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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Sep 01. 2019

201908, 조호르바루 여행기, 4일 차

  다시 어제의 기록을 마친 아침 풍경은 무척 더워 보였다.  바람이 조금 불긴 했지만, 하늘에 구름이 없는 풍경은 뜨거운 햇볕 때문에 공기가 뿌옇게 보이는 것 같다.  숙소를 비워야 했다.  3일 머무른 자리 치고는 짐이 많았다.  조카들이 오가니 먹을 것 잠잘 것 등등의 짐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정리를 하고, 꾸려놓은 것들을 두세 개씩 주차장의 차로 옮기고, 쓰레기를 버렸다.  둘러보면, 훌륭한 풍경을 즐기며 나름 편하게 머물 수 있는 숙소였다.  수영장도 많이 그리워질 것 같았다.


  키를 처음 있던 우편함에 넣어 두고, 푸테리 하버에서 커피 한 잔 마셨다.  이 날은 메르데카 데이로, 영국에서 독립한 날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이어서 곳곳에 말레이 국기가 게양되었고, 아이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거리를 다녔다.  상점이나 마트에서는 메르데카 기념 세일을 하고 있었다.  스타벅스에서도, 메르데카 기념 1+1 음료 행사 중이어서, 시원한 마음으로 독립을 축하했다.  

  오늘의 일정은 특별한 게 없으면서도 특별했다.  장을 보고 처남네와 조카들에게 저녁 요리를 해 주고, 밀림이 된 마당의 풀을 정리해주기로 했다.  처남네 집에 도착해 짐을 내려두고, 아이들을 차에 태운 뒤 이온몰로 갔다.  이온몰 역시, 주말과 메르데카 기념일로 정신없이 복잡했다.  주차 자체가 힘들 만큼 차도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를 하고 몰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아이들은 따로 놀게 하고 우리는 장을 보았다.  장을 보는 것 자체가 재미이다.  여행자라면 그리 마음가지 않을 것들이, 잠시 이 곳의 일상에 참견하는 입장에서는 거의 모든 것이 관심사이다.  특히 먹거리는 말이다.  


  우선, 채소가 다양하고 저렴하다.  더운 동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생소한 채소들이 진열대에 가득하다.  이미 알고 있는 야채나 허브류 역시 다양하고 풍성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무척 저렴하다.  그린빈, 바질, 루꼴라 같은 건 한국에서는 구해도 비싸기만 한데, 여기서는 한가득 다발에 우리나라 가격으로 1천 원을 넘기지 않는다.  향신료는 두말할 것 없다.  진열대 한 열 전체가 향신료이다.  말린 허브부터 시작해서 똠양 수프를 만드는데 넣는 기본재료 패키지, 그리고 닭, 쇠고기, 양고기를 요리하는데 쓰이는 기본 향신료 믹스까지..  나는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욕심 같아서는 하나하나 다 사서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었지만, 이미 그렇게 해서 버린 향신료들이 많기 때문에 자주 쓰는 향신료 몇 개만 집어 들었다.

  쇠고기는 이 곳에서는 주로 호주산을 구입한다.  토착종 쇠고기도 있지만, 냄새가 많이 나고 맛이 없다는 것이 보통의 평이다.  호주산이 냄새가 없고 맛있다.  모양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마블링 같은 건 없다.  힘줄이나 지방층도 없이 붉은 살덩어리로만 스테이크용으로 판매하는데, 손바닥보다 좀 더 넓은 스테이크용 한 장에 우리나라 가격으로 6-7천 원 정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나라에 오면 닭고기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 생각한다.  무척 저렴하고 큼직하기 때문이다.  맛도 훌륭하다.  100그램당 우리나라 가격으로 3-4백 원 선이다.  한국식 치킨의 가격과 양에 조금 실망했지만, 닭요리를 좋아하고 또는 직접 요리할 수 있다면 반드시 닭은 이 나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요리 재료이자 먹거리이다.  나는 지난번과 이번 여행, 두 번 닭을 요리했다.  지난번에는 바질과 머스터드로 마리네이드 해서 오븐에 구웠고, 이번에는 라면수프와 마늘로 마리네이드 해서 맥주와 함께 오븐에 넣는 비어치킨의 응용요리였다.  두번 모두, 조카들의 전폭적인 인기를 얻은 요리였다.  그 외, 양고기도 구입했다.  하나는 양념이 된 양고기, 하나는 스테이크용이었는데, 스테이크용은 소금, 후추, 이탈리안 허브 약간에 탄두리 가루를 듬뿍 넣어 마리네이드 해서 구웠다.  

  하루 전 갔던 두리안 노점에서 한 통에 20링깃인 D24 품종 두리안 하나를 먹고, 다시 이온몰로 돌아와 아이들을 픽업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마당의 풀을 새로 구입한 예초기로 깎았다.  풀은 너무 억세고, 가정용 예초기의 나일론 날은 너무 약해서 아주 가느다란 나무줄기에 닿기만 해도 터져 날아갔다.  풀 역시 세워두면 허리까지 올라오는 것들이 드러누워 있으니 예초기 날이 제대로 베어내질 못했다.  그래도, 예초기 전선코드가 닿을 수 있는 거리 내의 풀을 적당히 깎았고, 나는 주방으로 가서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  제주는 벌초 시즌인데, 나는 제주에서는 예초기를 잡아 본 적 없었고, 시즌에 맞추어 나는 먼 나라 친척집 마당에서 예초를 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동네 산책을 한 뒤, 일찍 잠이 들었다.  이제는 체력도 부족하고, 와인 몇 잔에 어지러워졌다.  너무 더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호르바루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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