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모네가 돌아간 후로 많이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과 누나가 너에게 정말 잘해 주었나 싶기도 했다. 무심한 듯하면서도 잔정이 많은 네가 마음이 어땠을지 아빠는 조금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젠 너도 알아야 할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을 말이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도, 헤어지며 느끼는 슬픔과 아쉬움도 앞으로 네가 살아가면서 적응해야만 하는 작은 감정들이다. 지금은 괜찮아졌겠지만, 충분히 아쉬워하고 충분히 기뻐했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면 적응할 감정들이란, 느낄 수 있을 때 충분히 느껴야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곳에 사는 사촌남매들과 공부를 하고 있겠구나. 며칠 전 엄마가 너희들 공부하는데 옆에서 같이 있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했다. 조용한 독서실 분위기를 말이다.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말이다, 주어진 교재가 있고 해야만 하는 공부 거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편하게 배우는 것이다. 네가 커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게 되고, 그리고 대학을 진학하게 된다면, 그 간에는 주어진 것들을 가지고 편리와 배려 속에서 공부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네가 직접 찾아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것이다. 어른이 된 때에는 무언가를 알고자 한다면 네가 직접 배울 것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아빠가 그렇다. 아빠는 무언가를 알기 위해 책을 읽는데, 어떤 책이 좀 더 알차고 배우기 좋은 내용을 가지고 있는가 스스로 고민해서 골라내어야 한다. ‘이런 질문엔 이런 책’ 같은 공식이 있으면 좋겠는데, 어른이 되면 그런 공식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엔, 네가 쓰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정의’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핸드폰’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개인이 가지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나 통화할 수 있는 소형 무선 전화기’이다. 단어의 정의는 사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정의를 제대로 알고 있으면 정확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단지 말의 뜻일 뿐인데 그것이 말과 글에 그렇게 중요한가 궁금해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빠가 나름 정리해서 말하자면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뜻을 정확하게 알면 정확한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게임을 좋아하니까 아이템으로 이야기해보자. 칼을 의미하는 영어단어로 knife와 sword가 있다. knife는 주로 과일을 깎거나 부엌에서 사용하는 작은 칼 종류를 의미한다. 숲에서는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끈을 자르거나 하는 용도로도 쓰일 것이다. sword는 주로 긴 칼을 의미한다. 옛날 전쟁에서 사용하던 칼이나 오늘날 밀림을 다니며 길을 내는데 쓰는 마체테 같은 종류의 칼이 있다. 아빠가 하는 검도의 칼 역시 영어로는 sword라고 쓴다. 의미로는 같은 칼이지만 전혀 용도가 다른 두 종류이기에 사용하는데 신중해야 한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려고 아빠가 칼로 호박을 써는데 그것을 영어로 표현한다고 sword라고 쓰면 안 된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정의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면, 네가 말하는 데 자신감이 생긴다. 즉 네가 사용하는 단어에 확신이 있으면 너의 말에도 힘이 실리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아빠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사실 아빠는 정의나 의미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습관을 잘 들이지 못했다. 그 습관은 어른이 되어 굳어버려서, 고치려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해 놓고도, 내가 제대로 뜻을 이해하고 말했던 것일까 뒤늦게 여러 번 고민하고 되돌아보는 일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말로 무엇을 설명하는 일에 그다지 자신이 서지 않는다. 이렇게 글로 설명하는 일은 어느 정도 자신이 붙었는데, 말로 설명하는 것은 좀체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사람은 글을 쓰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순간순간 적절한 말로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네가 원하는 뜻을 전달하고 바램을 이룰 수 있다.
이틀만 지나면 이제 너를 보는구나. 한 달이 넘도록 사진으로만 보고 있자니 아빠는 많이 외로웠다. 잠깐이라도 어서 보고 싶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같이 시원한 여름바다에 들어가고 싶은데 올해는 그럴 수가 없어 아쉽다. 올해만 참으면 내년엔 같이 그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어쨌든 아빠는 이틀 후 보게 될 너와 엄마의 모습을 기대한다. 아프지 말고 차분하게 기다리자. 아빠가 어서 건너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