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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Sep 01. 2019

201908, 조호르바루 여행기, Epilogue

  다시 푸테리 하버로 왔다.  작지만 깔끔한 분위기의 항구에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은 건, 여행의 시작이 여기서부터였기 때문이다.  일요일 오후의 푸테리 하버는 흐리고 산뜻한 분위기이다.  사람들이 많지도 적지도 않다.  내가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스타벅스에는 중고생 정도로 보이는 한국인 학생들 서넛이 노트북을 두고 이야기하며 공부 중에 있다.  얼마 전에는 부동산 상담을 하는 한인들도 보였다.  이 곳에는, 점점 한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푸테리 하버는 나에게 새로우면서도 새롭지 않은, 익숙한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아침을 늦잠으로 채웠다.  다시, 어제를 기록하고, 처남이 인도하는 교회에 출석했다.  이민사회의 교회는 의미가 많다.  우선 말이 자유로이 통하는 한인들의 훌륭한 교제의 공간이다.  거기에 종교가 같으니 서로 쉽게 친해진다.  그 안에서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고 서로 간에 정보를 주고받는다.  교회와 목사는 그 중간에서 이런저런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한다.  이민을 오가는 사람들은 눌러살거나, 일정 기간을 살거나 머물다 가기 때문에 갈 때마다 낯익은 얼굴과 처음 보는 얼굴들이 교차한다.  조호르바루 한인 교회는 3개 정도 있다고 한다.  한인 사회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인터넷 카페에서 오가는 여러 말들이 교회 안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리며, 누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까지 쉽게 알 수 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모이는 한인들은 사회경제적 계급 위치가 분명하다.  정제와 정돈된 느낌이 강하다.  말레이시아는 거의 대부분이 자녀의 교육문제로 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느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다.  그 외, 사업이나 취업으로 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극소수이다.  이런 사람들은 말레이시아 사회 안에서도 경제적으로 상위 계급을 구성한다.  자본의 이동이나 출입국이 어렵지 않은 다문화 다인종 국가인데, 극상류를 이루는 말레이인이나 화교들을 제외하고는, 해외에서 어느 정도의 자본력을 갖추고 들어온 이민자들이 중간계층 이상을 형성한다.  순수한 종교적 목적으로 세워진 교회는 자본과 계급 사회에서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애매한 지점에 위치한다.  뭐랄까, 종교의 봉사적 의미, 사회 안에서의 역할 등등을 생각하자면, 조호르바루 한인 사회에서 교회는 정말 열심이며 성실하다.  그러나, 이민사회를 구성하는 한인들과 교인들, 그 안에 존재하는 교회를 생각하면, 무언가 분명치 않으며 편하지만은 않은 이질감과 어색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현지 시작으로 오후 3시이다.  푸테리 하버의 풍경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여행기를 마무리하는 내 모습은 어찌 보면 이 곳에 사는 사람이 주말 오후에 즐기는 느긋한 여유 같다.  메르데카 기념일이 주말이라 대체휴일로 내일 월요일도 쉬는, 내 옆자리에 앉아 저들끼리 나직하게 한국말로 수다를 나누고 있는 여중생 아이들같이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내 여행은 이제 아쉬워서 마지막까지 분주한 그런 여행은 아니었다.  그만큼 여행치고는 한 자리에서 조금 오래 머물기도 했고, 여행이라기보다는 타인의 일상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후가 좀 더 기울면,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병원 식구들과 홀로 있는 반려견을 돌보아 준 친구들에게 건넬 선물을 사고, 내가 쓸 향신료 몇 개를 구입한 뒤, 자정 가까운 시간에 이 곳 세나이 공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내일 아침 일찍 인천에 도착하면, 바로 김포로 가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한다.  그리고는 바로 출근을 해야 한다.  완벽하고 여유라고는 없는, 일상에의 복귀가 코 앞에 놓여 있다.

  여전히 나는 여행에 서툴다.  타인의 일상을 잠시 같이 하는 의미로 이 곳에 머물렀을 뿐이다.  이 곳에 좀 더 머물러야 하는 가족들을 다시 떼어두고 나 홀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일상을 함께 하면서 순수한 여행만으로는 경험해 볼 수 없는 일들을 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에 시선을 던지며 잠깐으로는 알 수 없을 것이 뻔한 나만의 느낌으로 여행을 정리하려 한다.  오랜만에 만난 교인들이 나에게 ‘너무 짧게 있다 간다’고 말했듯이, 나는 무언가를 알기엔 너무 잠깐 머물렀다.  너무 돌아다니지도 않았다.  익숙한 곳들을 반복해서 좀 더 익숙해졌을 뿐이다.  체력과 무릎마저 이제는 힘들어져서, 나는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한다.  남은 생애 동안, 나는 서툰 여행을 반복할 것 같다.  천성 또는 운명의 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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