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26. 20190218

by 전영웅

현대 문물은 좋은 점이 많다. 진료 시간이 오후-야간으로 바뀌면서 자칫 게을러질까 봐도 그렇지만, 너의 생활시간에 맞추어 아빠도 움직여야겠다 싶어 아침 6시면 일어난다. 그곳과 한 시간 차이가 나니, 일어나서 책을 읽다가 이 곳 시간으로 7시가 되면 너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네가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는 시간이니 말이다. 비행기로 6시간이나 날아가야 하는 그곳에서의 너와 1초의 차이도 나지 않는 실시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반가웠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세상을 아빠는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이런 발달한 세상이 멀리 있는 너를 어렵지 않게 보게 해 주니 고마울 뿐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아빠도 바뀐 진료시간에 적응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고, 너도 설 명절 이후에 다시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너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보면, 살아가는 건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지루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일이다.


어제는 아빠의 생일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 생일 즈음엔 아빠 자체로 의미를 두고 배낚시를 다녀온다. 어제는 아빠의 생일과 일요일이 겹쳐 생일날 배를 타게 되었다. 날씨도 좋지 않고, 바람에 파도도 너무 심해서 낚시는 꽝 수준이었다. 배낚시를 자주 다니는 건 아니지만,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조과가 너무 좋지 않았다. 배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집의 모습이 그려졌다. 엄마는 아빠의 생일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너는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고 있겠지.. 그러다 아차 싶더구나. 너는 지금 그곳에 있다는 것을, 잠시 망각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생각하게 되는 집안의 일상에 너는 항상 있더구나. 마음이 살짝 아파졌다.


일주일 내내 학교에 다니다가 주말이 되면 네 나름의 이런저런 일들과 교회일에 묶인 네가 많이 분주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네 나름으로 즐기고 참여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제주에 있을 때보다 또래들과 함께 하는 일상이 많다는 것이, 아빠가 보기엔 더 좋다. 물론, 너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지만 말이다. 교회에서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마도, 너는 그곳에서 수업을 듣는 입장보다는 옆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좀 더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쓰고 읽을 줄 아니까, 아무래도 너는 책상에 앉기보다는 책상 옆에서 도움을 주는 일이 어울릴 거라 생각한다. 거기서 한국어를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조금 접어두어라. 혹시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말이다. 너는 제주에 돌아오면, 천천히 그리고 가볍고 꾸준하게 아빠와 글쓰기와 책 읽기 공부를 할 것이다. 부담 없이 재밌게 공부할 방법을 아빠가 고민할 것이다.


흐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를 견디어내고 있으면, 종종 그곳의 더운 날씨가 생각난다. 가끔 비가 오고 밤이면 쾌적한 우기의 그곳 날씨가 생각난다. 물론 아빠같이 땀이 많은 사람은 금방 더위에 지쳐버리겠지만 말이다. 너도, 아빠 못지않게 땀이 많아 더위에 힘들지도 모르겠다. 지난번처럼 기침하고 열이 살짝 나지는 않는지 걱정이다. 잘 먹고, 잘 놀면서 지내렴. 항상 이야기하지만, 너는 그곳에서 무언가를 잘 해내려 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주어진 것들을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아빠는 항상 생각한다. 너와 아빠가 먼 길을 떨어져 있는 것은 좋은 일은 아니지만, 지금의 너의 경험이 너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경험이란 괴롭지 않아야 한다.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주어진 상황을 잘 즐길 수 있도록 어울려라. 멀리서 말로만 너를 다독이는 것 같아 미안하다. 시간이 지나면, 아빠가 너에게 이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겠지.. 우리, 너무 오래 떨어져 있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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