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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Aug 29. 2019

201908, 조호르바루 여행 1일 차.

  아침 일찍 일어났다.  등교하는 아이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아이와는 그렇게 첫인사를 나누었다.  교복 넥타이의 주름을 보기 좋게 잘 잡아주고, 아침을 같이 먹고, 픽업 버스에 올라서는 녀석을 보았다.  나는 아이의 일상에 잠시 끼어들었다.  그리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아이의 일상은, 너무 이른 듯싶은 아침 6시 반의 구름 낀 무거운 하늘 풍경만큼 마음이 아팠다.  


  조카들과도 아침인사로 첫 대면을 했다.  세 녀석들도 아들 녀석에 이어 등교 준비를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처남네도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려 일찍 집을 나섰다.  집에는 나와 아내만 남았고, 내 손에는 처남이 사용하라고 건네 준 작은 차 키가 들렸다.  타인의 일상 안으로 끼어든 나는, 이른 아침 분주한 일상 안에서 묵직한 정적을 느낀다.  익숙했다.  제주에 살면서 자연히 깨닫게 된 배려이기도 했다.  우리도, 이제 아침을 먹고 에어비앤비로 예약해 둔 숙소로 가야 한다.  

  아침은 부킷 인다 지역의 나름 유명하다는 딤섬집에서 해결했다.  결론적으로 조금 실망했다.  조호르바루의 맛집 리스트에도 오른 집이라고는 하지만, 새우 샤오마이는 속이 덜 쪄졌고, 내가 좋아하는 매운닭발찜은 부드러움이 덜했다.  재료 관리가 조금 부실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부킷 인다 지역에는 한인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한글 간판도 적지 않다.  시내로 들어가 여전한 한글 간판들을 보자니, 반갑기도 하고 내가 여길 참 자주 오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테스코에서 가벼운 쇼핑을 했다.  둘러보며 본 것들의 가격이 참 부러웠다.  손바닥만 한 닭가슴살 두 장 한 팩에 1500원 수준, 흰다리새우 1킬로에 3000원 수준, 생 레몬그라스 4개에 600원 수준, 고수 작은 다발 하나에 150원 수준..  부럽고 또 부러웠으나, 나에겐 의미가 없는 아이템들일뿐이었다.


  숙소는 푸테리 하버의 새로 지은 아파트인 푸테리 코브였다.  이 곳의 아파트는 우리나라로 치자면 주상복합의 개념이다.  그리고 무척 크고 높게 지으며, 내부에 수영장 전망대 독서실 헬스장 등등의 편의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다.  반면 개별 숙소는 우리나라의 아파트와는 달리, 공간을 조밀하게 구성하고 첨단이나 편의사양은 아주 단순하다.  출입은 경비들에 의해 엄격하게 통제되고 관리는 먼지 하나 없을 것 같이 철저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숙소 주인은 계약과 동시에 출입하는 방법, 주차위치, 들어오는 법, 카드키 찾는 법, 비밀번호까지 메신저로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그 과정을 수시로 경비들이 찾아와 무뚝뚝한 표정과 친절한 몸짓으로 눈여겨본다.

  점심은 다시 부킷 인다로 나와 눈여겨보았던 바쿠테 집으로 찾아들어갔다.  화교 아저씨는 조금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We have no English menu.’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벽의 메뉴판을 가리켰다.  2인분에 22링깃, 그리고 영어로 설명이 쉽지 않으니 나를 직접 주방으로 데려가 토핑들을 보여주었다.  튀긴 유부, 돼지고기, 파를 주문하고, 분위기에 휩싸여 얼떨결에 국화차 하나 주문했다.  바쿠테는 아주 괜찮았다.  클랑의 한약재 냄새나는 검은 국물의 바쿠테와 진하고 마늘향 짙은 송파 바쿠테의 중간 즈음에서 훌륭한 맛을 내었다.  먹고 나와 부근의 자주 다니던 두리안 파는 노점에서 두리안 하나를 먹었다.  D25 품종, 35링깃이었다.  일 년 내내 두리안을 먹을 수는 있지만, 두리안도 제철이 있다고 한다.  지금은 두리안 철이 지나고 있다고 했다.


  타인의 일상 안으로 끼어든 이방인은 타인의 일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와 조카들이 하교하고 나면, 숙소의 수영장에서 함께 놀기로 했고,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했다.  시트린 허브의 자야 마켓으로 갔다.  자야 마켓은 이 곳 한인들이 자주 찾는 마트이다.  물건이 깔끔하고 다양하다.  바로 옆에 선웨이 국제학교가 있는데, 한인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서 거주지와 가깝기도 하다.   시트린 허브 내의 상가에는 한인 학원도 있다.  실제로 장을 보는 동안, 둘이서 다니는 젊은 한인 엄마들, 노부부,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장을 보는 한인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쳤다.  시트린 허브 내에는 틈새라면의 분점도 있고, 직접 로스팅하여 드립을 하는 카페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커피를 마시지 않은 하루였다.  들어가 핸드드립 커피를 마셔보았는데, 나쁘지 않았지만 아내와 커피를 하는 지인들이 내려주는 핸드드립이 그리워지는 맛이었다.

  아이들이 하교 후 숙소로 놀러 왔고, 우리는 바로 수영장으로 가서 물놀이를 즐겼다.  날은 흐리지만 물은 춥지 않았다.  물을 즐기기에 조건이 너무 좋았다.  옆으로는 푸테리 하버의 번화한 모습이 보이고, 옆의 해협 건너편으로는 싱가포르의 울창한 숲이 보였다.  해가 저물고, 숙소 건물 옆의 작은 방파제에는 낚시하는 현지인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물놀이를 마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가, 푸테리 하버의 야외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똠양스프와 양고기 수프, 로띠 티슈, 치킨라이스 등등.. 안 하는 메뉴가 없는 카페였는데, 맛도 충분히 있어서 만족스러운 카페였다.  아이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아들 녀석은 아빠가 와서 좋은 마음에 게임을 하고 유튜브 시청을 노렸으나, 숙제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어두운 늦은 밤, 아들은 일상으로서의 숙제를 시작했고, 나는 비일상으로서의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숙제를 하며 게임방송 시청을 포기하지 않았고, 나는 기록을 하면서 와인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야 마켓에서 장을 봐 온, 호주 2017년 산 Sister’s run이었다.  피곤했다.  기록을 하다 말고 아들보다 먼저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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