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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Nov 10. 2019

[독후감]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진료실에서 나와 마주 앉은 환자들은 각자가 저마다의 고통을 나에게 쏟아낸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때로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고통을 온전히 알 수 없다.  나이가 점점 쌓이는 요즘에는 나도 몸의 곳곳이 아파온다.  특히 오른쪽 무릎이 때로는 힘들 정도로 아픈데, 통증은 환자가 호소하고 힘들어했던 그대로 다가오지 않았다.  이제껏 환자들이 말해 온 무릎 통증과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새로운 느낌이었다.  깨달음에 다시 깨달음이 다가왔다.  나는 타인의 고통을 이제껏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말이 줄어들고 자신감이라 생각했던 오만함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이다.  


  경험으로 얻은 깨달음은 사실 우리가 오래도록 몰랐거나 망각하고 있던 본연의 진리였다.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부모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온 10세 이상의 아이들에게는 증상을 직접 말하게 한다.  옆에서 대신 말해주려는 부모에게 ‘아픈 데는 본인이 더 잘 알겠죠.  우리가 대신 아파주지도 못하는데 말입니다.’라는 친절한 제지와 함께 말이다.  

  그런데, 고통이라는 존재의 어떤 이해가 생기고 난 후부터, 사람들을 바라보기가 좀 더 힘들어졌다.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사실’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옆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함부로 위로를 건네거나 툭툭 털어버리라는 경망스러운 조언은 무례라는 것을 알게 될 정도로 나아왔지만, 고통받는 사람 옆에서 가만히 곁이 되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다.  어떤 모습과 자세로, 언제까지 옆에 있어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다.  저자는 고통의 실체를 고통받는 이와 분리시킨다.  고통은 받는 이의 옆에 붙어있는 존재로 규정한다.  고통은 어떻게 사라지고, 사라지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러나, 고통을 당하는 이의 옆에 선 우리가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된다.  고통의 실체에 있어 우리는 당하는 이다음의 철저한 제삼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통을 이야기하면서 고통의 전시, 고통의 경쟁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고통의 이야기이지만, 어그로를 끌어 관심을 얻으려는 SNS 세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고통받는 당사자는 대개 약자이며, 약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의 세상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는가를 호소한다.  호소는 저마다의 경쟁이 되고, 우리는 자의와 관계없이 고통의 레이스를 바라보는 관람자들이 된다.  단식, 삼보일배 등의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은 극단으로 달리고, 우리는 수많은 극단을 목도하며 혼란하고 불안하다.  저 진지한 모습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고통을 이해하고 나눌 수 있는가..  차라리, ‘연대는 지갑을 여는 것이다.’라는 솔직함이 반갑다.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우리는 고통을 나눌 수도, 직접 나서 해결할 수도 없음을 확인하는 일은 새로운 고통이다.  고통은 인간이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필요 불가결한 요소이다.  고통은 부당한가라는 질문에 답이 바로 내려지지 않음이 이를 증명한다.  인간관계와 구조 안에서 벌어지는 부당한 고통에는 싸워야 하고, 개인과 사회에 주어지는 어쩔 수 없는 고통에는 겸손해야 함이 고통을 고민하는 이제까지의 종점이다.  나는 싸움과 겸손과 이를 모르는 오만이 판치는 고통의 파도 위에 표류한다.  표류하는 나에게 부딪히는 고통의 포말에 나는 여전히 어찌할 줄 모른다.  사랑의 리퀘스트를 보며 리모컨 버튼을 눌러 후원하듯, 단순히 지갑을 열어 세상 가장 쉬운 연대로 얼굴에 묻은 포말을 닦아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의 파도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고통이라는 실존에 대해,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오만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내 옆에 붙은 고통을 나의 말로 표현하기까지는,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고통에 대해 내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할지는, 아주 어려운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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