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5. 20180804

by 전영웅

아들아, 여긴 정말 덥다. 제주는 서울보다 덜 덥다고는 하지만, 습기를 머금은 뜨거운 공기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아빠의 온몸에서 땀을 뽑아낸다.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지역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더구나. 사람들은 적도 부근의 나라들보다 더 더운 서울의 온도를 비교한 사진을 보여주며 올해 더위는 정말 살인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말레이시아도 싱가포르도 서울보다는 덜 덥더구나, 심지어 제주보다도 덜 더웠다. 그곳에 너와 엄마를 보낼 때마다 기후에 몸을 상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올해는 제주에 남은 아빠 스스로가 더 걱정이 될 정도이다. 아프지 말거라..


라이는 점점 산책견이 되어가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주인과 얌전하게 산책을 하는 반려견은 아니고, 산책을 가자고 빨간 리드 줄을 들고 창고에서 나오면 금세 알아차리고 좋아라 몸부림치다가 어서 목줄에 연결하라고 가만히 앉아 있는다. 목줄에 리드 줄을 연결하면 그때부터는 온몸의 힘을 다해 재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아빠와의 보조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고 말이다. 저만 신나서 열심히 걷고 뛰니까 목이 졸려서 쌕쌕거리기도 하고 사래가 들려 기침도 한다. 그래도 좋은지 산책 내내 귀를 쫑긋 세우고 입과 눈의 표정은 즐거움을 감추지 못한다. 사실 라이한테는 좀 미안하다. 중형견들은 날마다 산책을 시켜주는 게 좋은데, 라이는 일주일에 한두 번 아빠가 시간이 되는 주말에나 산책을 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아빠를 끌고 가려는 듯 힘있게 뛰쳐나가는 녀석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자주 산책을 못 시킨다는 미안함에 무어라 하기도 힘들다. 이제 10개월 정도가 되었을 거다. 녀석의 나이가.. 산책을 하다 보면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에 과민해서 으르렁거리며 달려든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끔 짖기도 한다. 아빠가 자제를 시키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혼을 내기도 하는데, 라이는 지금 세상이 제일 만만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시기여서 그런 듯하다. 마치 네가 세상을 쉽고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듯 말이다.


요즘 너희들은 스마트폰을 너무 자주 오래 본다. 네 사촌형제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 같이 모이니 제주에 있을 때보다는 활동량이나 운동량이 좀 많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곳은 사는 곳마다 수영장이 있으니 수영을 즐기기에도 좋을 것이다. 엄마를 통해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운동이나 활동들을 보았다. 네가 선택한 운동들을 열심히 했으면 한다. 제주에 돌아와서도 네가 할 수 있는 운동들을 꾸준히 이어나가길 바란다. 사실 아빠는 특정 운동을 열심히 하기보다는 친구들과 오랫동안 동네를 뛰어다니며 놀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무더운 그곳에서 그러기에는 친구도 날씨도 좋은 여건은 아니다. 제주에 오더라도 또래가 없는 동네에서 그렇게 놀 수도 없고, 요즘 세상은 그렇게 몰려다니며 노는 분위기가 아니니 많이 아쉽기는 하다. 움직이려면, 운동을 하려면 어디엔가 등록을 해서 특정 몸 움직임을 배워야 한다는 현실은 너희들이 얼마나 경직되고 긴장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를 보는 것 같아 아빠는 마음이 아프다. 네가 느끼는 것들은 아빠가 보고 느끼는 것들과는 조금 다를테니 아마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빠가 말하는 공부란, 지난 편지에서도 이야기했듯, 학교에서 진학을 위해 배우는 교과과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머리로 습득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뇌도 신체 장기의 일부분이고, 신체 장기의 활성은 운동으로 원활한 순환을 만들어 낼 때 증가한다. 따라서 뇌도 운동을 통해서 활성도를 높일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직 충분히 가동하지 않은 뇌에 억지로 지식을 욱여넣는 것이나 다름없다. 운동을 통해 올라간 몸의 활성이 뇌에까지 영향을 미쳐 지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충분해지면 네가 받아들여야 할 지식들은 좀 더 쉽게 머리에 저장된다. 꾸준한 운동은 우리 몸의 활성을 언제나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하게 한다. 그렇게 너의 머리는 좀 더 효과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기억할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 물론, 공부를 잘하기 위해 운동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운동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고 신체기능을 상승시키며, 평생 건강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자산을 만드는 수단이다. 운동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의 한 부분이 공부인 것이다.


아빠는 운동을 정말 못했다. 고등학교 때 축구나 농구를 할 때도, 대학생 때 족구를 할 때도, 친구들은 아빠가 자기편에 끼는 걸 싫어했다. 몸 자체가 운동에 적합하지도 않았지만, 아빠는 어릴 적 동네를 뛰어다니면서도 소심한 마음에 좀 더 적극적으로 놀지 못했다. 그리고, 공을 가지고 논다거나 특정한 운동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 운동에 대한 감각을 키울 기회가 없었던 것이지.. 친구들이 싫어해도 아빠는 어떻게라도 끼어들어 운동을 했는데, 몸이 둔해서인지 실력이 늘지도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빠가 뒤늦게 검도라는 운동을 시작하고 검도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하게 되었다. 둔한 몸에 뒤늦게 시작한 운동이 잘 될리는 없다. 아빠는 여전히 남들을 따라가기에만 바쁜 실력으로 그저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그래서 아빠가 살짝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어려서 운동을 제대로 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너는 제대로 몸에 익힐 운동 한 두 가지는 배웠으면 하는 것이 아빠의 바람이다. 물론 농구나 축구 같은 자유로운 공놀이로 순발력과 근력 등으로 몸의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 지금 네 시기의 가장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네 환경은 그러기가 참 힘들다. 축구도 무슨 클럽에 들어가야만 조금 할 수 있는 정도이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운동이 되었든 제대로 배워서 나중에 몸에 밴 자산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수영도 좋고 축구도 좋고 네가 배운 펜싱이나 아빠가 하는 검도 같은 특별한 종목들도 좋다. 배워두면, 네가 성장하는 데 좋은 몸의 양분이 되어 줄 것이고, 네가 살아가는 데 긍정적인 도움을 많이 제공할 것이다. 아빠가 보기에 너의 몸은 무척 유연해서, 살이 많이 붙은 통통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운동할 때 보이는 자세가 좋다. 아빠와 다르게 유연한 몸을 가진 너는 어떤 면에서는 축복인 셈이다. 아빠보다 운동을 못할 이유가 없다.


아빠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예전부터 적절한 때가 되면 너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가, 이제 막 너 혼자 떨어져 공부해야 하는 지금이 적절하다 싶어 편지로 그 말들을 전하는 것이다. 너는 아빠의 말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아빠도, 이런 말들을 하기엔 아직은 네가 잘 이해할 수 없는 조금 이른 때인가 싶기도 하다. 많이 부담스러울 수도, 짧은 말이나 글이 대세인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장문의 편지를 차근차근 읽기도 힘들 것이다. 다만, 아빠의 강요로 생각하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잘 이해되지 않으면 묵혀두었다가 나중에 생각날 때 꺼내어 읽으면 된다. 아빠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한다. 힘들면, 나중에 아무 때나 다시 읽어주기만을 바란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주어진 시간을 잘 지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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