핑몰 중앙엔 층을 가로지른 붉은 장식과 붉은  용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무대에서는 저녁마다 시끄럽게 징을 치며 붉은 사자가 뛰어놀았다.  



   하이라이트는 음력 1월 1일의 자정이었다.  날이 바뀌자마자, 동네 중국인들이 사는 집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폭죽이 터졌다.  그  수준은 우리나라 콩알탄이나 해변에서 날리는 작은 폭죽 수준이 아니었다.  폭격 수준이었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동시다발로  터지는 폭죽은 어느 집 마당이 불에 타고 있다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고, 어느 집 담벼락이 폭격에 무너졌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였다.  멀리 야트막한 언덕너머에서도 곳곳에 폭격당하는 듯한 폭죽불빛이 연이어 보였다.  아내의 표현으로는 전투가 진행중인  팔레스타인 가자 분쟁지구같다고 했다.  자정이 넘은 그 시간에 우리는 폭죽소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우기의 약간 습하고 낮은  밤공기에 연소된 화약연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폭죽소리와 불빛은 곳곳에서 보였다.  소리가 크고 규모가 크며 오래 유지될 수록, 그  집의 경제력을 과시하는 것이라 했다.   여러 요소들을 떠나 화교들의 과시욕은 어디서나 공통인 듯 싶었다.  



   마지막 날엔 오후 느지막하게 일정을 이었다.  오전엔 아이들 세뱃돈을 나누어주었고, 내가 직접 한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자정넘어 창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야하는 일정때문에 우리는 반나절 투어로 싱가포르를 선택했지만,  조호 사는 사람들에게 싱가포르는  부담스러운 여행지였다.  복잡하고, 가는 곳마다 주차비에 물가 비싸니 당연했다.  구경할 것은 조호나 비슷한데 말이다.  너무  일찍 넘어가는 것보다는 조호를 좀 더 둘러보자 싶어, 서쪽의 해안도시인 폰티안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작은 읍내라 해도  좋을 규모에 해안가에 숲그늘이 있는 공원이 마음에 드는 도시였다.  이 곳에서도 교통정체는 은근 신경쓰이는 일인데, 국경통과시의  정체규모가 당장의 관심사였다.  구글지도를 수시로 들여다보던 처남이 싱가포르로 넘어가는 국경도로가 점점 정체가 많아지는 것  같다며 서둘러 출발하자 한다.  명절이라 싱가포르와 조호르바루로 오가는 차들이 많아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 달음에 달려  도착한 투아스 국경은 그다지 밀리지 않았다.  




   번거로운 국경검문 절차를 마치고 싱가포르에 들어서니 저녁이었다.  해가 점점 저무는 시간에 우리는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부근에  차를 세우고, 마리나 베이샌즈 호텔의 내부와 쇼핑몰을 구경했다.  엄청난 인파에 몸이 밀렸다.  다시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돌아가 수퍼트리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해는 완전히 저물었고,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도 다들 조용해졌다.  수퍼트리 쇼가  진행되었다.  음악에 따라 거대한 나무의 조명들이 춤을 추었다.  아.. 이게 이번 일정의 마지막이 되겠구나, 뭔가 아쉬우면서도  미지근한 마무리같았다.  아들은 아내의 무릎을 베고 아예 누웠다.  나는 자꾸 아들을 바라보았다. 


 


   설 명절 당일이라 문을 연 식당도 거의 없는데다, 시간도 늦어 오픈한 가게들마저도 문을 닫고 있었다.  시내 선텍 몰의 문 연  식당을 뒤지다가 별 수 없이 버거킹을 발견하고 햄버거로 현지의 마지막 식사를 마쳤다.  밤이 깊었고, 자정을 넘은 비행일정까지  함께 하기엔 조호로 넘어가야 하는 일행에 부담이 되었다.  새로 확장한 창이공항의 4터미널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다.  아내와  나는, 아들을 남겨두고 어쩔 수 없는 죄인이 되어 공항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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