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영웅 Dec 08. 2019

[독후감] 광장에 선 의사들

  의사의 업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거리를 느끼는 일이었다.  언제나 제 3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그렇다.  방관의 편리함을 즐기는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함께하지 못함의 불편함이었다.  의사의 업을 유지하며 살아갈수록, 전자보다는 후자의 무게가 더 커졌다.  의료 역시, 세상을 구성하는 큰 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함께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내부에서 보면, 의사들은 완벽한 콩가루들이다.  뭔가 이상한 의료제도 안에서 한없이 분주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처럼 생각하기를 거부한 사람들 같다.  생각 없이, 선동과 인기투표로 내세운 의협회장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딱 그 수준의 선동과 어쩔 수 없는 정치적 무능을 드러내 보인다.  의사가 세상의 흐름에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에 거부당하고 내쳐짐을 선택한 형국이다.  그리고, 의료는 스스로의 정치적 선택에 걸맞게, 힘없이 정부의 포퓰리즘에 휘둘리며 망가지는 중이다.  이 거대한 무능과 처참은 장막이 되어 어떻게 세상에 동참할 것인가의 고민을 매우 힘들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 주변엔 세상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헌신하는 의사들이 있다.  철저하게 개인이 되어 힘들게 싸우는 이들의 곁에 머무른다는 것은, 각자의 희생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념을 져버리지 않는다.  가끔 집회 현장에 나가고, 소심하게 후원이나 하는 안일하고 게으른 나 따위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 같다.  그러면서도 떠오르는 생각은,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일이 합리적이고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뭔가 조직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며 돌볼 수 있는 의료 집단들이 만들어지거나 나설 수는 없는 것일까 고민이 들었다.  나 하나만의 생각은 확장하기를 주저했다.  바쁘고 정신없다는 핑계와, 주변에 그런 고민을 나눌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광우병 촛불집회 때, 주말마다 노란 조끼를 입고 의료봉사단으로 활동했었다.  내가 인의협을 목격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 단체가 있는 줄도 몰랐고, 그들은 사복 차림으로 오갔기에 알 방법도 없었다.  우리 말고도 의료지원에 나선 집단이 있었구나, 깨달았지만 그뿐이었다.  연락이나 다가갈 방법도 알지 못했다.  인의협은 조금 먼 느낌이었다.  같은 의사임에도, 저들은 조금 달라 보이고 나와는 틀려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의사 집단 안에서도, 직접 알아보려 노력하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나의 게으름 때문인지, 의사 집단 내에서 인의협의 어떤 위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 때문인 지는 알 수 없다.  인의협은 지금도 조금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30년의 역사를 책으로 펴냈다.  같은 의사이지만 조금 멀게 느껴지는 사람들.. 다행인 것은 책을 읽으며 그들의 활동을 알게 되었고, 세상의 거친 파도 안에서 의사로서 결코 가볍지 않은 역할들을 해 왔구나 하는 사실에 위안을 받고 안도감을 얻는다.  콩가루 한 줌 속 존재일 뿐이면서도, 무기력과 게으름이 꼭 내 탓만은 아니라는 위로도 조금 받는다.  그러나, 뭐랄까..  여전히 조금 멀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30년의 역사 안에서 그들의 활동은 소소하거나 친근함과는 달리 묵직하고 거대했다.  그들이 서 있는 자리 역시, 도심의 조그만 의원에서 하루 종일 환자나 보고 있는 나와는 많이 달라 보인다.  내가 그들의 흐름에 작은 줄기로 동참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되려 무거워진다.  이제 막 인의협에 후원도 시작했다.  가입하면서 둘러본 인의협 사이트 역시 ‘나는 의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는다.  위로에 이어 작은 벽이 느껴짐은 어쩔 수 없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후감] 사람, 장소, 환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