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25. 20190210

by 전영웅

너를 만나는 순간은, 아빠의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지는 순간이었다. 너와 다시 헤어지는 순간을 생각하는 건, 너를 만나는 순간부터 마음속에 돌을 하나하나 쌓는 일이었다. 결국, 공항 앞에서 너를 보내는 그 순간에, 쌓인 돌이 마음을 무너뜨렸다. 미안했다. 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했는데, 제일 힘든 건 너일 텐데, 아빠는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너와 함께 했던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고, 아빠는 다시 돌아와 출근을 시작했다. 너도 이제 나름 길었던 명절 방학을 끝내고 이제 학교에 가야 한다. 이른 아침 홀로 일어나 학교로 향할 너의 모습이, 벌써부터 아빠의 눈에 밟힌다.


오늘은 아빠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아빠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아빠는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너와는 달리 몸에 좀처럼 살이 붙지 않아 매우 마르고 약골인 아이였다. 친구들에게 종종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은 왕따라고 부르며 집단으로 괴롭히지만, 다행히도 아빠가 학생이었던 때는 왕따라는 말은 없었고 괴롭힘은 한두 명이 한 친구를 종종 놀리거나 하는 정도였다. 그게 과하게 되면 싸움이 났었다. 아빠는 괴롭힘을 당하는 쪽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참고 참다가 너무 화가 나서 놀리는 친구를 박치기로 때려눕힌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때엔 은근하게 이용을 당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으로 반을 배정받고 번호를 정하는 때였다. 중학교 때 같은 학교를 다니던 불량한 친구들이 아빠가 공부를 어느 정도 하는 줄 알고 반 번호를 정하는데, 그 친구들 사이로 아빠를 강제로 세우고 그대로 번호를 배정받았다. 말 한마디 못하고 아빠는 이후로 시험 때마다 그 친구들의 부정행위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자체로도 많이 괴로웠던 때였지만, 더욱 괴로운 일은 따로 있었다. 아빠에겐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운 좋게 같은 학교로 계속 진학하며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더욱 좋았던 건 그 친구가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도 한 반이 된 것이다. 그런데, 아빠는 불량한 친구들 사이에서 그러고 있었고, 그 친구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로 공부보다는 뒷자리에 앉아 다른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사이가 조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학년 말이 되자 선생님이 지난 일 년간의 평가를 하는데, 성적이 올라 모범이 된 학생은 아빠가 부정행위를 도운 불량한 친구였고, 성적이 떨어져 분발해야 할 학생은 아빠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였다. 아빠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빠는 말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졌었다.


불량한 친구들은 제 버릇 남 못준다고 다시 성적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친구는 서서히 공부에 집중해서 지금은 응급구조대원이 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 아빠가 받은 상처는 아직도 흉터처럼 남아 있다. 아빠는 종종 그 상처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건 아빠가 다른 친구들보다 힘이 없었다거나, 성격이 활발하지 못해서라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 당시 아빠는 자존감이 정말 낮은 상태였다. 자존감이 없어 타인이나 외압에 쉽게 휘둘렸다. 이걸 다시 이야기하자면 좀 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까이서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없이, 그저 주어진 공부와 과제만 해 나갔다. 목적의식도 없이 그저 꾸역꾸역 해 나갔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지금의 아빠가 되었지만, 아빠의 학생 시절은 조금 괴롭기까지 한 시간이었다.


네가 그곳에서 공부하면서 겪는 기분이나 감정의 변화들을 아빠는 감지한다. 그리고, 너의 기분과 감정을 아빠는 대부분 이해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빠가 지금도 종종 겪는 기분이나 감정과도 많이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할 때의 주저스러움, 자신 없음, 그리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이나 밀려나는 느낌들.. 사실 그런 건 조금만 마음에 힘을 쥐면 금방 사라지거나 극복할 수 있다. 너 자신이 느끼는 그저 잠깐의 감정이지, 그것들이 정말 너를 힘들게 하거나 정말 친구들 사이에서 무슨 문제를 일으키거나 잘못을 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중요한 사실은 너는 탄탄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너는 엄마 아빠를 비롯해서 참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그 응원은 ‘그러니까 너는 정말 잘 해내야 한다.’라는 부담이 아니다. 네가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떨어지려 할 때 붙잡아주는, 안전한 그물망이자 탄탄한 버팀목 같은 것이다. 너의 판단과 자신감을 충분히 발산하도록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다. 너는 네가 가야 할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면서, 주저스럽거나 잘 모르겠으면 물어보고, 판단하기에 옳지 않다 싶으면 당당하게 네 목소리를 내면 된다.


힘들면 언제든지 엄마나 아빠에게 이야기해라. 그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네가 주저하거나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면, 네 스스로 힘을 내어보고 목소리를 내어 보아라. 그래서 문제가 생긴다면, 너를 응원하는 엄마 아빠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너를 도울 것이다. 힘을 내고 목소리를 내어도 너무 힘들다면, 그때엔 엄마 아빠가 너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너의 자존감은 아주 소중하고 강력한 무기이다. 평생 동안 다듬어가며, 손에 쥐고 강렬하게 휘두를 그런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지금은 조금 어려운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아빠의 오늘 이 편지는 너에게 꼭 필요한 자존감을 말하고 있었다는 걸 잊지는 말아야 한다.


더운 나라에 있다가 온 엄마는 제주의 겨울 추위에 적응하기 힘들어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날씨이긴 하다. 아빠도, 비가 자주 오고 밤이면 선선해지는 그곳 우기 시즌이 조금 그리워진다. 여전히 땀이 많아 힘들긴 하지만 말이다. 아빠를 닮아 땀이 많은 너도 힘들 것 같아 걱정이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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