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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Dec 15. 2019

[독후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전쟁의 경험이 없는 내가 전쟁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가 입 또는 글로 표현하는 경험 또는 트라우마는 ‘내가 죽거나 다칠 일은 없다’는 일종의 위안을 기반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한 기반 위에서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약간의 낭만마저 더해질 수 있는 풍경이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트라우마의 원인 또는 근원이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증언하되, 듣는 자는 수용의 한계를 보인다.  그 과정에서 가려지는 것과 회자되지 못하는 것들이 발생한다.  여성의 입장에서 경험된 전쟁은 그런 범주에 속했음을, 저자는 증명한다.  


  어깨에 총을 메면 개머리판이 땅에 끌릴 정도로 작은 소녀들이 애국심에 취해 전쟁에 지원을 했다.  2차 대전 시기의 소련이라면 어쩌면 가능한 일이겠다 싶지만, 그런 자발적 애국심은 어떤 기반에서 비롯되는지 의문이다.  그러면서도 저자의 기록에는, 어린 소녀들이 생각하는 전쟁에는 낭만의 요소가 있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총탄과 포탄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전투기의 기총소사에 옆에 있던 전우들이 픽픽 쓰러지는 처참함은,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할머니가 된 여성들이기에 담담하게 말해질 수 있는 트라우마였을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고 용감하게 전쟁에 나섰다.  전장의 주어진 제 위치에서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증언했다.  전쟁은 여성성을 집어삼켰다.  전쟁은 복장에서부터 역할까지, 남성이기를 강요했다.  말하자면, 전쟁은 애국심을 바탕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고, 집어삼켜지는 여성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이었다.  한껏 소녀감성으로 생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야 했던 여성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행군 중에 첫 생리가 터지고, 전쟁의 참화 안에서 생리가 멈추며, 전쟁이 끝나면 자신은 더 이상 여성으로 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걱정은 여성의 정체성 역시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삶의 요소임을 어렵지 않게 설명한다.  


  그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난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는 전쟁이 여자가 아닌 남자의 입을 통해서 설명되기를 강요당한다.  전쟁 속에서 누이라 불리며 깊은 동지애를 나누던 여자들은, 전쟁이 끝나고 거칠고 위험한 여자라는 낙인이 찍히며 결혼 대상에서 배제된다.  저자는 이 책을 내기까지 소련당국의 무거운 검열과 거친 압박을 받는다.  전쟁은 처절함과 생존의 싸움이 아닌, 위대한 승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협박으로 말이다.  


  전쟁의 포연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하고 오밀조밀한 일들이 여성의 시선으로 설명된다.  처참과 비참이 두텁게 깔리면서도, 사이사이로 보여지는 여성의 섬세함과 아기자기함.  4년 만에 입어보는 원피스가 너무도 어색해서 눈물을 흘렸다는 누군가의 증언처럼, 사소함은 때론 지키기 어려운 소중한 무엇이었다.  전쟁은 오로지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전쟁 안에서도 사랑은 흘렀고, 입영 열차에 메고 갈 가방에 사탕을 한 가득 넣었듯 순수함이 있었으며, 빨간 스카프를 포기하지 못해 결국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소녀감성이 있었다.  전쟁에는 약자나 피해자가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여성이 존재했고, 전쟁은 남성의 무용담이나 호기로움으로만 말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이 흐르던 시공간이었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어떻게 설명되고 회자되어야 하는가는 중요하다.  여성의 시선은, 가장 객관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설명한다.  그것이, 전쟁을 설명하려는 권력과 남성이 여성을 배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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