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천동에서 오름사이길이라 불리는 금백조로 입구까지, 2차선 도로의 양 옆을 채우고 서 있던 삼나무의 일부가 베어졌다. 즐비하게 밑동만 남은 삼나무 숲은 낡고 쓰러진 묘비들만 남은 공동묘지를 연상시켰다. 그 모습이 유독 처참해 보여서, 내 입에서는 저절로 욕이 새어 나왔다. 대천동에서 송당 방향으로 달리다가, 중간에 우회전하여 금백조로로 들어서 수산리까지 달리는 2차선 도로를 나는 무척 좋아했다. 삼나무 숲 사이를 달리다가, 가끔 보이는 넓은 벌판 한가운데 말들이 돌아다니거나, 부근 숲에서 나온 노루들이 가만히 서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경사가 반복되는 금백조로를 달리면 양 옆으로 보이는 오름들의 겹겹의 능선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끼게 해 주었다. 화창한 날이면, 금백조로를 차로 달리며 어쩔 수 없이 창문을 내리고 손 한번 저 오름들을 향해 뻗어야만 했다. 바람이 지나는 손가락 사이로, 오름 능선들이 잡힐 듯했다.
삼나무가 베어지고 며칠이 지나자, 처참한 풍경은 사진으로 퍼져 전국적 이슈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파했고, 공사는 중단되었다. 잘려나간 것은 삼나무였지만, 상처를 받은 건 제주의 정체성 또는 여행지로서의 가치나 여유 같은 것이었다. 건들지 말아야 할 것이 건드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자림로 확장공사는 제2 공항과 연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이후 국토부의 사업설명에는 비자림로와 금백조로의 확장은 제2 공항과 분명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애초에 그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도정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쏟아내었다.
제2 공항이 정말 필요한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제대로 된 설명 하나 없이, 계획 추진과 준비 과정의 의혹만 쏟아지고, 이에 대한 조목조목의 반박만 넘쳐나고 있다. 물론, 반박에 대한 재반박 같은 건 없었다. 단지, 국토부의 일방적인 설명회로 제2 공항은 기정사실화 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도 제2 공항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유커들이 떼로 몰려다니던 시절이었다면, 그 필요성에 어느 정도는 동의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제주공항을 가 보면 버거울 정도로 북적이지 않는 데다 관광객 수도 줄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어째서 제2 공항을 지어야만 하는지는 찬성자나 추진 중인 도 공무원 누구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선거법 위반 재판에서 80만 원 선고로 면죄부를 받은 도지사만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과 의욕을 앞세워 어서 빨리 추진하자 서두를 뿐이다.
제2 공항 반대를 위해 김경배 씨가 2년 전 42일간의 단식을 했고, 얼마 전 다시 38일간 단식을 하다가 병원으로 실려갔다. 김경배 씨를 뒤이어 세 명의 여성이 단식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각각 23일과 24일의 단식투쟁 끝에 병원으로 실려갔고, 한 사람은 이 글을 쓰는 현재 39일째 단식을 이어나가고 있다. 도청 정문 계단에는 제2 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도청 앞에 줄을 지어 늘어선 천막 안에는 각자의 개인천막을 가지고 단식투쟁을 잇고 있는 여성들이 머물고 있었다. 말에도 움직임에도 이미 기운과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그들 옆에 오래 있는 것도 실례였다. 응원한다는 인사를 남기고 천막을 나섰다. 먹는 일은 가장 기본이면서 당연한 인간의 행위이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기에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단식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하는 극한의 투쟁이다. 인간의 존엄이 경시되거나 무시당하지 않는 한, 단식은 힘없는 인간이 벌일 수 있는 가장 극단의 투쟁방법이다. 내가 사는 사회는 그런 극한의 투쟁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비인간성이 그득하다. 일 년을 넘기는 고공농성과, 90일을 넘기는 단식, 그리고 국토를 종단하는 삼보일배의 투쟁 등등,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극한의 방법이 아니면 의지를 관철하거나 설득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투쟁은 더 어려워졌고 더 처절해졌다. 반대를 한다고 해서 그런 극한의 상황에 처하도록 내버려두는 사회가 합리적 토론이나 사고가 가능한 사회는 절대 아닐 것이다.
김경배 씨를 뒤 이은 세 여성의 단식에는 무언가 다른 느낌의 흐름이 있었다. 좀 더 이슈화되지 않고, 관심도 조금 줄어들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싸움의 처절함은 이어지며 무게와 크기는 좀 더 늘어났는데, 이들의 단식은 불을 지피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세 여성은 정말 강렬하고 진지했다. 하지만, 한 명의 단식을 이은 세 사람의 단식이라는 투쟁의 확장은 빛을 보지 못했다. 혹시 남자와 여자의 단식은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선주민과 이주민의 단식은 무게가 틀려서였을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는 그녀들의 단식투쟁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이 사회와 이 섬 안에 배어 있는 인식과 시선의 차이를 느껴야 했다. 그렇게 싸움은 진영 안에서도 입체적이 되었다. 한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채, 싸움의 과정에서 진부하리만치 역사적인 차별의 결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 섬은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 이미 포화상태를 넘었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에서, 여러 분야에서 넘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한적하던 길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넓혀지고 있었다. 바닷가와 중산간 곳곳에, 고도제한 층수를 꼬박 채운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올려지고 있었다. 풍경은 변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찾아간 동네에서 변해버린 풍경에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다. 병원 진료실에서 수평선과 함께 웅장하게 보이던 범섬은 단 2년 사이에 건물에 가려졌다. 이제는 우측의 절벽 약간과 이어지는 수평선이 조금 보일 뿐이다. 우리 집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도, 지어지는 건물들에 가려 서서히 좁아지고 있다. 제주는 이제 예전의 풍경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고, 변화는 현재 진행 중이다. 예전의 풍경과 예전의 삶의 모습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변화가 가져온 것은 풍경이 주던 마음의 여유가 작아졌다는 점이고, 삶은 그만큼 번잡해졌다는 점이다. 인간은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삶을 꾸려나가는 존재라 한다면, 이 섬은 그럴 수 있는 여지가 너무 급격하게 좁아졌다.
생각해보니, 얼마 전이 신구간이었다. 이 섬에 머무는 신들이 잠시 하늘로 올라가 섬을 비울 때, 이사를 하고 집을 고치는 기간이다. 그런데, 신구간의 분주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올해 신구간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입도하던 해, 신구간의 어느 늦은 밤 길가에 선 사다리차가 이삿짐을 2층으로 분주하게 나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최근에는 그런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신구간의 풍습의 좋거나 좋지 않은 점, 시간이 흐르며 신구간의 풍경의 달라짐, 그것에 대해 무어라 판단하거나 말을 보탤 수는 없다. 다만, 급격한 변화의 결과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왔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뿐이다. 변화란 그런 것이다. 인위적이거나 자연스럽거나.. 그런데, 그 결과가 우리에게 행복이나 여유를 주지 못한다면, 단지 소수의 이익으로만 남아버리는 불평등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저항하거나 되돌리려 노력할 수밖에 없다. 제주의 변화는 너무 빠르고 인위적이며 납득할 수 없는 이유와 결과들이 넘친다. 그리고 변화의 흐름 위에서 나는, 육지에서 보았던 변화의 풍경들이 떠올라 데자뷔를 느낀다. 결코 우리에게 긍정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 두려움이 엄습한다. 우려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를 굳이 거창하게, 함께 살고 내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땅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단지, 내가 이 섬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